반대 의견 민주당 5표·국힘 3표
찬성 "부정적 의미 바로잡아야"
반대 "사회적인 합의가 최우선"

"이제 치매라는 용어도 새롭게 검토할 때가 됐다."
지난해 9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치매극복의 날’ 관련 참모 회의 중 정부의 ‘치매국가책임제’ 시행 4주년을 평가하면서 한 말이다. 당시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어리석다는 한자 뜻을 품은 치매를 인지저하증으로 개정하는 병명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치매 병명 개정안에 찬성하는 의원은 11명으로, 전체 24명의 과반에 못 미치는 의견을 냈다.
18일 (기준) 여성경제신문이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24개 의원실을 대상으로 비공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11개 의원실에서 치매 병명 개정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이 가운데 국민의힘은 5곳, 더불어민주당은 6곳으로 나타났다.
'부정적인 한자 뜻을 품은 치매 병명 개정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11곳 의원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찬성)'는 의견을 밝혔다. 이 밖에도 '필요성을 못 느낀다(반대)'고 답한 의원실은 8곳이었다. 반대 의견을 표시한 8곳 가운데 5곳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었다.

정당별로는 국민의힘 의원실은 55%의 찬성률을 보였고 민주당 의원실은 40%에 머물렀다. 반대율은 33%로 동일한 비율을 보였다. 기권 의사를 표시한 국민의힘 의원실은 1곳, 반면 민주당 의원실은 4곳에 달했다.
이번 조사는 실명 비공개 조건으로 진행됐다. 찬성한 의원실은 대개 "부정적인 뜻이란 것을 알고 나니 병명 개정 필요성을 느꼈다"는 이유를 덧붙였다. 민주당 A 의원실 관계자는 "어리석다는 뜻을 품은 의미란 사실을 알고 나니 인권 차원에서라도 병명을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국민의힘 B 의원실에선 "법안 등 국회 문건에서도 한자 뜻을 순우리말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특히 치매는 일본에서 온 일제 잔재이기도 한데, 이 또한 순우리말로 바꾸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대 입장을 전한 국민의힘 C 의원실 관계자는 "익숙해진 병명"이라며 "국민적 동의가 가장 중요한데, 보건복지부의 조사 결과 자료를 보면 치매 병명에 찬성하는 국민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따라서 병명 개정을 시급하게 진행할 필요는 아직은 없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D 의원실에서도 "치매를 대체할 용어 선정도 중요하다"면서 "환자의 상태를 의학적이고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병명을 사용해야 하는데, 아직 이에 대한 의견이 관련 기관 등에서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이 남성 대비 2배 이상 찬성 입장을 보였다. 연령대로 보면 여자는 40대 초반까지 치매 병명 개정에 대해 반대 성향을 보이다, 이후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찬성 입장이 강했다. 의원별 전체 연령대로 분석해도 고령층일수록 찬성 성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리석다' 뜻 품은 치매, 10년째 병명 개정 보류
치매의 한자 뜻을 보면 '어리석을 치(痴)와 어리석을 매(呆)'다. '어리석고 바보 같은 사람'이란 의미로 풀이된다. 특히 이 병명은 일본의 정신의학자 '쿠레 슈우조(呉秀三)'가 자국의 본래 치매 병명이었던 '치광(痴狂)'을 '치매'로 개정하면서 일제강점기에 국내로 들어온 병명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국회에선 2011년 성윤환 전 의원이 발의한 '인지장애증'으로의 치매 병명 개정안이 발의된 이후 총 5건의 병명 개정안이 발의됐다. 그런데 모두 계류 혹은 법안 폐기 상태다.
앞서 지난해 여야는 각각 인지흐림증·인지장애증이란 치매 병명 대체어로 병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했지만, 계류 중이다.

다만 법안의 검토보고서를 보면 보건복지부 측은 양측 법안에 대해 "사회적 비용과 이미 사용 중인 용어와의 유사성으로 인해 혼란을 줄 수 있다"며 "부정적 인식 개선 효과에 대해서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치매 학회도 "기관과 국회, 국민의 사전 합의 없이 명칭을 변경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인지저하, 인지흐림 모두 추후에 또 다른 사회적 편견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치매 관련 단체에선 병명 개정 필요성은 동의하지만, 성급하게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최호진 대한치매학회 정책 이사는 "의학용어인 만큼 의료현장에서 혼란이 없는 용어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데 현재까지 상황을 보면 이 부분이 가장 부족하다"고 전했다.
이성희 치매가족협회 회장은 "중요한 것은 치매 환자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종성 의원은 "2011년 성윤환 전 의원이 최초로 치매 병명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말만 하고 실질적인 노력은 더뎠다"며 "이번만큼은 모두 뜻을 모아서 결실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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