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국회 의원회관서 '치매병명개정토론회'
복지부·치매학회·가족협회·돌봄기관·변협 등
찬반 엇갈렸으나 내년부터 공론화 본격 예고
"치매라는 병명을 개정하는데 대해 여론이 소극적이다." (보건복지부)
"오랫동안 무의식적으로 써온 용어를 고치자면 사회적 저항은 있게 마련이다." (대한변호사협회)
"치매는 의학용어인데 의료계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 (대한치매학회)
"돌봄 현장에선 치매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중립적 대체 용어가 절실하다." (노인복지중앙회)
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 제6간담회실에선 열띤 토론이 이뤄졌다. ‘치매병명개정, 언제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라는 주제로 팩트경제신문이 주최하고 보건복지부가 후원한 '치매 병명 개정 토론회'에서다.
그동안 치매 병명 개정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공전해왔다. 정부는 여론이 소극적이란 핑계로 미루기만 했고, 국회는 이념 논쟁에 몰두하느라 무관심했다. 의료계는 한발 떨어져 방관했다. 그 사이 환자와 가족은 병으로 고통 받고 손가락질에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이날 치매와 관련한 유관단체가 처음 한 자리에 모였다. 토론회 산파역을 한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축사를 통해 "찬반을 떠나 유관단체가 한 자리에 모인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라며 "치매라는 용어가 부정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만큼 어떻게 고쳐야 할지 지금부터 머리를 맞대보자"고 말했다.
이 의원은 지난 10월 1일 치매 대체 병명으로 ‘인지흐림증’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성윤환 전 의원이 최초로 치매병명개정안을 발의했는데,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말만 하고 실질적인 노력은 더뎠다”며 “이번 만큼은 모두 뜻을 모아서 결실을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토론자로 참석한 김지연 보건복지부 치매정책과장은 "2014년과 2021년 치매 병명에 관한 여론조사를 해본 결과 고쳐야 한다는 답변이 늘기는 했으나 여전히 그대로 둬도 무방하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대통령이 병명 개정에 대해 직접 언급했다”며 “국립국어원과 한글학회에도 치매 대체 용어에 대한 자문을 구해놓은 상태다. 내년 상반기에는 치매병명개정에 대한 캠페인도 적극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토론회 이후 김지연 복지부 치매정책과장은 팩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내년 상반기 중에 병명 개정 논의를 진행하고, 실질적인 병명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립국어원 역시 팩트경제신문과 통화에 ”복지부 측에서 지난 11월 12일 공문을 통해 치매병명 개정 검토 요청이 들어와 대체 병명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복지부의 이같은 입장에 대해 대한치매학회 측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호진 치매학회 정책이사는 “의학용어인 만큼 의료현장에서 혼란이 없는 용어에 대한 고민을 해야하는데, 현재까지 상황을 보면 이 부분이 가장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으로, 간질을 뇌전증으로 개정할 때는 의료계가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나 치매 병명 개정에 대해선 의료계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치매 병명 개정을 위해선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더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윤우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은 “병명을 개정하면 혼란은 따르기 마련”이라며 "사회적 합의도 추상적이어서 어떤 조건이 만족되면 합의된 것으로 볼 수 있을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법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전제를 감안한다면 치매라는 병명으로 상처를 입고 있는 환자와 가족의 피해를 구제하는 게 우선이 돼야 한다"며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이런 일은 사회적 합의를 마냥 기다려선 부지하세월이 되는 만큼 문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인식 개선 캠페인도 하고 이를 정부가 지원해야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성희 치매가족협회 회장은 “중요한 것은 치매 환자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이라며 "병명 개정에 집착하기보다는 환자나 가족을 위한 지원 대책을 더 촘촘하게 하는 게 급하다"며병명 개정보다 치매환자와 간병가족을 위한 지원이 우선임을 전했다.
전국 약 2000개의 요양원을 관리하고 있는 한국노인복지중앙회(한노중) 측은 병명 개정에 찬성 입장을 펼쳤다. 임재경 한노중 총장은 “치매라는 단어의 부정적 의미 때문에 돌봄 현장에선 치매란 용어를 쓰지 않는다"며 "매번 다른 용어로 쓰려다 보니 불편한 만큼 치매 환자를 비하하지 않는 중립적 대체 용어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분열증도 조현병으로 개정하고 나서 환자와 가족 모두 거부감이 줄어든 걸 현장에선 피부로 느낀다"며 "이름이 주는 낙인효과를 간과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토론회 주최사인 팩트경제신문 정경민 대표는 “토론회에 이어 내년엔 공청회를 진행할 예정”이라면서 “복지부도 일회성 토론회뿐 아니라 내년에 공청회를 통해 병명 개정을 공론화를 하는데 적극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토론회 좌장으로 함께한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도 “치매병명개정을 위해 한 자리에 모여 뜻을 모으는 뜻깊은 행사에 함께해 영광”이라며 “이 자리가 끝이 아닌, 함께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출발선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는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의 축사로 시작됐다. 이어 허준수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가 좌장으로 참여했고, 김지연 복지부 치매정책과장, 임재경 한국노인복지중앙회 사무총장, 이성희 치매가족협회 회장, 이윤우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 최호진 대한치매학회 정책이사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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