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 지난해 "치매 병명 개정해야"
당시 복지부, 대국민 인식 조사 등 움직임 활발
정권 바뀌자 관련 회의서 전문가 전원이 '반대'
이종성 의원 "10여년간 이어 온 노력 이어가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치매 극복의 날을 맞아 참모진에게 "부정적인 뜻을 품은 치매 병명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문했지만 정권이 바뀐 지금 치매 병명 개정 논의는 전문가들의 반대에 부딪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위기에 놓였다. /픽사베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치매 극복의 날을 맞아 참모진에게 "부정적인 뜻을 품은 치매 병명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문했지만 정권이 바뀐 지금 치매 병명 개정 논의는 전문가들의 반대에 부딪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위기에 놓였다. /픽사베이

"부정적인 뜻 품은 치매 병명, 개정해야"

지난해 9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치매 극복의 날을 맞아 참모진에게 주문한 내용이다. 어리석다는 부정적인 뜻이 담긴 '치매' 병명을 개정하라는 것인데, 당시 보건복지부에선 대국민 인식 조사 등 병명 개정을 위한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런데 정권이 바뀐 지금, 치매 병명 개정 논의는 전문가 '전원 반대' 벽에 부딪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위기에 놓였다. 

20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해 보면, 최근 치매 병명 개정을 위한 보건복지부 회의에서 참석자 전원이 개정 반대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치매학회 관계자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복지부 발주 연구 자문 회의에서 전문가 전원이 치매 병명 개정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해당 회의는 복지부 주관, 국내 치매 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다.

복지부 치매정책과 관계자는 "지난해 문 전 대통령이 '치매 병명 개정을 해야 한다'고 언급한 이후 청와대 측에서 복지부로 관련 논의를 시작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면서도 "다만, 당시 병명 개정에 대한 여론 동의가 저조했고 무엇보다 실질적 개정 절차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치매는 어리석다는 뜻의 '치(痴)'와 미련하다는 뜻의 '매(呆)' 자를 사용했다. 때문에 한자권 국가인 일본은 지난 2004년, 병명을 '인지증(認知症)'으로 바꿨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중국과 홍콩도 ‘뇌퇴화증(腦退化症)’으로 변경했고, 대만 역시 ‘실지증(失智症)’으로 개정했다. 해당 내용은 본지가 지난해 6월 4일 보도한 [치매국가책임제 4년] ② 일본도 바꾼 '치매' 병명, 우리는 언제 고치나?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회에서의 치매 병명 개정을 위한 움직임은 지난 2011년 당시 성윤환 전 의원이 먼저 시작했다. 치매를 인지장애증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치매관리법 개정안'을 최초 발의했다. 이후 김성원, 권미혁, 김두관 전·현직 의원이 차례로 인지저하·장애·흐림증으로 치매 병명을 개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모두 계류된 상황이다. 

치매 병명 개정 관련 '치매관리법' 발의 현황. 발의된 법안 모두 계류 상태다. /여성경제신문
치매 병명 개정 관련 '치매관리법' 발의 현황. 발의된 법안 모두 계류 상태다. /여성경제신문

2021년 복지부는 국민을 상대로 '치매'의 어리석다는 한자 뜻을 공개한 이후 병명 개정 여부를 조사했다. 이때 치매의 한자 뜻을 몰랐을 때와 알고 난 뒤 병명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국민은 약 20%, 유관전문가는 약 30% 늘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치매 병명 개정 토론회'를 통해 치매 유관기관이 모여 병명 개정 사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찬성·반대 입장이 극명히 갈렸는데, 보건복지부와 대한치매협회 측은 각각 "치매 병명 개정에 대해 여론이 소극적이다", "치매는 의학용어인데 의료계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등 병명 개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반면 한국노인복지중앙회는 "어르신 돌봄 시설에선 치매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중립적 대체 용어가 절실하다"고 주장했고, 대한변호사협회도 "무의식적으로 사용해 온 용어가 부정적인 뜻이 담겼다면, 개정해야 마땅하다"며 병명 개정에 적극적인 입장을 전했다. 

 

어리석다는 의미인 '치매' 한자 뜻 인지 후 병명 거부감 조사. /보건복지부,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어리석다는 의미인 '치매' 한자 뜻 인지 후 병명 거부감 조사. /보건복지부,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최근 복지부 주관 자문 회의에 참여한 현직 정신과 교수는 "병명 개정은 시급한 사안이 아니다"라며 "치매는 완치가 아닌 지연이 목적이기 때문에 돌봄 과정을 개선해야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단계"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인지흐림증'으로 치매 병명을 개정해야 한다는 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일본, 홍콩, 중국, 대만 등 다른 한자권 국가는 부정적인 뜻을 품었단 이유 하나로 치매 병명을 모두 개정했다"면서 "아직 국내만 병명 개정에 대해 지지부진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병명 개정을 두고 의료인과 돌봄 서비스 관계자, 정부 부처 등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데, 이해관계자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대의를 위한 논의를 다시 이어가야 한다"면서 "자칫 10여년 동안 노력해 온 병명 개정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안타까운 일은 발생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지부 측은 자문 회의 결과를 두고 병명 개정 논의에 제동이 걸린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복지부 치매정책과 관계자는 "향후, 의료인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자 모두가 함께하는 치매 병명 개정 관련 자문 회의가 이어질 것"이라며 "이를 통해 대국민 여론 조사 등 개정을 위한 과정은 지속해서 이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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