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가 바둑을 두고 장기판을 벌이는 한국식 공원에 익숙해진 입장에선 ‘들렀다' 가지 않고 ‘통과’하는 센트럴 파크는 신선한 충격이다. 직장으로 학교로 점심 약속으로 향하는 길이 곧 공원이다. 길을 따라 조깅하는 사람, 개를 산책시키는 시민, 커피를 든 관광객이 한 공간에 섞인다. 서울의 연남공원(경의선숲길)도 처음엔 그랬다. 버려진 철길을 공원으로 바꾼 뒤 사람들의 발길이 몰렸다. 한데 몇 년이 지나자 길은 ‘걷는 동선’이 아니라 ‘머무는 구간’으로 바뀌었다. 걷던 사람은 멈추고 상권의 열기도 중간마다 끊겼다. 같은 선형 공원이지
혼자만 삐딱한 사람은 언제나 눈엣가시다. 교실에서도, 직장에서도 예외는 불편함으로 취급된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1811년 뉴욕 맨해튼 도시계획위원회는 직각만 허락하는 격자 도시를 도면에 그렸다. 한데 브로드웨이만 유일한 사선에 머물렀다. 당시 위원회는 뉴욕의 대부분의 기존 도로를 “불필요한 장애물(obstructions)”로 규정하고 새로운 직선으로 덮어버릴 계획이었다. 언덕, 강줄기, 오래된 길은 모두 무시됐다. 그런데 브로드웨이는 이미 교통과 상업의 중심축이었고 지워버리면 오히려 도시의 흐름이 끊길 수 있었다. 위원회 보고서에
강남의 '소나타'로 불리는 벤츠 모델은? 단연 E·C클래스가 아닐까. 공도에 나가면 하루에 적어도 10대 이상은 마주친다. E200, C200 등 4기통 가솔린 엔진은 한국 도로를 집어 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수치를 보면 체감이 쉽다.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벤츠 E클래스(W213)는 2016년 출시 이후 2017년 3만2658대를 판매하며 수입차 단일 모델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이후 5년 연속 1위를 이어가다 2022년 누적 판매 20만 대를 돌파하며 국내 수입차 시장을 대표하는 모델로 자리 잡았다.벤츠 E·C클래스 가솔
60이 넘은 나이에 고민을 했다. 인생은 길고 나는 아직 젊은데 무엇을 할까 생각을 하던 차에 친구가 요양 보호사 자격증 같이 따는 게 어떠냐는 말에 ‘그래. 일단 자격증이나 따보자’라는 생각으로 이 길이 시작되었다.자격증이 나오자마자 시설에서 바로 일을 시작했다. 출근 첫날 아침을 잊을 수 없다. 수많은 어르신들이 모두 나만 보고 있어 부담감이 너무 컸고 어르신들의 눈에는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잔뜩 있는 듯했다. 가까이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두 번째 출근을 하고 스스로 대변을 볼 수 없는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드리며
2016년 1월, 요양보호사 교육원에서 이론 공부를 마치고 주간보호센터에서 실습을 했습니다. 그곳은 제가 살면서 처음 본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 어르신들께서 아침에 오셔서 노래와 민요, 미술을 배우고 영양 식단에 따라 정성껏 준비된 식사와 간식을 드시며 말벗과 하루 종일 안전하고 행복한 케어를 받으신 후 댁으로 모셔다드리는 시스템이었죠. 어르신 대상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유치원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실습을 마치고 나니 이런 곳에서 일하면 참 보람 있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로부터 몇 달 뒤 5월에 자격증을
가을이 깊어갑니다. 길가의 가로수들이 하나둘 옷을 벗으며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잘 가~ 가을아, 행복했어.” 가만히 속삭이며 다가올 겨울이라는 새로운 만남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봅니다.계절이 변하듯 제 삶의 한 장도 저물고 있네요. 어느덧 요양보호사가 된 지도 8년이 되어 갑니다. 처음에는 아무런 계획 없이 노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하고 나서야 그 자격증이 새로운 길을 열어줄 계기가 되었습니다.두려운 마음으로 주간 어르신 보호센터의 문을 두드렸고 첫 출근 날에는 "내 부모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갖고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3년이 흘렀습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난 후 첫 근무지가 바로 지금도 근무하고 있는 주간보호센터입니다. 처음에는 어르신들께 먼저 다가가 손잡아 드리고 안아드리는 일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런 행동들이 일상이 되어버렸죠.화장실에서 배변 실수를 하신 어르신에게 뒤처리 도움을 드리러 들어가서는 코로 제대로 숨도 못 쉬고 입으로 숨을 쉬며 할 일을 후딱 끝내고 나왔던 일, 휠체어를 사용하시는 어르신과 고군분투했던 일, 어르신들의 말다툼을 제지하다가 저에게 불똥이 튀어 상처받고
나는 배움에 목이 말랐다. 일을 하면서도 잠자는 시간만 줄이면 된다는 욕심에 낮에는 계약직 일을 하면서 저녁에 배울 수 있는 곳에는 열심히 배우기로 했다. 2005년에는 케어 복지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고 하여 야간에 여성인력 개발센터에서 공부하고 자격증을 받았다. 어릴 때 간호사가 꿈이었던 나는 그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래도 전문성이 있으니 배워보자고 생각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시설이나 병원 등에 봉사활동을 하러 다녔다.그러던 중 2008년,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
저는 요양 보호사 5년 차 근무 중인 김지영입니다. 여러 어르신을 돌봄을 해왔지만 치매 어르신 돌봄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현재 또한 두 분의 부부인 치매 어르신을 케어중입니다. 정말 기억을 훔치는 병으로 옆에서 같이 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답답하고 속상하지만 안타깝고 가슴 찡합니다. 한 공간에 부부로 있으면서 서로의 존재를 못 알아보고 옆에 앉아 있어도 누구시냐고 물으며 자식과 함께 있어도 그 또한 누구냐고 물을 때 잠시 침묵의 정적인 시간이 잠시 흐릅니다. 분명한 건 요양병원이든 시설로 모셔 야하는데 두 분의 금술이 좋아서 서로를
나는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송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한 날이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바로 면접을 보고 출근한 곳이 바로 이곳이며 나의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으로 꼽고 있는 곳이 바로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주간보호센터이다.처음 출근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첫 출근하여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고 곧장 남자 화장실로 불려 들어갔다. 상상 못 할 일이 벌어졌었고 어르신도 당황하셔서 혼자 해결해 보려고 하시다 이곳저곳에 전부 묻혀 놓은 상황이었다. 얼떨결에 상황을 종료하고 나왔는데 어르신께서는 자존
저는 2022년부터 치매 어머님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님은 평소 공원에 가서 운동 기구를 이용한 가벼운 운동과 햇볕 쬐시는 걸 좋아하시는 건강한 습관을 지니신 정말 누가 보아도 평범한 어르신이셨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집 안에 있던 반지가 없어졌다고 옷이 없어졌다고 하시며 제가 가져갔으니 갖고 오라고 하시며 의심 아닌 확신을 하시는 모습에 굉장히 억울하고 서운했지만 차분하게 잘 생각해 보시면 어디에 두셨는지 기억이 나실 거라고 설명해 드리고 혹시나 치매를 의심하시지 않으실까 안심하실 수 있게 젊은 사람도 신경 안 쓰고 물건을 두
세월 앞에 장사 없어가난한 살림 일으키고 자식들 안 굶기고 속 고쟁이를 팔아서라도 공부는 시켜야겠기에 험한 일 마다하지 않던 그 시절이 언제였던가. 이젠 뼛골 다 빠져 육신은 쪼그라들고 정신은 사그라든 어르신. 진자리 마른자리 새끼들 키울 때는 똥을 싸도 오줌을 싸도 그냥 이뻤겠지만 어르신의 기저귀는 어느 자식이 달가워할까.자식이 상전이라 아무 말 하기 눈치 보며 요양 보호사 오기만을 기다려 현관문 쪽으로만 귀를 세우신다. 베란다 건조대에는 똥 덩어리 철떡 붙은 속옷을 빨았다는 착각으로 널어놓으시고 어제 비워 둔 쓰레기통에는 영락없
재가방문 요양 보호사로 일을 한지가 벌써 1년 6개월이 지났다. 1년 6개월 동안 근로 계약서를 열다섯 번 썼다. 열다섯 군데의 재가방문 노인센터에서 면접을 보고 열다섯 군데의 새로운 집, 열다섯 분의 새로운 어르신을 만났다는 뜻이다.요양 보호사를 공부하게 된 계기는 친정엄마께서 18년 전에 췌장암 말기로 5개월밖에 안 남았다는 판정을 병원으로부터 통고 받았을 때부터였다. 친정엄마께서는 고명딸인 우리 집에 오셔서 마지막을 함께하셨다. 하지만 나와 가족들은 아픈 친정엄마를 편안하게 모시는 방법을 알지 못했기에 맘과는 달리 불편하게 지
자연의 화려함과 힘이 넘치는 봄이 가고 뜨거움과 시원함이 함께하는 여름도 가고 완성의 결과를 보여주는 여유의 가을이 왔지만 1년이 화살의 촉처럼 빠르다. 내가 시설에 입사한 지 벌써 3년이라니···. 그동안 나 자신의 잘한 점과 못한 점을 돌아보고 자신의 생활 습관을 고쳐야 겠다는 마음을 먹는 등 여유가 조금은 생기기도 한다.많은 직원이 부드럽고 신속 정확한 손길로 어르신을 대하고 있지만 내 부모처럼 대하는 직원들을 보면 저절로 존경이라는 마음이 생긴다. 입소 어르신이 많으니 우리는 늘 바쁘다. 숙련된 매의 눈으로 정확한 판단과 행
유년 시절의 우리 집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셔서 늘 어르신들의 담소 장소였고 서울에서 정기적으로 오시는 방물장수 할머니의 숙박 장소이기도 하였다. 문맹자가 많던 농촌 어르신들의 통신수단이 편지, 동네에 하나 있는 호출 전화이던 시절에 작은고모는 친절한 어르신들의 편지 대필자였다. 그런 작은고모가 시집을 가고 어린 4학년 소녀인 내가 그 대필자의 역할을 이어받았다.당연히 나는 자연스럽게 어르신들의 바람, 마음,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무엇을 도와드릴지를 배우고 익히게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의 요양 보호사는 어릴 적 초등학교 교사가
근무하는 요양원까지 걸어서 출퇴근한다. 40분 정도 걸리니 걷기에 딱 좋은 거리라고 지인들은 말한다. 사계절을 지내며 느끼는 감정들은 예전에 다녔던 직장과는 차이가 크게 난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밤늦게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지만 요양원에서 일하고부터는 시간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어 좋았다.평일에 쉴 수가 있고 휴무일 때는 가보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다는 점이 아주 좋아 항상 감사를 느끼곤 한다.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마음으로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방문 요양을 1년 5개월 하다가 지금 근무하는 요양원으
내가 13년 전 이력서를 들고 이곳으로 들어올 때 유난히 이곳 이미지를 살려준 곳은 입구 오른쪽 파란 잔디 위에 시원한 물을 뿜어내는 분수대와 이태리식 하얀 철 의자 세트였다. 그곳을 볼 때 이곳 어르신들의 생활이 그려지면서 나도 햇살이 좋은 날 어르신을 모시고 예쁜 쟁반에 맛있는 다과와 노란 주스를 담아서 같이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을 그려 보면서 출근하였다.조회 시간에, 누군가를 위해서 잠들기 전 기도하면서 잘못된 일이 있으면 그 모든 것을 용서하고 나 또한 용서를 구하고 사랑하고 감사하다고,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훈련을 아침마
혼자 적적하게 지내시다 우울증과 경증 치매로 요양원에 입소한 어르신이 계셨다. 겉으로는 미소를 보이시지만 지나온 세월의 아픔과 노년의 무기력감으로 힘드신 것 같았다. 어르신은 유독 꽃을 좋아하였다. 방에 꽃 화분을 하나 놓아드리니 꽃 가꾸기에 관심과 열정을 보이셨다.일상에 적응을 하실 때쯤엔 화단에 꽃과 채소를 심으실 수 있도록 하였고 화단을 열심히 가꾸시는 어르신 덕분에 요양원에 오고 가는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셨다.늙은 호박을 같이 수확하여 호박죽도 해 먹고 깻잎을 따서 반찬으로 만들어 먹기도 했다. 어르신은 본인의 역할이 생
친정엄마 연세가 88세 되던 해에 혹시나 몰라서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2년 후에 엄마는 장기 요양 5등급에 해당하였습니다. 가족 요양을 시작했습니다. 경로당에서 총무를 10년이나 하고 그렇게 도도하고 눈치도 있고 돈도 적절하게 잘 쓰시던 엄마가 치매가 왔습니다.치매 증상을 늦추기 위해 약을 먹으며 글씨 공부도 하고 숫자도 세고 돈도 세고 고스톱도 쳤습니다. 그렇게 했지만 상태가 안 좋아졌습니다. 4등급이 나왔습니다. 걸핏하면 화를 내고 물건을 던지고 욕하고 비틀거리며 걸음도 잘 못 걸으시고 가스 불도 켜놓고 그냥 돌아
항상 웃음을 주는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면서 눈물이 날 때도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아름다운 청춘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작은 침상에서 외로움과 사투하는 어르신들과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선뜻 말 못하는 마음의 담장. 이 담장을 세상에 펼치고 열린 마음이고 싶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말도 못 하겠네. 어르신들의 반복되는 질문과 이해되지 않는 행동에 당황스러운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선생님들과의 오해도 생긴다.에피소드도 하나씩 생겨 웃음을 주는 어르신들을 마음으로 돌보게 된다. 육체적인 노동과 비위가 상하지만 마음과 생각을 바꾸고 내 몸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