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수입이 거의 없지만, 그나마 글에서 약간의 돈이 나온다. 물론 돈 내고 내 글을 읽는 사람은 없다. 글은 대개 책과 정기간행물을 통해 팔리지만, 종이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이제 글로 돈을 벌려면 온라인 콘텐츠로 만들어야 하는데 생각보다 고단한 작업이다. 물론 예전처럼 책을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고단하면서 손실위험마저 크다. 책의 판매 단위부터가 과거와 다르다.그래도 대중의 뇌리에 자리 잡은 ‘책’ 이미지는 여전해, 나를 ‘작가’로 소개하면 바로 “무슨 책을 썼냐?”고 묻는다. 그들은 아직도 ‘책은 작가가 쓰는 것’
나는 처가를 생각하면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섬이 생각난다. 영화 의 콜레오네가(家)의 고향이기도 한 곳이다. 전형적인 이탈리아 농부가 잘 자란 농산물을 들어 올리며 햇살 아래 환하게 웃는 모습, 고단한 노동 속에서도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고, 저녁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시끌벅적 식사하는 행복한 가정···. 남부 이탈리아인의 가족주의는 유명하다. 나의 처가도 그렇다. ‘건강, 웃음, 가족 사랑’이 집안을 표현할 키워드다. 처부모님의 가족 사랑은 엄청나다.장인어른은 체구도 남부 이탈리아인처럼 작고 단단하다. 아버님의 키워드는 ‘
영화를 보는데 화면이 멈추었다. “어? 왜 이래?”하며 와이파이 공유기를 껐다가 켜보고, 셋톱박스 코드를 뽑았다가 다시 끼워보았다. 정지 화면에서 흉측하게 늘어진 여배우 얼굴이 잠깐 움직였다 멈춘다. 우리 집 맥가이버이자, 이과 성향이 강한 아내가 자신만만하게 다가와 생색부터 낸다. 그러나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한 일이라곤 결국 인터넷 회사에 전화한 것뿐.친절한 상담직원은 회사에서 내보내는 뭔가를 좀 더 강하게 해볼 테니 잠시 후 확인해 보라고 한다. ‘수압이나 전압을 높여 쏴주는 것처럼 인터넷도 그런 게 있나?’ 잘 이해되지는 않는
저녁 먹으려고 갈비탕집에 들어섰다. 방 한쪽에서 단체 모임을 한다. 열 명 남짓의 60대 중반 남성들, 중학 동창들이다. 모임을 일찍 시작했는지, 일곱 시 조금 넘었는데 파하는 분위기다. 등지고 앉았더니 모습은 안 보이고 소리만 들린다. 잠시 후 회장인 듯한 이가 조금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쪽 말은 언제 들어도 포근하고 나긋나긋하다.“오늘 여기 밥값은 최규보가 낸댜. 규보 아들이 이번에~” 그런데 좌중은 계속 지역방송 중이라 회장님 말씀은 대화 속으로 흩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든지, “잠깐 주목해 봐!” 같은 사전 멘트가 있
그 사람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하마터면 인사할 뻔했다. 그동안 줄곧 나 혼자 인사했는데, 오늘은 참았다. 그런데 통쾌하기보단 찝찝하다. 대체 이게 뭐냐? 저쪽은 신경도 안 쓰는데 나 혼자 신경전이라니!우리 아파트에는 아주 마음에 드는 게 있다. 잔잔하고 은은한 느낌이 남는 것, 바로 인사다. 엘리베이터에서 누굴 만나면 99%는 서로 인사를 나눈다. 나머지 1%는 택배, 배달 등 외부인, 그리고 방금 본 그 사람이다.그렇다고 주민들이 천부적인 인사 에너지를 타고난 건 아니다. 딱 엘리베이터 안에서만 인사하고, 주차장, 헬
얼마 전에 새 차를 사면서 그동안 타던 차를 처분했다. 처음에는 팔지 않고 서울의 아이들 집에 놓고 가끔 사용할까 생각했지만, 아이들도 나도 대중교통 완벽한 서울에서 굳이 운전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정든 차를 떠나보내 서운하다. 13년간 13만km 주행했으니 1년에 겨우 1만km꼴이다. 내겐 소중해도 남에겐 낡은 고물차일 뿐이니 대도시에선 찾는 사람도 없겠지만, 이렇게 멀쩡히 잘 굴러가는 중고차는 전문가 손을 거치면 지방 노년층 가정에 입양되어 귀여움받을 것이다. 요즘 지방에 사는 노인들에겐 자동차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나의
50세에 명예퇴직했다. 부장 자리를 비워주는 대가로 좋은 대접을 받아 기분이 좋았는데, 주변에선 웬일이냐고 했다. 웬일은 무슨 웬일? 한 걸음 더 가면 임원이지만, 힘들게 경쟁하기 싫었다. 그동안 좋은 직장 덕분에 가족들 잘 먹여 살렸고,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다고, 이 정도면 조심조심 아껴가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물론 내내 좋았던 건 아니다. 밀려드는 업무와 감당하기 힘든 상사로 인해 스트레스받아 전직을 결심했던 시절이 있다. ‘그래 학교로 가자! 아이들만 잘 가르치면 되겠지.’ 그런데 공립학교 임용고시는 엄청 치열하고, 사
(지난 회에서 이어짐) 내일은 귀국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출발하기 위해 수완나품 공항 근처 랏끄라방의 작은 호텔에 숙소를 잡았다. 오늘은 태국 여행의 마지막 느낌을 가방 속에 다독다독 챙겨 넣을 수 있는 간단한 나들이를 계획했다. 공항 동쪽으로 7km 정도 떨어진 후아타케(Hua Takhe) 수상마을이다. 이런 곳은 다녀온 사람들의 호들갑스러운 소개와 예쁜 사진 덕분에 관광객이 더 몰려 실제보다 과대평가 되곤 하는데, 구글에는 그저 '잔잔하고 좋다'라는 짧은 소개가 전부다. 큰 기대 없이 가보기로 했다.같은 기온이어도 방콕은 치앙
(지난 회에서 이어짐) 긴 여행이 끝나가니 좀 아쉽다. 어제 치앙라이를 떠나 방콕에 왔다. 돈무앙 공항에 내렸을 때는 점심시간이 지나 있었다. 살인적인 공항 물가는 이곳도 예외가 아니어서 맥도날드 빅맥이 한국보다 20% 정도 비쌌다. 개도국일수록 공항 물가가 믿기지 않을 때가 많다. 갈 사람한테 크게 한탕 뽑으려는 걸까, 전에 하노이 공항에선 반미 하나, 커피 두 잔, 음료수 한 잔에 3만원이었다.하늘길은 수월했지만 방콕 안에서 이동하는 게 고생이었다. 북쪽 돈무앙부터 동쪽 랏끄라방까지 택시를 타면 3만원쯤 나올 거리이지만 물가 개
(지난 회에서 이어짐) 이번 여행에서는 교통편이나 숙소 예약처럼 필수적인 인터넷 결제 외에는 전부 현금으로 지출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 환전해 놓고 쓰지 못한 태국 밧화를 오랜만에 꺼내 보니 마치 공돈처럼 느껴졌다. 연말정산 환급받으면 내 돈에 먼저 손댄 국세청을 탓하기보다 돈 생겼다며 기뻐하는 것처럼, 때론 흐릿한 돈 관념도 괜찮다.여행할 때 현금을 쓰면 편한 점이 있다. 여권, 지갑, 스마트폰은 호텔 금고에 모셔두고, 그날 쓸 돈 약간과 전에 쓰던 빈 스마트폰만 챙기면 아주 홀가분하다. 이 스마트폰은 카메라로 쓰고, 카페에서
“뭐 먹을까?” “당신 먹고 싶은 거.” “난 배 하나도 안 고파.” 선택권을 양보하는 척하며 서로 떠넘긴다. 이 정도면 둘 다 결정 장애다. 나가기 귀찮아 벌써 한 시간째 호텔 방에서 비비적거린다. 이러다 결국 건너편 식당에서 볶음밥이나 먹게 되겠지. 그 맛, 이제 좀 질린다. 김칫국에 계란찜이 그립구나!이번 여행은 음식에 관한 대비가 허술했다. 출발 전부터 태국 음식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미리 준비한 한국 음식은 즉석밥, 컵라면, 볶음김치, 단무지 정도, 그리고 기내에서 챙겨온 고추장 두 개가 있다. 물론 많이 준비했어도 여기
이마에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한다. 여긴 그랩 택시도, 툭툭도 없다. 터미널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더운 날씨와 태국의 보행 여건을 고려하면 무리다. 이미 사람들로 꽉 찬 썽태우 몇 대가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지나갔다. 그런데 가게 아주머니는 다른 방법은 없고, 그냥 타면 된다고 한다. 마침 한 대 온다. 이번에는 있는 힘껏 손을 뻗었다. 적극성이 통했나, 드디어 차가 섰다.타려고 뒤로 돌아갔더니, 오, 맙소사, 앞의 차들보다 더 빽빽하다. 피난민 트럭처럼 뒤 발판에까지 사람들이 가득 매달렸다. “어? 어머! 에이! 헉!”,
방콕에서 700km 떨어진 치앙마이로 떠나는 날이다. 비행기로는 한 시간이지만, 기차 타고 천천히 가고 싶었다. 항상 높은 텐션과 설렘으로 살아가는 내 아내, 이번에도 역시 출발 전부터 야간 침대열차의 낭만을 상상하며 많이 기대하는 듯했다. 가보면 크게 다를 텐데···. 하여튼 아내의 취향이 저렴한 쪽으로 꽂히는 건 나로서는 다행이다.인터넷을 찾아보니 오후 6시 40분에 출발하는 9번 열차의 일등석이 복도와 분리되어 있어 가장 좋은데 빨리 예약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이등석인데, 복도 양쪽 창가 위아래로 침대가 있다. 그것마저 놓
여섯 시간 만에 방콕에 도착했다. 두 편의 한국 영화는 지루했고 기내식은 기대에 못 미쳤다. 코로나 이후 대형 항공사 세 곳을 이용해 보았는데 전부 기내식 수준이 이전보다 못하다. 원가절감으로 코로나 시절의 타격을 만회하려는 건지, 뭔가 인색함이 느껴진다. 해외여행이 가장 실감 나는 건 가방 쌀 때, 그다음은 첫 기내식 받는 순간인데 왠지 이번은 감도가 좀 떨어진다.외국 공항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특유의 향···. 수완나품공항에는 동양과 서양이 섞인 듯한, 또는 화장품과 땀과 태국 향료가 섞인 듯한, 약간 국제적인 냄새가 배어있다.
출국하기 참 힘들다. 2주 전에 방콕행 항공편을 예약한 후 인천공항행 버스 시간표를 보니 적당한 시간대는 마감이고 앞뒤로는 텅텅 비었다. 전에도 이랬는데, 여행사에서 싹쓸이한 것 같다. 정말 치밀하고 치열하다. 그래도 여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이른 시간으로 예매했다. 그런데 눈이 내려 고속도로가 막힌다. 빨리 출발하기 잘했다. 첫눈을 이렇게 어수선하게 맞이하다니! 더운 나라에 가는 터라 퇴출 예정인 얇은 패딩만 걸쳤더니 더 을씨년스럽다.도착해 보니 타이항공 카운터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사전에 좌석 선택을 하지 못했기에 미리 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아내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요즘 거래사 젊은 담당자들은 전화보다 카카오톡을 통한 업무 연락을 선호한단다. 말이 손보다 빠르니 복잡한 내용을 서로 확인해 가며 일을 진행하려면 전화가 효율적인데, 통화할 때마다 부담스러워하는 게 느껴진단다. 전화 공포증(Call Phobia)이다.물론 카톡은 기록이 남으니 내용을 재확인하기 좋고, 전달도 쉽고, 증빙자료로서도 효과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카톡 문장을 아무리 읽어봐도 정확한 의사 파악이 힘들 때가 있다는 것이다.퇴직 이후 20대들과 대화할 기회가 별로 없고, 주로 방
돈가스를 처음 맛본 것은 고1 초여름 어느 날이었다. 토요일 오후, 담임선생님은 나를 학교 옆 고층 건물 지하 음식점으로 데리고 가셨다. 돈가스를 주문하셨고, 크림수프가 나오자 후추를 직접 뿌려주며, 성적이 향상된 게 기특해서 사주는 것이라고 하셨다.돈가스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충격이 잊히지 않는다. 맛의 신기원이었다. 선생님은 당신 것을 절반 뚝 잘라서 넘겨주기까지 하셨다. 집에 와서 아버지께 자랑삼아 말씀드렸더니 며칠 후 흰 봉투를 주시며 전해드리라고 하셨다.학력고사가 끝나고 할 일 없이 친구들과 명동거리를 싸돌아다니던 추
너무나 좋은 계절, 저녁 식사 후 산책하러 나갔다. 천변 산책로에서 주민들이 뛰거나 걷거나 자전거를 탄다. 지난여름, 이곳 풀숲에 숨어있던 40대 남자가 밤에 운동하던 여성을 끌고 들어가는 일이 있었다. 다행히 여성은 강하게 저항해서 탈출했고, 남성은 성폭행 시도 혐의로 체포되었다.긴 산책로 어디쯤에서 그 사건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구간이 밝고, 밤 10시 정도까지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다. 풀숲 폭도 10m 정도이고 풀은 높아 봐야 내 키 정도다. 그런데 그런 일을 계획한 걸 보면 아주 대담하거나 아주 많이 모자란 사람
소멸이 임박한 아내의 항공사 마일리지를 우연히 발견해서 급히 방콕 여행을 다녀왔다. 바로 전 달에 가족들과 베트남 하노이에 다녀온 터라 이래도 될까 싶었지만, 마일리지도 엄연히 우리 재산인데 그대로 사라지도록 놔둘 순 없었다.시간이 촉박했다. 일단 마일리지에 맞춰 방콕을 목적지로 정한 후, 서둘러 계획을 세웠다. 방콕행 편도 항공권 2매를 발급받고 올 때는 다른 항공사를 선택했다. 무료항공권이어도 유류할증료 등으로 18만원 들었고, 귀국편까지 합쳐 2인 항공료가 총 57만원이다. 뒤늦게 생각나서 최저가 항공권을 검색해 봤더니, 저비
90년대 중반쯤이었을까, 동남아 여행을 다녀오신 아버님께서는 “거기는 우리나라 70년대 같더라” 하셨다. 당시 동남아에 가본 경험이 없었기에 그런가 보다 생각했고, 곧 잊어버렸다.그런데 지난달에 가족들과 베트남에 갔을 때 둘째 아이가 “아빠는 베트남이 우리나라의 언제 적 같아요?”하고 물었다. 깜짝 놀랐다. 해외여행 경험이 없던 1935년생 할아버지와 유럽 등으로 실컷 돌아다녔던 1999년생 손녀딸에게서 어떻게 30년의 시차를 두고 똑같은 말이 나올 수 있는지 신기했다.“한국이 2023년을 살고 있으면 당연히 이곳도 2023년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