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1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씨가 일본의 104대 총리로 취임했다. 1885년 내각제도가 시작된 이래 실로 130년 만에 탄생한 여성 총리다. 나라현 출신이란다.문득 3년 전 가을에 방문했던 나라현의 풍경이 떠올랐다. 선명히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도다이지(東大寺)의 대불과 나라 공원의 사슴들, 긴푸센지(金峯山寺) 자오도(蔵王堂)에 모셔져 있는 세 좌(座)의 자오곤겐(蔵王権現) 상(像)이다.도다이지의 대불은 사진으로 보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대좌에서 머리까지의 길이가 약 21m에 달한다. 키가 150
우리 동네에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유기농 채소 가게가 있다. 그곳에 갈 때마다 떠오르는 마을이 있다. 기후현(岐阜県)에 있는 시라가와고(白川郷)다. 이유는 그곳에서 산 까맣게 물들인 대나무 가방 때문이다. 친환경을 지향하는 그 채소 가게는 비닐봉지 같은 건 준비해 놓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런저런 채소를 넣기에 딱 좋은 대나무 가방이 시장바구니로 간택되었다.몇 년 전 시라가와고를 여행할 때였다. 집합 장소로 향하는데 오렌지 불빛이 고운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다리만 건너면 주차장인데 나는 가게로 들어갔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평상시
가와고에는 나 홀로 여행을 막 시작했을 즈음에 골랐던 곳이다. 관동 지역(関東地域)에 있는 사이타마현(埼玉県)이니 도쿄에서 가깝고, 전철을 두 번 정도 갈아타면 된다는 이유로 선택했더랬다. 코로나가 번창하던 2020년 가을의 일이었다.공공 교통수단이 버스밖에 없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나는 전철을 타 본 기억이 없다. 서울에 갔을 때 타 봤을 법도 한데 버스를 탔던 기억밖에 없다. 서울에 갔던 기억이라 해도 30여 년 전의 이야기이니, 어쩌면 정말로 전철은 타지 않았을 수도 있다.전철이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하게 된 것은 도쿄에 온 후였
여행지에서 미술관을 찾는 습관이 생겼다. 덕분에 인생이 한 뼘쯤 풍요로워진 느낌이다. 잘 몰라도 그림을 보고 있으면 편안해진다. 이런 재미를 누리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애초에 그림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것부터가 쉰 살이 넘고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환갑을 눈앞에 눈 지금, 단체여행에 참여했을 때도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미술관을 찾곤 한다.이번 여행은 그야말로 그러한 나의 취향에 딱 맞는 일정이었다. 첫날부터 미술관 방문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오카야마현(岡山県) 구라시키(倉敷) 미관지구(美観地区)에 있는
이곳은 야마구치현(山口県) 나가토시(長門市)에 있는 모토노스미 신사(元乃隅神社)다. 2015년 CNN이 발표한 '일본 절경 31'에 선정되기도 했다. 푸른 바다와 하늘 그리고 123개의 도리이(鳥居)가 연출해 내는 경관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날씨까지 도와줘서 완벽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을 펴고 깊은숨을 쉬었다. 숨통이 확 트인다. 이 풍경을 보기 위한 여행이다.버스가 모토노스미 신사 전용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마음이 바빠진다. 조금이라도 빨리 팸플릿에서 본 경관을 내 눈으로 보고 싶어서다. 전망대로 이동했다. '아! 이거구나.'
3월로 접어들어서까지 물러날 줄 모르는 겨울에 살짝 짜증까지 나기 시작했을 즈음 친구와 우에노(上野) 공원을 찾았다. 우리를 반긴 것은 진분홍색을 자랑하며 대롱대롱 탐스러운 꽃을 피우는 '간이자 쿠라(寒緋桜)'였다. 처음 보는 꽃이었다. 이름표가 없었으면 벚꽃인 줄도 몰랐을 터였다.수년 전 식수하는 것을 봤을 때는 의문을 품었었다. 나무가 많은 공원 안에 새삼스럽게 또 무슨 나무를 심나 하고···. 그러나 앙상한 겨울나무 군단과 진분홍 꽃의 향연은 절묘했다.봄방학 시즌을 맞아 반달이 넘는 긴 휴가에 들어갔다. 밀린 집안일을 처리하기
가을의 어느 날, 배낭 하나 짊어지고 여행길에 올랐다. 패키지 투어에 나 홀로 참가한 것이다. 8시 10분 하네다(羽田)에서 출발하여 시마네현(島根県) 하기·이와미(萩·岩見) 공항에 도착했다. 첫 목적지는 '타이코다니 이나리 신사(太鼓谷稲成神社)'다. 천 개의 도리이로 유명하다는 관광 안내문을 본 후 어떤 풍광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컸다.안내원의 말에 따르면, 일본 전국 방방곡곡에 수천에 이르는 ‘이나리(稲荷) 신사'가 있는데 타이코다니 이나리 신사는 ‘나리'라는 글자를 '荷' 자가 아닌 성공의 '成' 자를 쓴단다. 이 신
해프닝으로 시작된 사가현 여행"저 사람, 왜 저러지?""전철 방향을 착각한 거지.""뛴다고 탈 수 있을까?"홈 의자에 앉아 있던 어르신들의 대화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 후에 어떤 대화가 이어졌는지는 모른다. 맹렬히 달린 보람이 있었는가. 결론을 말하자면 없었다. 시간 절약한답시고 올라탄 엘리베이터는 날 엉뚱한 곳으로 데려갔다. 택시 타는 곳으로 달렸다. 다행히도 딱 한 대가 대기 중. "옆 동네 공항버스 타는 곳까지 가주세요."일찍 움직이기는 했으나 반대 노선 홈에서 기다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전철이 홈에 도착하는 순간, 나는
자연이 풍부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활력을 얻기 위해 혼잡한 도시로, 건물에 둘러싸여 사람이 미어터지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에너지 충전을 위해 자연을, 일상에 지친 사람들은 숨을 고르려 낯선 곳을 찾는다. 이러한 행동들을 '여행'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익숙한 환경으로부터의 도피, 일상과 비일상을 오가며 삶의 균형을 조절한다.1박 2일 온천 여행. 이번 여행은 결혼 30주년을 맞은 우리 부부에게 큰아이가 선물한 것이다. 작년 11월에 취직하고 올여름에 첫 보너스를 받았다. 회사 대표가 첫 보너스는
추적추적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회색 하늘과 회색 톤에 가까운 동네 집들의 지붕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떠오르는 푸르른 풍경이 있었다. 카페테라스에서 보이는 숲. 실제로는 정원일지도 모르겠다. 숲으로 보이는 나무들 뒤로 가보지 않아서 그게 작은 숲인지 정원인지 알 길이 없다. 그저 내 기억에 남아있는 인상이 '숲'이다.기억에 남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여행지나 풍경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그저 다리를 쉬게 하려고 들렀던 카페나 족욕 장소 등이 그렇다. 그런 소소한 장면들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카가와현 여행길. ‘우동현’
여행 상품을 검색하다 보니 ‘국가 지정 중요 유형 민속 문화재’로 지정된 다래나무 덩굴로 만든 다리를 보러 가는 투어가 눈에 띄었다. 대체 다리가 얼마나 훌륭하길래 문화재로 지정되지? 라는 호기심이 일었다.사진에는 울창한 숲속 계곡에 살짝 곡선을 그리며 걸려있는 다리가 보였다. 우선 그 경치가 아름다웠다. 게다가 지금까지 가 본 적이 없는 도쿠시마현(徳島県)에 있다지 않는가. ‘일본열도 발도장 찍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나로서는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예약했다.일본 3대 비경 다리로 꼽히는 ‘이야노 가즈라 바시(祖谷のかずら橋)’는
6월 말에 떠나는 경주 여행. 돌아오는 반응은 두 가지였다. '수학여행 때 갔었지'와 '더워서 힘들겠다'. 나는 여고 때 수학여행을 가지 않아서 처음 가는 길이고, 더위보다는 가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경주에 관한 관심은 일본의 교토(京都)를 찾으면서 시작되었다. 일본의 고도(古都)가 교토라면 한국의 고도는 경주 아닌가. 교과서로만 접해 온 '경주'는 막연하지만, 마음이 가는 곳이었다. 그 막연함을 해소하고 싶었다. 일본에서 살아온 날이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날보다 길어졌다. 어쩌면 한국인으로서 루트를 재확인하는 여
안개가 내려앉듯 소리도 없이 가랑비가 내리는 날이면 떠오르는 아스라한 풍경이 있다. 푹신푹신한 검은 흙을 뚫고 곱게 열을 지어 얼굴을 내밀고 늘어서 있는 쪽파 텃밭이다. 한 장의 사진 같은 기억이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고 하얗게 내리는 가랑비와 생생한 쪽파, 그리고 물기를 머금은 검은 흙. 실제로 흙이 검었는지는 자신이 없다. 내 기억으로는 그렇다.요즘은 마당과 텃밭이 있는 주거 환경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농가에 마당이나 텃밭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텃밭은 주로 외할머니가 관리하셨는데, 외할머니는 마치 마법사 같았다. 아
몇 년 전부터 은근히 신경 쓰이는 곳이 있었다. 도쿄에서 가까운 곳이라 나 홀로 훌쩍 당일치기로 갔다 올 수 있는 곳. 고에도(小江戸)라 불리는 지바현(千葉県) 카토리시(香取市) 사하라(佐原)다.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옛 모습이 남아있는 관광지를 설명할 때 ‘고교토(小京都, 작은 교토)’ 혹은 ‘고에도(小江戸, 작은 에도)’라는 표현을 쓰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교토 주변은 ‘고교토’, 도쿄 주변은 ‘고에도’라 불린다.‘고교토’는 지방의 다이묘(성주)가 살던 성 주변 마을의 모습이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교토가 정치의 중심이었던
사카모토 료마의 고향을 가다이번 여행지는 일본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역사 속의 인물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고향 고치현(高知県)이다. 최근에 읽은 196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달려 있었다.坂本龍馬. 1835~1867. 일본 에도시대 말기의 정객. 막부시대를 종식하고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유명하다.그런 연유에서인지 혁신적인 사람을 칭송하는 장면에서, 책의 내용을 빌리면 다음과 같은 식으로 거론되곤 한다. '기존의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금기에도 차례차례 도전해서 야나기사와 그룹의 사카모토 료마라
이번 여행지는 ‘도고온천(道後温泉)’이다. 그림책에나 나옴 직한 ‘봇짱 열차(坊っちゃん列車)’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장편 소설 이 떠오른다. 나는 이란 소설을 읽은 적은 없지만, 일본 생활 30년이다 보니 자연스레 상식처럼 뇌리에 박혀 있다. 에히메현(愛媛県)을 소개할 때마다 등장하는 도고온천 본관 모습과 마츠야마(松山) 시내를 달리는 봇짱 열차의 영상 덕분이다.도고온천은 에히메현(愛媛県)의 현청 소재지 마츠야마 시에 있는 관광 명소로 3000년의 역사가 있다고 한다. 1894년에 개축한
도호쿠 지방 여행 1박2일. 마지막 날의 일정 중 하나가 내가 기대해 마지않았던 곳, 아오모리현(青森県)의 오이라세 계류(奥入瀬渓流)이다. 숲길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혼자 걸어도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서 지루하지 않다.오전에 이와테현(岩手県)의 하치만타이(八幡平)를 걸은 후, 아키타현(秋田県)과 아오모리현(青森県)에 걸쳐 있는 도와다호(十和田湖)로 향했다. 도와다호는 약 20만 년 전 화산 활동에 의해서 만들어진 칼데라 호수다. 그곳에 긴 세월에 걸쳐 빗물이 모이고 모여서 아름다운 호수가 되었다.
가는 해와 오는 해의 경계에서 자판을 두드린다. 한 해에서 다른 해로의 여행. 2023년 그믐날에 다듬은 글을 2024년 첫날에 다시 한번 가다듬었다.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미래로 타입 슬립한 듯하기도 하고, 과거를 미래로 끌고 온 느낌이기도 하다.경계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문득 이와테현과 아키타현에 걸쳐 펼쳐지는 하치만타이(八幡平)에 생각이 이르렀다. 걸을 때는 몰랐다가 집합 시간이 다 되어서야 발견하고는 서둘러 ‘県境’이라고 쓰인 푯말 사진을 찍었더랬다. 경계선이란 말에는 묘하게 사람을 설레게 하는 매
‘일본열도 발도장(47개 도도부현) 찍기’를 시작하고 40개의 현을 돌았다. 이제 7개의 현이 남았다. 수박 겉핥기식이기는 하나 방방곡곡을 돌아다녀서인지, 눈에 익은 곳의 사진이나 영상을 접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마치 지인의 모습이라도 발견한 듯 반갑다.설명을 읽거나 듣기 전에 그곳이 어디인지 알아맞혔을 때는 더 신이 난다. 그저 정신없이 스쳐 지나온 것만 같았던 관광지들이 나의 추억 저장고에 차곡차곡 쌓여 있음을 느끼며, 결코 쓸데없는 일이 아니었다고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오늘 이야기 할 ‘무사 저택 거리, 가쿠노다테(
이와테현(岩手県)이 포함된 여행을 예약해 놓고 아들에게 물었다.“이와테현은 무슨 요리가 유명하지?”“왕꼬 소바 아닌가?”“티브이에서 본 적 있어. 직원이 옆에 서서 그릇을 비우면 재빠르게 소바를 추가해 주는 거 맞지?”“응.”그런데 전통적인 왕꼬 소바를 단체여행에서도 먹을 수 있을까? 더구나 내가 여행했던 2022년 9월은 코로나 때문에 가능한 한 사람끼리의 접촉을 피하라는 때였다. 어쨌든 그 대처 방법을 포함해서 어떤 스타일로 먹게 될지 궁금했다. 두 번째 목적지인 추손지(中尊寺)를 보고 나서 왕꼬 소바를 먹으러 간다.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