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한 마디로 소개하자면 가을남(秋男) 입니다.학창 시절 친구들이 만장일치로 지어준 별명이자 아호입니다. 재미없는 수업 시간엔 늘 꾸벅꾸벅~ 졸기를 밥 먹듯 즐겨한 녀석이었지요. 그러나 가을학기가 시작되면 눈망울 튀어나온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멜랑콜리 낙엽길을 밟으며 헤매고 다녔지요.무색무취한 녀석이 가을이 시작되면 허파에 가을바람이 들어가 시를 읊어대고 연필로 노트에 그림을 그리다가 흥이 오르면 가방 속 보온병에 숨긴 소주 한 모금 마신 기운이 전신이 저릿해지면 유랑 시인 김삿갓 흉내를 내던 가을 소년.살짝 얼큰하게 취한 김삿갓의
나의 젊은 날들은 기행으로 얼룩져 삐딱했고, 실수투성이에 고집쟁이였습니다.친구들은 나를 보고 간첩같이 수상한 녀석이라며 수군거렸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입시 준비에 관계없는 문학반에 입문하여 보들레르의 술에 취한 시를 읊으며 취한 선배들로부터 술과 담배를 전수했습니다.내 최대 주량은 유전적으로 소주 반병에 맥주 딱 한 병밖에 될 수 없음을 여러 번의 시행착오로 일찌감치 확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나름의 음주 원칙 한 가지를 세웠습니다. 월말고사 성적 1등을 놓치면 술·담배를 바로 그만두기로···. 나 자신과의 승부욕
"떠나느냐 버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30년 동안 쉬지 않고 새벽별 보며 출근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깊고 푸른 밤 과로에 멍든 마음으로 퇴근하는 직장 생활을 자발적 퇴사로 마무리하던 날이었습니다. '돈도 명예도 경쟁도 다 싫어지면 떠난다'는 오랜 결심을 자발적 사표로 감행했습니다. 회사의 주주, 임직원과 이해관계자 고객들이 보기엔 놀랍고 의외의 결정이었습니다.회사에서의 마지막 날 동료들과 열띤 토론의 추억들을 지웠습니다. 전장의 무기고처럼 긴장감 넘치던 사무실과 책상과 서랍을 내 흔적 하나 남지 않도록 비웠습니다. 수십 년 내 흔
서른아홉에 마흔 고개를 앞두고 있으신가요? 아니면 서른아홉을 지나셨다면 당신도 저처럼 뜬 눈으로 그 밤을 새웠을까요?제 나이 서른아홉에서 마흔으로 넘어가던 2002년은 월드컵 4강의 꿈을 이룬 대한민국이 강대국 러시아, 네덜란드 그리고 브라질을 제치고 국민소득 세계랭킹 11위의 자리에 오른 해이기도 합니다. 그 시절 우리 국민은 대부분 가까운 날에 행복한 중산층이 되거나 성숙한 민주주의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유쾌한 시민이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신 없는 말은
당신의 새벽기도에 신의 응답이 없다면날 밝아 지질한 하루가 어제와 다르지 않다면괜스레 친구를 깨우지 말고 수평선으로 나아가라 바다로 나아가 보면 헤르만 헤세의 허무한 구름 조각을 밀어내고 태평양 함대를 띄워준 파도의 포말들이당신의 하루를 힘차게 때리거나 구멍 난 상처를 하얗게 씻을 테니수평선으로 홀로 깊이 밀고 바라보라. 어마무시한 풍력은 밀물과 썰물을 밀어붙이고인공지능에 지린 몸뚱이를 시퍼렇게 물들일 테니반나절만 스마트 폰을 끄고 수평선으로 걸어가라 당신의 그 하루 실존은어떤 흐린 날의 상처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다 여성경제신문 최
청년도 아니고 소년도 아닌 열아홉 고3에게는 미래에 무엇이 되고픈 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등하굣길 가방 들고 길을 걸으면 늘 만나는 무념무상의 뜬구름으로 살다 가고 싶었습니다. 몇 달 지나면 만 스무 살 성인이 될 싱싱한 심장을 가진 나에게 현실과 미래는 아무런 재미도 의미도 없었습니다.물리 시간에 배운 중력 가속도의 법칙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습니다. 대책 없이 새까만 우주 블랙홀 속으로 쑤욱 빨려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지요. 수업 시간 내가 앉은 자리에서 슬며시 투명 인간이 되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국영수 예상 문제들을
살아 보니 저절로 알게 되었지사랑하던 것들의 기억은 하나도 남김없이헬리콥터 날개에 흩어 날려 버려진다는 것을 나이 드니 아팠던 만큼 보게 되었지언제 떠날지 물어보지 않아도 스스로 떨어져 나간 군상들의 순리를 돌아와 보니 그럭저럭 깨닫게 되었거든한 때 빛나던 시위대의 매캐한 눈물과 상처받은 청춘의 핏자국이 덜 말랐어도 내 그대를 순순히 보내줄 만큼 충분히 늙었음을 검투사여 당신은 아는가그대를 추락시킨 헌법이 절정을 터트리고 스파클링와인 거품에 탄성이 날아들 때벚꽃은 벌써 아니 이미 낙상을 예보했음을 만남은 이별의 시작점이별은 영영 이
2월과 3월의 경계에서 접선하는 시간엔 따뜻한 봄날을 기대하곤 하지만 변덕쟁이 마음처럼 만만하게 봤다가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 바로 날씨 아닌가요?지난겨울의 기억들은 인공지능 데이터 센터로 팔려 갔는지 대통령의 전쟁놀이 장난 같은 계엄 소식 말고는 영 남은 게 없습니다. 여전히 시린 3월 첫날의 하늘엔 '대한민국 독립 만세'를 유산으로 남긴 유관순 누님의 입술 꼭 다문 얼굴이 걸려 있습니다. 김서린 실내 공기가 도둑처럼 몰래 빠져나간 거실은 스산하고 허전합니다. 꽃가게를 지나다가 빈센트 반 고흐의 노랑을 닮은 프리지어(Freesi
미래로 가는 인생 열차로 나보다 먼저 탑승한 사람들이 앞서 나갈 때 시류에 합류하지 않고 '뒤늦게' 이 길이 과연 내가 가야 할 길일까? 질문하며 고집스레 탐색한 소수의 사람이 있었지요. 저도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고독한 방황도 좀 하다가 뒤늦게 겨우 길을 찾아낸 부류의 한 사람이랍니다.대학입시 고사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되돌아 나와 홀연히 완행열차를 타고 지리산 천왕봉의 태양을 찾아 올라간 것이 내 뒤늦음의 시작이었습니다.입시를 치르던 날 칼바람 불고 동트기 전 새벽의 순간을 흑백사진처럼 기억합니다. 합격을 기원하는 붉은 글씨에 하얀
아침에 눈을 뜨고 의례 습관처럼 뉴스를 찾아보니, 간밤 대한민국 대통령이 내란죄 혐의로 구속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 미국의 뉴스 방송 CNN에서 신임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준비 소식을 생생하게 전하는 뉴스 진행자의 상기된 목소리가 들립니다. 다음으로 미국 LA 해안 지역의 무섭게 불탄 집 앞에서 망연자실 울고 있는 가족들의 장면들이 클로즈업되어 보입니다. 중동 지역에서는 교전 중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 간에 휴전협정이 발효되었고, 일본에서는 집권 자민당의 정치 비자금 스캔들 소식이 터져 국민들이 분노
MZ 후친 (후배 & 친구) 여러분 "Merry Christmas~"여의도에서 언 손 호호 불며 핫팩에 응원봉을 들고 인사를 전하는 베이비 부머(Baby Boomer) 입니다. 갓 환갑을 넘긴 우리들의 삶은 장대하고 다이내믹했습니다. 한 마디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기에 시대적 번-아웃(Burn-out)을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는 당신들보다 먼저 몸서리친 가난과 군사독재도 모자라 남북의 분단까지, 불운과 불행을 남 부럽지 않게 많이 가진 나라에 태어났습니다. 강대국들의 틈에서 지지 않으려고 다부지게 살았습니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눈부시도록 화사하게 찾아온 10월은 눈 뜨고 보니 훌쩍 떠나갔다.'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바리톤 가수 김동규의 노래 첫 곡으로 시작한 지난 10월의 새벽하늘과 양털 구름은 청량하고 유쾌했습니다. 쌉쌀한 공기를 킁킁대고 맡으며 여기저기 강연장과 공연장들을 쏘다니다 보니, 초대하고 싶지 않고 미루고 싶은 11월이 벌써 내 앞에 쑤욱 달려와 책상 달력에 웅크려 앉아 세월의 흐름에 기겁하여 놀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합니다. 11월은 참 이상한 달입니다. 몹시 바쁜 일이 생겨도 바쁘지 않고, 종일토록 텅 빈 석양길을 걷는 허전한 기
“아~ 피는 물보다 진하지! 대한민국 문학 만세!”작가 한강의 2024 노벨 문학상 수상 발표 뉴스를 접하고 생각나는 대로 튀어나온 저의 탄성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처럼, 심장이 뻐근하게 밤 깊도록 "대한민국 만세"를 읊조렸습니다. 지금보다 조금 젊은 시절 개인의 노력만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푸른색의 좌와 붉은색의 우를 제외하고는 이타적 진보와 겸손한 보수가 사라져 가는 이 나라가 싫어져 조국을 떠날 계획을 꽤 오래 진지하게 궁리한 시간도 있었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처럼 저도 사무치도록 팀 코리아(Team Korea)에 소속
젊어도 너무 젊은 날 추석 이야기입니다. 이십 대 후반의 지독히 특별하고 재미없던 추억 이야기입니다.나 홀로 서울살이의 외로움을 보충할 만큼의 달콤한 믹스 커피가 있었고, 카세트테입으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있었고, 몇 달간 선을 보고 교제하던 이성과 이별한 초가을의 추석은 그야말로 내가 원하던 '방콕'(방에 콕 박힘)의 고독과 자유를 맘껏 누리는 시간이었지요.정원이 딸린 하숙집 빌라 한 층 전체를 오롯이 나만의 공간으로 독차지하고 말겠다는 야심으로 호시탐탐 추석 연휴를 기다리던 나에겐 모두가 고향으로 떠난 그 하숙집 한 채가 깊고
장마가 물러가도 습한 더위의, 불쾌지수가 높은 여름날의 새벽에 깨어납니다. 늘상 잠에서 깨면 움직이는 습관대로 커피포트의 스위치를 켭니다.짝짓기 전에는 이 여름을 절대 떠나보낼 수 없다며 애절한 떼창을 울리는 매미 소리에 새벽의 선잠에서 몽롱하게 깨어납니다. 뜨거운 드립 커피 (Dripped Coffee) 한 모금으로 현실의 하루를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창밖 산봉우리를 타고 오른 8월의 태양이 세상을 삼킬 듯 불타는 혓바닥으로 솟아오르고, 밤사이 세상을 포위한 안개가 햇살에 정체를 서서히 드러냅니다. 안개를 타고 흐른 태양
성공한 CEO의 평판을 뒤로하고, 자발적 은퇴를 감행한 지 벌써 햇수로 2년 차에 들어섭니다.회사를 떠날 때 후배 동료들에게 경조사 말고는 서로 연락하지 말자고, 과거의 인연에 구애받지 말고 각자 새로운 현실과 성장에 충실하자고 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여나 제가 잘살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공유할 겸 달라진 오늘 하루 일상들을 정리해 봅니다. 1. 아침에 눈 뜨면 창문 커튼을 열어젖혀 먼 하늘을 바라보며 복식의 쉼 호흡을 합니다. (은퇴 전에는 눈을 뜨면 출근 준비, 아침 면도와 옷매무새에 온 정신이 팔려 있었
계절에 상관없이 바람은 보이지 않으니까 참 좋다.자작나무에 핀 눈꽃이 살 에는 바람에 휘날릴 때 바람은 꽃잎 날린 풍경을 막아서지 않으니 더 좋다 말이지바람은 고귀한 것들에 날개 하나 달아 놓고 슬쩍 빠져 주니까 말이지 사랑에 관계없이 마음은 보이지 않아서 더더욱 좋다.원대리 가는 길 찬바람 휘리릭 소리에 덩달아 나도 울 때 '언 손 호호 불어 미래의 연 하나 띄우거라' 호령하는 군주가 되어 좋다 말이지마음은 정월 대보름 연줄에 걸어 놓고 허공마저 담아 주니까 말이지 여름이 짙을수록 한겨울 눈 속에 붉은 동백꽃이 그립다.서귀포 바닷
양철지붕을 후다닥~ 때리는 서귀포의 새벽 빗소리에 세월 속으로 깊어져 가는 고독한 평화의 잠에서 깨어났지요. 창문을 열어 '휘잉~휘잉' 연속으로 불어대는 바람 소리는 내 지난 추억의 기억세포들을 하나둘씩 불러 깨웁니다. 생각의 스위치가 채 켜지기도 전에 먼저 벌떡 일어난 내 몸은 주섬주섬 비옷을 걸치고 묵언 수행자처럼 홀연히 천천히 바깥세상의 올레길로 나섭니다. 어둠의 먹물이 채 가시지 않는 새벽의 비바람에 반투명으로 가려진 범섬을 바라보는 바닷길은 현무암 무심한 바위들이 검은 잡초처럼 무성하고, 초여름 빗줄기는 내 지난 추억의 세
어둡고 차가운 현실에 별처럼 빛나는 박신양의 사과를 바라보다.'성공한 연기자로서 틈틈이 취미 삼아 그린 배우 박신양의 그림이겠지'라는 선입견은 놀라움과 감탄의 탄성으로 단번에 깨지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연기를 하지 않아도 유명 배우로 자리 잡은 그가 미술대학원에 입학한 소식을 접하기는 했었지요. 그런데, '아마추어 학생 신분으로 유료 입장료를 받는 그림을 전시한다고? 그것도 서울에서 한참 떨어진 평택의 변두리에 있는 전시장에서? 50대 후반의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되어 가는 배우가 뭘 얼마나 많이 그렸길래?'세상일에 호기심 그리 많
고요한 4월의 새벽 산책길입니다.시간이 바람에 날려 가는 것인지, 바람이 시간을 따라 가는지··· 훌쩍 떨어지는 벚꽃이 시절의 바람을 데리고 가는 걸 느끼며 걸어간 새벽 산책길에 몇 구절의 언어가 화들짝 내 선잠을 깨우며 찾아왔지요. 겨울을 뚫고 핀 봄의 전령 벚꽃이 며칠간 머물다 휘리릭~ 낙화하는 짧디짧은 그 순간 '아···!' 하며 순간 설렘과 안타까움의 감정을 발딱 일으킵니다. 서늘한 간밤 비바람이 불러냈는지 휘리릭~ 행여나 정들까 무서워 에둘러 떨어져 나간 꽃잎들을 바라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그 후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