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저물고 겨울이 찾아들고 있다. 거리의 나무들은 어느새 노랗고 빨갛게 옷을 바꿔 입고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괜히 마음이 쓸쓸하고 혼자 아득해지는 기분이 드는 걸 보니 가을의 한복판이긴 한 모양이다. 해 뜨는 시간이 늦어져서인지 초등학교 1학년 첫째의 기상 시간도 부쩍 늦어졌다. 어느 날은 아침 먹을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이불에서 나오질 않고 혼잣말로 “이불 속이 제일 따뜻하고 안전해”라고 중얼거리는 걸 보니 8살이지만 이미 세상을 다 깨쳤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추워진 날씨에 몸이 굼떠진 아이를 보며 나의
어정 7월, 건들 8월, 동동 9월을 지나 상(上)달 10월이 되었다. 농사의 일 년 사이클(봄이 되면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재배와 관리를 하고, 가을에는 수확을, 겨울에는 다음 해 농사를 위해 쉬어가며 준비)을 교과서로 배운 서울 촌년에게도 농가의 시간 구분이 제법 와닿는다. 옆에 있는 누군가에 의할 때도 있었지만 나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불쾌지수가 올라갔던, 질리도록 덥고 습했던 여름에는 도저히 빠릿빠릿할 수 없는 정신과 신체로 인해 어정거리며 건들거리며 보낸 시간이 대부분이었다.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바람이 시원해져
다른 건 몰라도 외출할 때 꼭 챙겨가는 물건이 있다. 바로 텀블러.오래된 커피 중독자인 나와 남편은 아침마다 2개의 모카포트로 내린 커피를 아침 식사할 때 한 잔 마시고, 출근할 때 텀블러에 넣어 오후까지 마신다. 일을 하지 않는 날에도 버릇처럼 텀블러에 커피를 넣어두고 외출할 때 가져가는데 아이들 텀블러에는 물을 넣어 함께 챙겨나간다. 밖에서 편하게 사 마실 수도 있지만 우리 입맛에 맞는 커피를 만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고, 물을 살 곳이 없어 갑갑한 상황에 아이들의 솟구치는 성화를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우리 모두의 평화를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든다’라는 입추가 지났다. 8월 중순에 가까워질수록 아침과 밤에는 공기가 제법 선선해진 걸 보니 한여름의 고비는 지난 모양이다. 그래도 아직 낮에는 해가 뜨겁고 방학 중인 아이들과 붙어있으려니 자동으로 에어컨을 켜고 만다. 지난 한 달간 에어컨과 선풍기, 메밀국수, 수영과 백숙 등 여름 도우미들이 무더위 아래 우리 가족의 일상을 연명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여름 낮 특유의 지루함과 끈적임에서 나와 아이들을 구원해 주고 있는 건 바로 팥빙수이다. 날이 더울수록 아이들은 얼음물이나 아이스크림을
2025년 6월 29일, 서울에 첫 열대야가 발생했다. 작년에 비해 8일 늦게 열대야가 찾아온 걸 생각하면 다행인가 싶으면서도 6월의 열대야가 무슨 일이야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6월부터 더웠으니, 7월은 말할 것도 없다. 지구와 전기세를 생각하면 에어컨은 최후의 보루이건만 아침을 준비하다가도 에어컨을 켜고, 잠을 자다가도 더위에 잠을 설치다가 에어컨을 켜는 일은 다반사이다.지구가 펄펄 끓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따라 나도 같이 끓고 있으니 그게 더 문제다. 밤마다 두 아이는 덥다고 하면서도 엄마 살에 자기 몸 한군데는 붙여
바야흐로 여름이다. 이젠 6월이 여름에 속하는 달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더위는 일찍 찾아온다. 선풍기를 꺼내는 시기가 예전에 비해서 빨라진 건 확실하고, 6월 초에도 에어컨을 켜는 게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그래서였을까. 여름이 시작되는 달로 적격인 6월에 보기만 해도 시원한 느낌이 드는 부채를 그려 레터프레스로 찍은 이유가.6월 달력의 모델이 된 부채는 서울의 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된 부채 중 ‘팔덕선(八德扇)’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부채이다. 전시장의 팔덕선은 부들잎을 엮어 만든 부채로 그 색이 연한 갈색과
신혼살림을 꾸린 지는 햇수로 9년이 되었다. 양가에서 혼인과 관련된 것은 최소한으로 하면 어떻겠느냐 말씀도 해주셨고, 당사자인 우리도 그러고 싶었던 터라 예단이나 폐백은 생략하고 혼수나 예물도 정말 필요한 것만 준비했다. 각자 부모님과 살던 집 마루에는 TV와 소파가 있었지만, 신혼집 마루에는 친정 아빠가 물려주신 진공관 전축을 두어 음악을 듣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비워두고 싶었다.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소파를 들일 생각도 안 하고 남대문 시장에 한복 만드시는 분께 부탁하여 조각보 형태의 방석을 맞춰다가 바닥에 깔았다. 마루
이번 주에도 떡집을 벌써 두 번이나 들렀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아침으로 인절미나 약식을 먹기도 하지만 하교 후 간식을 찾는 아이의 입에 과자나 초콜릿보다 좀 더 건강하고 든든한 간식을 넣어주고 싶어서이다.가래떡, 꿀떡, 호박떡, 인절미, 영양 찰떡··· 쓰다 보니 침이 고이긴 하지만 하여튼, 아이가 질리지 않게 다양한 떡을 번갈아 사 먹이면서도 오늘은 무슨 떡을 고르지 하며 갑자기 너무 고민이 되는 순간이 올 때면 늘 찾게 되는 기본템이 있다. 바로 절편이다. 콩이나 밤, 대추 같은 부재료가 들어가 영양분이 많다거나 아이들이 좋아
나도 내 안에 이렇게 화가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그리고 내 안에 화가 이렇게까지 끝도 없이 뻗어갈 수 있는 건지는 꿈에도 몰랐다. 둘째를 낳기 전까지는···.이제는 가끔 걱정될 때도 있다. 내 안에 화가 그 끝을 모르고 무궁무진하게 우주 저편까지 나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유전자의 힘이 허락하는 한 뻗어나갈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같이 말이다. 내가 작업실에서 사용하는 모시 빗자루를 구한 것은 22년 3월,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며칠 전이었다. 초등학생일 때부터 사용해
초등학교 3~4학년 정도 되었을까. 어깨에 닿을 듯 말 듯한 단발머리의 여자아이는 머리띠를 했다. 긴바지 긴팔 차림이지만 두꺼운 겉옷을 입지는 않았지만 장갑을 낀 거 보면 바람이 꽤나 차가운, 겨울에 가까운 봄 또는 가을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의 배경은 아파트 옥상. 마당이 있던 주택에서 7살에 이사 온 이래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쭉 살았던, 아이에게는 마음속의 고향으로 자리 잡은, 엘리베이터가 없던 5층짜리 아파트이다. 요즘같이 고층아파트가 많은 시대에는 아파트 옥상 출입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지만 아이가 사진에 찍힌 시절에는
새해가 밝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해를 맞아 시작했다는 느낌보다는 12월 31일에서 단지 하루가 더 지난 것뿐이라는 조금은 힘 빠지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일까? 1월 1일이 되어도 새해에 걸맞은 새로운 기운이 내 안에서부터 솟아나야 할 것만 같은데 생각만 그렇고 몸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제야의 종소리는 언제 들었는지 기억나지도 않고, 새해가 되었다고 직접 빚은 만두를 넣은 떡만둣국을 끓여 먹은 것도 번거롭다는 핑계로 먹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2025년 새해는 시작되었지만, 나의 새해는 언제쯤 시작한 기분이 들려나?레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