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일반 산부인과 이용 곤란
장애친화 영등포 성애병원 1곳뿐
관련 정부 예산도 매년 줄고 있어

휠체어를 타거나 몸이 불편한 장애인 임산부는 일반 산부인과에서 진료받기 어렵다. 휠체어를 타고 병원 내에서 이동할 때 충분한 공간이 우선 확보되어야 하고, 전동식 침대나 장애 특화 의료기기 등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엔 약 16만명의 여성 장애인이 거주하고 있지만, 장애인 임산부를 위한 장애친화 산부인과는 단 한 곳뿐이어서 관련 인프라 확대가 절실한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8일 서울특별시남·북부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에 따르면 서울 시내에 설치된 장애친화 산부인과는 영등포구에 위치한 '성애병원' 한 곳뿐이다. 이마저도 지난 2021년 서울시에서 최초로 장애친화 산부인과로 지정했다.
장애친화 산부인과에는 지체·청각·시각장애 등 모든 장애 특성별 맞춤 시설 구축이 마련되어 있다.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고 장애인용 유압식 운반카트와 이동식 리프트 등도 설치된다. 시각장애인용 점자안내판과 계단 내 안전바 등도 마련되어 있는 점이 일반 산부인과와 다르다.

임신과 출산은 장애인에게는 넘기 힘든 문턱이다. 산부인과 인프라 부족 문제에서 비롯된 유산과 사산 등 사고 발생 확률이 비장애인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지난 2018년 발표한 장애친화 산부인과 연구보고서를 보면 장애여성의 약 34%가 적절한 진료 및 치료를 받지 못해 유산·사산을 경험했다. 비장애인 여성보다 10%가량 높은 수치다.
여성장애인 출산율도 비장애인 대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종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여성장애인 출산 현황을 보면 2018년 1482명이 출산했고 2021년엔 828명으로 줄었다. 3년 새 44.1% 출산율이 감소한 건데, 전체 출산율과 비교해도 감소 폭이 매우 크다.

두 아이를 출산한 장애인 A씨(47)는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아이를 출산했을 때가 2011년이었는데 당시엔 서울과 경기권에 단 한 곳도 장애친화 산부인과가 없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임신했을 때 진료를 받아야 할 항목이 많은데, 일반 산부인과에 가다 보니 장애 임산부에 대한 인프라나 의료진의 대응 매뉴얼이 부족해 불편함을 많이 겪었다"고 했다.
전국 단 13곳···신규 지정돼도 사업 개시 첫 삽도 못 떼
장애친화 산부인과는 2013년부터 지자체 자체 사업으로 운영됐다. 2021년까지 광주(2곳), 대전(1곳), 충북(2곳), 전북(3곳), 전남(4곳), 경남(1곳) 등 총 13개 병원이 지정됐다.
같은 해 보건복지부는 장애친화 산부인과 사업에 직접 발을 들였다. 처음 복지부에서 공모사업을 추진했고 서울과 경기도 등 8곳의 산부인과를 장애친화 산부인과로 새로 지정했다.
문제는 장애친화 산부인과로 신규 지정이 된 산부인과도 사업 진행에 첫발도 떼지 못하고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인 경기도는 2021년 11월 일산병원 1개소가 조건부 승인을 받아 2022년 상반기부터 장애친화 산부인과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지연된 바 있다.

심지어 올해 정부 예산안에는 장애친화 산부인과 신규 개설을 위한 예산이 잡혀 있지도 않은 상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최종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분석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장애친화 산부인과 신규 개설 관련 예산은 '0원'.
여성 장애인에게 출산 비용을 지원하는 사업도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여성 장애인 출산 비용 지원 등 관련 사업을 통해 1인당 100만원을 지원하는데, 매년 정부 성과 달성도는 기존 목표인 80%에도 미치지 못했다. 2019년엔 73.8%, 2020년에는 76.9%, 2021년에는 70%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최 의원은 "여성 장애인이 출산을 전후한 시점에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연계해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일각에선 장애친화 산부인과 확대 문제를 두고 단순히 여성 장애인들의 편의 측면에서만 단편적으로 보면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시에 위치한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본지에 "장애를 가진 가임 여성의 비율이 당초 비장애인보다 낮은 데다, 해당 여성들의 비율 자체도 줄어드는 추세"라면서 "중증장애인의 경우엔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무작정 인프라를 확대하는 것도 수익을 고려해야 하는 산부인과 입장에선 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중증장애 종류 중 하나인 뇌병변장애인의 출산율은 2018년 75건에서 2021년 28건으로 대폭 감소하기도 했다. 출산 신생아 수도 비장애인은 2021년 26만 3174명인데 비해 장애인은 828명 출산하면서 차이 폭이 컸다. 정부에서도 장애인 출산비용 지원 예산을 2018년 12억2200만원에서 2021년 9억5900만원으로 줄였다.
'보건복지부령' 기준 장애친화 산부인과, 법적 보완은 이뤄내
그간 지자체 중심 사업으로 운영되던 장애친화 산부인과를 '보건복지부령'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달 28일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이 전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장애친화 산부인과는 그간 복지부와 일부 지자체(광주·대전·충북·전북·전남·경남)만이 여성 장애인의 임신·출산 지원 및 부인과 질환 관리를 위해 지정사업을 실시해 왔다.
정부는 이번 개정으로 해당 사업을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법안은 공포일로부터 6개월 후 시행된다. 개정안은 장애친화 산부인과 지정기준을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명시했다. 지역별 편차를 없애고 전국 어디서나 여성장애인들에게 동일한 질의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장애친화 산부인과로 지정받은 의료기관은 1년 이내에 복지부령에 따른 지정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현재 기준으로는 시설별 전동휠체어 이동 공간(1.4m x 1.4m)을 확보해야 하고 △외래진료·처치실 △진통실 △분만실 △신생아실 △수유실 등의 필수시설 마련 등이 요구된다. 휠체어를 탄 채 접근할 수 있는 진찰대와 초음파 침대(높낮이 조절 기능·손잡이 및 사이드레일 구비) 등의 장비 기준, 전문의(산부인과 2명·소아청소년과 1명·마취통증과 1명 등 6명) 등 인력 기준도 맞춰야 한다.
복지부는 이 같은 현행 지정기준을 토대로 관련 기관과 전문가, 장애인 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해 장애친화 산부인과 지정기준을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확정된 기준은 복지부령에 개정·반영될 예정이다.
복지부 염민섭 장애인정책국장은 "장애친화 지정기준 및 지정절차 등을 담은 시행규칙 개정과 지원예산 확보 등 후속조치를 빈틈없이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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