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사가 식단관리, 간호사가 차량 운전도
각 지자체별 다른 인력 지원 기준에 '혼란'
30인 이하·이상 시설 모두 같은 평가 기준
입소자 서비스 질 저하로···악순환 반복 중

# 30명이 사는 거주시설에 밥상을 담당하는 인원은 두 명뿐이다. 한 명이 연차를 쓰게 되면 혼자서 30인분을 책임져야 한다. 이럴 땐 종사자 모두가 붙어서 일을 도와야 한다. 생활지도원이 입소자도 돌봐야 하고, 밥도 해야 한다. 간호사가 재활치료도, 입소자 병원 방문을 위해 차량 운전까지 해야 한다. 장애인에게 높은 질의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도 인력 지원 한계에 부딪혀 시도조차 못 한다.
장애인 가족을 요양원에 맡길 때 가족이 가장 고려하는 문제가 식단이다. 먹는 문제에 걱정이 없어야 가족은 그나마 안심이다. 그런데 시설 입장에선 식단을 정하는 직책을 맡은 영양사를 구하기조차 만만치 않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와 지자체의 애매한 인력 지원 기준이 입소자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반복된다는 입장이다.
12일 여성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국내 장애인 요양원 중 30인 미만 시설은 영양사를 채용하기 어렵다.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영양사 인건비 지원은 30인 이상 시설부터 적용된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시설은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의미다. 30인 이상 시설일지라도 지자체 재정 여건에 따라 지원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보건복지부가 공시한 2022 장애인복지시설 사업안내서의 장애인 거주시설 인건비 지원 기준을 보면 30인 이하인 시설의 경우 시설장, 생활지도원, 조리원, 촉탁의사 등 복지 서비스 관련 기본적인 직종만 안정적인 인건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영양사뿐만 아니라 사무국장, 사무원, 시설관리인, 사회재활교사 등 직종은 모두 30인 이상인 시설만 인건비를 지원받는다.
30인 이하 시설에서 인건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직종은 타 직종의 종사자가 대신 업무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영양사가 없으면 조리원이 그 업무를 대신하게 된다. 전문가 부재 속에 비전문가 종사자가 대리 업무를 하게되면 전문지식이 떨어져 결국 수급자에게 돌아가는 복지 서비스 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장애인사회복지시설 관계자는 본지에 "사무국장과 사회재활교사, 영양사를 뽑아야 할 때 30인 이하 시설은 자부담으로 인건비를 충당해야 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일 땐 다른 직종의 종사자가 동시에 업무를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급여도 문제다. 사무국장을 뽑지 못하니 상대적으로 적은 급여를 받는 직원이 사무국장 업무도 추가로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직원 개개인의 업무 만족도가 떨어지고 결국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지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30인 이상인 시설로 등록해도 정작 지자체의 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인건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영양사를 지원받을 수 있는 자격이 충족돼도 시설이 위치한 관할 지자체에서 '예산이 없다'고 하면 그만이라는 것.
한 요양시설 관계자는 "30인 시설을 충족해도 지자체에선 예산 부족 문제로 지원할 수 없다고 답변한다. 또 복지부는 지자체별 문제라며 서로 떠넘기는 현상이 반복된다"고 호소했다.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에서 발간한 장애인복지시설 사업안내서에 따르면 인력 지원의 경우 각 지자체 예산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지방자치단체는 각 관할 시설에 대한 인건비 지원을 정해진 범위 안에서 최대한 지원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다만 시설이 인원을 충족한다고 해도 인원을 충원할 때 사전에 지자체와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인력은 지원하지 못할 수 있다. 예산 문제도 발생할 수 있어 이는 지자체와 사전 조율이 필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의회에 따르면, 협회 회원시설 중 정원 30인 미만 시설은 국내에 총 52개소가 있다. 협회 소속이 아닌 전국 정원 30인 미만 장애인 거주시설은 지난해 12월 기준 158개소다. 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의 장애 유형별 현황을 보면 지적장애인이 전체 장애인 중 84.6%를 차지한다. 뒤를 이어 뇌병변장애인이 5.0%, 자폐성장애인이 4.9%다.
국내 30인 미만 장애인시설의 종사자 직종별 현황을 보면 모두 영양사가 없다. 사무원, 시설관리인, 사회재활교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청능치료사, 상담평가요원도 모두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자체와 협의하에 대체 인력으로 구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복지부와 지자체가 시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사회복지시설평가'도 30인 이하, 이상 시설을 모두 동일한 기준에서 진행하고 있다. 전문가 구성이 상대적으로 원만한 30인 이상 시설과 이하 시설이 같은 기준에서 평가받고 있는 등 시설 업계에선 형평성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시설을 개소할 때 30인 초과 시설로 구성하면 해결되지 않을까. 30인 미만 시설을 개소한 이유에 대해 한 요양시설장 A씨는 "시설 개소 당시 재정 여건이 충분하지 않아 30인 이하 시설로 개소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가족같은 규모의 소규모 구성으로 최대의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한장협은 '29인 이하 장애인거주시설 특별대책위원회(29인 특위)'를 구성해 지자체와 복지부 측과 개선방안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29인 특위는 복지부와 지자체에 △인력 미지원 시 지원 인력에 맞는 업무 재편 △사회복지시설 평가 지표 개편 △30인 시설 요건 갖출 시 시설 전환 △타 직종 업무 수행 시 그 업무에 맞는 인건비 지원 등 개선 요구 및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다.
정석왕 한장협 회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장애인 시설은 장애인 입소자에 대한 서비스 질 제고가 먼저"라면서 "이를 위해선 전문인력 증원이 절실하다. 하지만 30인이라는 기준을 두어서 서비스 제공조차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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