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거주시설 간호사 1호봉 월급 217만원
입소 중증 장애인 필수 의료조차 행하지 못해
업계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건비 제고 시급"

발달장애 혜정과 그의 언니 혜영의 삶을 그려낸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의 한 장면. 사진은 기사와는 무관하다. /시네마달
발달장애 혜정과 그의 언니 혜영의 삶을 그려낸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의 한 장면. 사진은 기사와는 무관하다. /시네마달

가래가 끼면 일반인은 그냥 뱉으면 되지만 중증·최중증 장애인에겐 버거운 일이다. 따라서 보호자는 수시로 압력으로 가래를 강제로 빼내는 '석션(Suction·흡입)'이라는 시술을 해줘야 한다. 제때 석션을 하지 않으면 가래가 기도를 막아 위중한 상태로 갈 수 있다. 그런데 중증·최중증 장애인이 거주하는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석션을 시술할 인력이 없어, 의료법을 위반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일반인이 시술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여성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석션은 '의료행위'에 해당한다. 의료법 제27조를 ‘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 조항’을 보면 의료 행위는 보건복지부 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료인만 할 수 있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선 간호사 등 의료 행위가 가능한 시설 종사자만 석션을 시술할 수 있는데, 열악한 인건비 문제 때문에 간호사를 뽑지 못 해 어쩔 수 없이 사회복지사가 석션을 시술하고 있는 사례가 늘고 있다.

충북에 위치한 한 장애인거주시설 종사자 A씨는 여성경제신문 취재에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촉탁의사가 24시간 내내 시설에 상주하는 것이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사회복지사가 석션을 시술한다"면서 "시설 입소 중증 장애인이 30명이 넘는데 매일 언제 석션을 해야 할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니, 24시간 교대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들이 석션을 시술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라고 설명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시설의 의료 관련 인력을 보면 간호사는 2021년 기준 1623명으로 집계됐다. 기관 당 간호사 수로 따지면 2020년 기준 0.28명 수준이다. 1명도 채 되지 않는 상황이다. 

시설 종사를 선호하는 간호 인력이 부족한 이유는 인건비가 현저히 낮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보건복지부가 공시한 2022년도 기준 장애인거주시설 종사자 인건비 지원 기준안을 보면 간호사 1호봉 월급은 204만7000원이다. 간호사는 직종별 직위로 보면 과장급에 속한다. 복지부 인건비 가이드라인이지만, 10년을 일해서 과장급 10호봉이 되어도 293만6000원의 기본급 월급을 받고 일해야 한다. 실제 시설에서 종사하고 있는 간호사 B씨는 "일반병원 간호사의 초봉 월급이 평균 300만원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시설에선 10년을 일해야 일반 병원 월급 수준인 셈"이라고 말했다. 

2022년 기준 장애인거주시설 종사자 인건비 가이드라인. 빨간색 부분은 간호사(과장급) 인건비. /보건복지부
2022년 기준 장애인거주시설 종사자 인건비 가이드라인. 빨간색 부분은 간호사(과장급) 인건비.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시설업계 종사자 월급 자체도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보건복지 이슈 앤 포커스’ 최신호를 보면 2020년 기준 사회서비스 산업 전체 취업자의 월평균 임금은 225만원으로 2019년 226만7000원보다 1만7000원 오히려 하락했다. 그중 요양보호사나 사회복지사, 간호사 등 15개 핵심 산업군 취업자 월평균 임금은 2019년 202만2000원에서 2020년 196만2000원으로 6만원 줄었다. 핵심 산업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돌봄·보건서비스 종사자 2020년 월평균 임금은 전체 사회서비스 임금의 57.5% 수준에 그쳤다.

문제는 일반 병원에서도 간호사 인력난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병동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평균 환자 수는 16.3명이다. 평균이 그 정도이고 실제로는 간호사 1명이 환자 30~40명을 돌보는 병원도 적지 않다. 미국(5.3명)이나 스위스(7.9명), 영국(8.6명) 등의 간호사 1명당 평균 환자 수와 비교하면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간 간호사 법정 정원 기준을 미준수한 의료기관도 7147개소에 달했다. 2021년 4월 기준 전체 의료기관의 30.3%가 정원 기준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의료기관 종별로 준수율 격차도 컸다. 상급종합병원은 미준수 의료기관이 한 곳도 없었지만 병원급(30~99병상)은 53.3%, 100개 이상 병상을 갖춘 종합병원은 11.6%가 간호사 정원 기준을 어겼다. 

매일 의료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시설이 간호사 인력난의 사각지대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석왕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회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아직은 시설 내 간호사의 경우 교대근무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인력난의 '벼랑 끝'까지는 가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다만 수급자의 질 향상을 위해 24시간 교대근무가 도입된다면 처우도 같이 올라가야 하는데, 이마저도 안 된다면 간호사 수급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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