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으로 돌봄 수월한 '경증' 집에서 케어
중증 및 최중증 한해 시설 입소하도록 해야

집에서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 /김현우 기자
집에서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 /김현우 기자

#중증 장애인 아들을 둔 김윤호 씨(가명)는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집안 모든 방문을 잠그고 열기를 반복하고, 냉장고도 여닫을 때마다 채워둔 자물쇠를 풀어야 한다. 아들은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진다. 장애인 보호 시설 입소만이 희망이다. 하지만 자리가 나지 않아 밤낮없이 기다릴 뿐이다. 

장애인 거주 시설 입소 대기자의 고충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미 시설에 거주 중인 경증 장애인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케어가 어려운 최중증 장애인이 시설 입소를 못 하는 '탈시설 부작용'이 커지면서다.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의원실이 조사한 '거주시설 수기 명부에 작성된 대기자 현황'을 보면 2022년 5월 말 기준으로 국내 전체 장애인 시설 정원 수 2만9856명 중 2만8841명이 입소를 마쳤다. 그런데 입소 대기자 수만 2017년 1291명에서 올해 5월 말 기준 5065명으로 약 4배 늘었다. 결국 수치상으로는 1015명이 입소할 수 있는 자리가 있지만 대기자만 5000명이 넘는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인 '탈시설'이 추진되면 이 또한 최중증 장애인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본지가 지난달 3일 보도한 '장애인 탈시설 했더니, 자립 성공 '절반' 안돼' 에 따르면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시범사업 결과, 탈시설 장애인 약 30%만 시설 독립 후 자립에 성공했다. 지난 2013년부터 올해까지 서울시는 1·2차 장애인 거주시설 탈시설화를 추진했다. 2차 추진 현황(2018~2021년)을 보면 총 1178명이 시설을 떠났다. 다만 이 중 338명이 자립했고 764명은 △연고자 인도 △타 시설 전원 △사망 등을 이유로 탈시설에 사실상 실패했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이에 대해 "가정에서 돌보기 어려운 장애인들이 사회에 많다"면서 "시설이라도 있어야 장애인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국가가 탈시설 정책을 추진하면서 시설들을 폐쇄하고 신규 입소를 금지해 장애인 가족들이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설 입소가 어려운 입소 대기자는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면 된다. 부모가 출근할 때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듯이 일정 시간 장애인을 보호해주는 곳이다. 하지만 주간보호센터 입소마저도 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최중증 발달장애인 아들을 돌보는 A씨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아들은 이미 20살이 넘어 특수학교에 보낼 수도 없다. 시설 입소나 주간보호센터가 답인데, 시설 입소가 불가능에 가깝다면 주간보호센터는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고 호소했다. 

중증 발달 장애인을 예를들면 국내 총 발달 장애인 수는 약 25만명이다. 전국 818곳의 발달 장애인 주간보호센터 및 366곳의 발달 장애인 주간 활동 서비스를 이용하는 중증 및 최중증 장애인은 전체 8% 수준인 약 2만명에 그쳤다. 서울시 내 발달장애인 주간보호센터는 약 130곳인데 이 중 42곳이 현재 입소 가능 정원이 다 찼다. 송파구에 위치한 한 주간보호센터 관계자는 "우리 센터만 해도 입소 대기자가 약 150명이 있다. 입소까지 평균 4~5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3급 이상의 경증 장애인을 지역 사회에서, 2급 이상 중증 혹은 최중증 장애인만 거주 시설 이용 등의 방법으로 세분화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사회복지시설단체협회 고위급 관계자는 본지에 "중증 대비 보호가 수월한 경증 장애인은 지역 사회에서 케어하고 그렇지 않은 중증 및 최중증 장애인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등급별 기준을 재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경증 장애인이 시설에 머물기 때문에 정작 집중 돌봄이 필요한 중증 및 최중증장애인이 갈 곳이 없다는 얘기다.

다만 경증 장애인 가족을 돌보는 보호자는 장애 정도에 따른 시설 이용도 차별이라고 반박했다. 장애인부모협회 관계자는 "경증이라고 하더라도 가족의 상황에 따라 시설 이용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면서 "국가에서 시설 수를 늘려야 하고 이와 관련된 제정 비용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경증 장애인 때문에 중증 장애인이 고통받고 있다는 논리는 장애인을 등급에 따라 차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안은 있다. 광구광역시에 위치한 '24시간 1 대 1 최중증 장애인 돌봄 시설 시범 사업'이다. 지난해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최중증 발달장애인 17명이 이곳에 입소했다. 3급 이상의 경증 장애인은 입소할 수 없다. 이들은 센터에서 최대 5년 머물 수 있다. 장애인 한 명당 주간 1명, 야간 2명씩 간병인이 돌본다. 가족 단톡방을 이용해 장애인 가족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적은 인원으로 최대 돌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다. 

정부는 2023년부터 이같은 '24시간 1 대 1 최중증 장애인 돌봄 시설'을 늘리겠단 방침이다. 하지만 문제는 예산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해당 보호 시설 운영을 위해 연간 입소 장애인 1인당 약 2억원이 투입된다. 전국에 발달 장애인이 25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모든 장애인을 돌보기 위해선 약 50조원을 매년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석왕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회장은 본지에 "개인별 또는 장애 정도별 특성을 잘 파악해 선별적 복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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