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세 지렛대 투자·환율·노동 삼중 압박
日과는 월 단위로 정보 나누며 화기애애
요동 치는 원화 속 코스피는 외인 놀이터
상대방 신뢰 잃고 통화 스와프 가능할까?

김용범 정책실장이 8월 2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용범 정책실장이 8월 2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통상 협상은 교착 국면을 지나 신뢰 상실로 치닫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투자·환율·노동 현안이 맞물리며 시장 불안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은 관세를 지렛대로 몰아세우지만 이재명 정부는 돌파구를 내놓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한다.

12일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스콧 베센트 장관은 환율을 시장에 맡기고 개입은 ‘질서 유지 목적’으로만 제한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에 치명적이다. 방어 수단이 사라지면 원화는 외환시장 변동성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앞서 미국 재무부와 일본은 환시 개입 내역을 월 단위로 공개하기로 합의했다. 환율이 시장에 의해 결정돼야 하며 과도한 변동성과 질서 없는 움직임은 경제 및 금융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반면 한국은 현재 분기마다 환시 개입 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관세 부담을 만회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환율을 조정하려 해도, 미국이 월 단위 공개를 강제하면 사실상 조정 여력은 봉쇄된다.

한국은행의 개입 여부가 곧바로 노출되는 구조 속에서 미국은 선제적으로 절상 압력을 가할 수 있다. 통화 주권을 앞세워 분기 단위 공개를 이어가며 깜깜이 정책을 고수해도 한국은 일방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350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 약속은 원화 약세 우려를 더욱 키운다. 대규모 외화 유출이 현실화되면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이 확대되고 환율 방어 여력마저 제약되는 악순환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외환 당국의 방어 전략 자체가 시장에 그대로 노출되는 구조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이 어느 구간에서 개입하는지 파악한 뒤 차익거래(arbitrage)나 선물·옵션 포지션 조정을 통해 방어선을 압박할 수 있다. 이날 장중 3380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코스피가 바로 외국인의 그림자다.

개방된 시장에서 제도적으로 열려 있는 합법적 시장 행위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 외환당국의 정책 효과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표면적으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코스피 지수가 부각되더라도 부실한 방어력이 드러난 순간 시장의 불안 심리가 급격히 증폭되며 ‘거품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더구나 국민연금과 정책금융기관의 환헤지 전략, 통화스와프 조달 문제까지 이미 미 재무부 보고서에 언급된 바 있다. 사실상 한국의 금융 시스템 전반이 미국의 감시망 안에 들어간 상황에서 투자·관세·환율이 패키지로 묶여 있다는 점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누구보다 국내 외환시장의 취약성을 잘 아는 인물이다. 2020년 3월 19일 코로나19 충격 속에 달러 매도 주문이 끊기면서 원·달러 환율이 하루 만에 50원 가까이 뛰었던 경험은 그에게 “가장 긴 지옥 같은 하루”로 남았다. 당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로 위기를 넘기는 순간 미국과의 신뢰 관계의 중요성을 체감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김 실장은 “일본과 한국은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말로 책임을 비껴가고 있다. 위기 앞에서 반복되는 ‘신중론’은 결국 도돌이표일 뿐이다. 공자는 곤이불학(困而不學)은 민사위하의(民斯爲下矣)라고 했다.

관세와 마찬가지로 환율도 한국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재계 총수를 총동원해 트럼프와의 회담을 화려하게 포장하고도 미국이 요구한—실은 한국이 먼저 제안한—조건에 서명하느니 차라리 관세를 내겠다는 식의 자해적 선택은 국가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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