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취약성 ‘커밍아웃’···관세 충격 감춰
선진국 지수 편입 언급 현실 호도 자충수
스콧 베센트 노선과 정면 충돌, 불신 키워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 더는 남 일 아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해 10월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의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해 10월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한국은행

한국은행이 외환·금융시장 안정 전략에서 눈에 띄는 포지션 변화를 시사했다. 단순한 ‘스무딩 오퍼레이션’ 수준의 점진적 개입이 아니라, 구조적 개입과 거시건전성 조치까지 포괄한 급진적 정책 조합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22일 한은은 ‘금융·외환시장 심도를 고려한 정책대응 분석’을 통해 한국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글로벌 충격이 발생할 때 선진국은 환율 반응이 미미한 반면, 한국은 환율과 단기금리가 동시에 요동치는 ‘이중 불안’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한은 국제국 국제금융연구팀 김지현, 김민 과장이 참여한 보고서의 핵심 근거는 UIP(Uncovered Interest Parity) 프리미엄이다. 한국의 반응계수는 2%대를 기록해 선진국 평균의 5배 이상이라는 분석이 제시됐다. 충격 흡수 장치가 부재하고 글로벌 자금 이탈이 그대로 환율·금리 불안으로 직결된다는 진단이다.

문제는 분석 틀이다. 보고서는 ‘글로벌 리스크’라는 모호한 표현을 반복할 뿐, 현재 한국 경제의 직접 변수인 트럼프발 관세 충격을 단 한 번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사실상 미국발 통상 압력이 환율·금리 불안의 핵심인데 이를 감춘 셈이다. 이는 시장에 왜곡된 신호를 주고 중앙은행 스스로 시장 왜곡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보고서는 IMF의 IPF모형을 원용해 충격 흡수력이 낮은 국가는 실물경제 위축도 크다고 결론냈다. 그러면서 외환시장 개입과 거시건전성 정책 병행이 후생손실을 18% 이상 줄일 수 있다며 개입의 제도화·상시화를 정당화했다. 스무딩 오퍼레이션의 틀을 넘어서는 급진적 포지션 전환이다.

더 나아가 외환시장 구조 개편과 WGBI 편입을 거론하며 구조적 심도 강화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이는 2026년 편입 기대를 현실과 동떨어진 장밋빛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스스로 ‘심도 얕은 시장’임을 고백한 상황에서, 개입이 환율조작 시비로 번질 경우 선진국 지수 편입은 요원해지거나 아예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회의 자리에서 무역 불균형을 보여주는 ‘Non-Reciprocal Tariff Examples(비상호적 관세 사례)’ 표를 들어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자동차·농산물·위스키 등 개별 품목의 관세 격차를 문제 삼으며, 환율 개입을 비관세장벽 1순위로 지목한 바 있다. /백악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회의 자리에서 무역 불균형을 보여주는 ‘Non-Reciprocal Tariff Examples(비상호적 관세 사례)’ 표를 들어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자동차·농산물·위스키 등 개별 품목의 관세 격차를 문제 삼으며, 환율 개입을 비관세장벽 1순위로 지목한 바 있다. /백악관

이러한 급진 노선은 국제적 시각과도 충돌한다. IMF와 미국 재무부는 반복적·일방적 개입을 환율 왜곡으로 간주한다. 한은이 개입을 제도화하는 순간, 시장의 신뢰는커녕 대외 불신을 자초할 위험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환율 개입을 비관세장벽 1순위로 지목해 교역 전쟁의 핵심 쟁점으로 삼고 있다.

무엇보다 글로벌 매크로(거시) 투자자들의 원칙과도 배치된다. 소로스 퀀텀펀드 출신으로 알려진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같은 거시 전략가들은 시장 신호와 자율성을 중시하며, 중앙은행의 반복적 개입을 가장 경계한다. 한국은행 노선은 이들과 정면 충돌하면서 오히려 외국인 자금의 불신과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개입을 제도화하는 순간 미국 정부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됐을 때 무역·투자 전반이 압박을 받았다. 한국도 지금 이미 관세와 금융 압박이 겹친 상태라, 한은 개입이 노골화하면 미국은 이를 빌미로 직접적인 제재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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