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하락 지적에 "아직은 시범 사업" 반박
21년 만의 논의 '과로 사회' 탈출 분수령 될까

주 5일제를 도입한 지 21년, 주 4.5일제가 본격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정부는 전면 시행에 앞서 시범 사업부터 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경영계의 '생산성 하락'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장시간 노동 구조'가 지적되는 상황에서 주 4.5일제 실험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법제처는 17일 정부 국정과제를 체계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국정과제 입법 계획'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해당 계획에는 전날 고용노동부가 국정 과제로 확정한 주 4.5일제에 관한 내용도 포함됐다. 정부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주 4.5일제를 도입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시범 사업을 먼저 하고 '실노동시간 단축지원법'(가칭)을 연내에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주 4.5일제가 논의된 이유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한국의 장시간 노동 문제가 꼽힌다. 2024년 기준 한국의 근로시간은 1859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긴 편이다.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프랑스의 근로시간은 1400시간 미만이고 한국 다음으로 긴 미국의 근로시간도 1810시간에 그친다. 한국 사회의 과로를 장려하는 분위기도 여전히 남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 4.5일제의 도입을 두고 찬반이 갈린다. 경영계에서는 주로 기업의 경쟁력 하락을 우려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여성경제신문에 "현재 낮은 노동생산성 하에서 주 4.5일제를 시행한다면 기업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4.4 달러로 미국의 77.9 달러에 크게 못 미치고 OECD 국가 평균(56.6달러)보다 약 20% 이상 낮다.
또한 경총은 노동 시장의 이중구조가 심각한 상황에서 주4일(주4.5일)제 적용이 가능한 곳과 그렇지 못한 곳 사이의 양극화가 심화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한국의 풀타임 임금근로자 주당 평균 근로 시간은 2022년 OECD 평균과 약 1시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라며 "고용 및 산업구조 차이를 고려하면 한국을 과도한 장시간 근로 국가로 보기 어렵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계는 아직 실험 단계에 불과한 상황에서 경영계의 우려는 '지나친 걱정'이라는 태도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현재 정부에서 하고자 하는 주 4.5일제는 시범 사업에 불과하다"라며 "지금 바로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닌데 다들 너무 섣부른 걱정을 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시범 사업을 통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후에야 주 4.5일제의 보편적인 도입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실노동시간 단축지원법은 주 4.5일제를 도입한 기업에 세액공제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신규 인력을 채용할 시 인건비를 지원하는 내용으로 당장 전면적으로 주 4.5일제가 시행되지는 않는다. 근로 시간 단축으로 인한 생산성 감소를 막으려면 추가 고용이 필수적인 만큼 대기업에 비해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오히려 혜택을 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또한 한국의 낮은 생산성에 대해서도 노동생산성이 GDP를 총노동 시간으로 나눈 값인 만큼 장시간 노동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이 외에도 한국의 낮은 노동생산성의 이유로 △연공성이 강한 임금체계 △낮은 업무 몰입도 등이 꼽힌다.
시범 사업의 중요성은 국내 기업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다. 기업 교육 전문 기업인 휴넷은 2022년 7월부터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해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다. 특히 휴넷은 주 4.5일제와 주 4일제를 계단식으로 밟아왔으며 주 4일제 도입 이전에 6개월 정도 시범 운영 기간을 가지며 문제점을 발견하려고 했다. 포스코나 에듀윌처럼 주 4일제 도입 후 실패하거나 내부 반발을 맞닥뜨린 경우도 있는 만큼 제도 확산 전 시범 운영을 통해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해외도 한국과 비슷해 주 4.5일제나 주 4일제를 공식적으로 도입한 국가는 많지 않다. 지난 2022년 아랍에미리트(UAE)가 연방정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주 4.5일제를 시행했으며 같은 해에 벨기에가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처음으로 주 4일제를 도입했다. 독일, 영국, 포르투갈, 캐나다, 뉴질랜드 등 다수의 국가는 현재 시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주 4.5일제는 당장 제도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장시간 노동 구조를 시험대에 올려보는 과정이다. 이번 실험이 '과로 사회'를 벗어날 분수령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여성경제신문 김민 기자 kbgi001@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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