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스 연설서 미국 정조준 발언이 화근
반미는 APEC 상호주의 기조 정면 충돌
트럼프 우호 제스처 이중성 파악 못해
한국이 설정한 공급망 의제 中엔 부담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브릭스(BRICS) 회의에서 미국을 겨냥한 강경 발언을 내놓으면서 10월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미중 양자회담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외교가에선 반미 구호를 전면에 내세운 시 주석의 노선이 APEC의 다자 질서와 충돌하며 트럼프 대통령과의 조우 자체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9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시 주석은 8일 브릭스 정상회의 연설에서 “특정 국가가 무역·관세 전쟁을 연이어 일으켜 세계 경제를 흔들고 국제 규칙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브라질·중국 등이 미국발 관세 압박을 비판해 온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중국 진영 입장에선 공세적 전환이라 볼 수 있지만 APEC은 기본적으로 자유무역과 포용적 성장을 지향하는 협력체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의 발언은 상호주의를 명분으로 관세를 주고받는 APEC 무대의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일자리 창출과 이민법 준수를 강조하며 APEC을 보호무역 강화의 플랫폼으로 활용하려는 반면 시 주석은 다극 질서와 반미 연대를 강조해 사실상 공존할 수 없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특히 한국에서 열리는 APEC은 동맹국 투자와 고용 창출을 강조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제를 실현하는 무대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내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단속 사례가 보여주듯 트럼프 대통령은 “투자 규모가 아니라 미국인 일자리 창출”을 새로운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런 맥락에서 시 주석의 반미 노선은 오히려 한국 정부를 미국 쪽으로 묶어놓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특정 리전(Region)에서의 반미 결속이 강화될 수 있으나 이를 APEC 무대에서 그대로 투영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국내적으로도 이재명 정부가 ‘안미경중’ 기조를 분명히 하며 미국과의 경제협력을 우선시하고 있다. 더구나 브라질이나 인도 등 브릭스 주요국조차 미국과의 개별 협상에 따라 이해관계가 엇갈려 시 주석의 반미 기조가 APEC에서 지지를 얻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로 브라질 룰라 대통령은 미국의 50% 관세 부과에 불만을 드러내면서도 대미 무역 협상을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인도 역시 국방·기술 협력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만큼, 브릭스식 연대가 APEC에서 힘을 발휘하기는 제한적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은 오히려 분명하다. 그는 APEC을 무역 질서 재편의 전시 무대로 삼기 위해, 관계 악화라는 뉘앙스조차 풍기지 않고 10월 한국 방문 일정을 외신을 통해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를 흘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이 참석한다 해도 어색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변덕스러운 트럼프가 돌연 불참한다면 한미동맹과 이재명 정부 외교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의장국으로서 한국은 미중 갈등을 중재할 명분을 갖게 되지만 실제로는 관세 협상 후퇴 부담이 더 커지는 셈이다.
다시 말해 의장국인 한국 측의 안미경중 폐지 메시지가 전해진 지금 상황에선 트럼프의 우호적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시진핑과의 APEC 양자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공식 의제도 무역·기후·공급망 안정으로 예정돼 있어, 미국이 주도해온 공급망 재편 구도와 정면으로 맞물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실질적 합의보다는 상호 비판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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