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압박 속 노조 임단협 난항
투자수익 90% 환류시 돈 어딨나?
"제조업 이제 한국에 미련 버려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4일(현지 시간)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미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이날 미국 백악관에서 “향후 4년동안 210억달러(약 30조8175억원)의 (대미) 신규투자를 발표한다”고 밝혔다. /백악관 X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3월 24일(현지 시간)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미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이날 미국 백악관에서 “향후 4년동안 210억달러(약 30조8175억원)의 (대미) 신규투자를 발표한다”고 밝혔다. /백악관 X

한국에서 공장을 돌리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한국 기업 투자 수익 90% 환류 압박과 고율 관세 리스크가 겹친 가운데 현대자동자 노조가 미국에서 발생한 수익을 기준으로 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강경 기류를 이어가고 있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사는 올해 임금단체협상을 두 달째 이어가고 있지만 결렬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노조는 16·17차 교섭에서 전향적 안이 없으면 결렬을 선언하겠다고 예고했다. 파국은 기정사실처럼 다가오는 분위기다.

먼저 사측은 대미 수출 감소와 미국 내 관세·환율 여파를 들어 올해는 방어적 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노조는 미국 현지 공장 생산 증가분이 반영되지 않은 통계라며 맞서고 있다. 요구 총액은 전년 대비 약 3000억원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재무부는 역대 최대 규모인 1000억 달러의 4주 만기 재정증권(T-bill) 발행에 나섰다. 시장에서는 ‘누가 이 국채를 사야 하는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고 스콧 베선트 장관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미국 내 생산 거점을 둔 외국계 기업이 주요 매입층이 될 가능성을 지목한다.

대표적인 타깃이 현대차다. 현대차는 조지아·앨라배마주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두고 연간 수십만 대를 현지에서 생산·판매한다. 제조·판매·수익 회수까지 모두 미국 내에서 이뤄지는 ‘달러 벌이’ 구조이지만 역설적으로 본사 송금 제약과 국채 매입 압박에 직면할 위험을 키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했던 ‘90% 수익 환류 원칙’이 현실화될 경우 현대차는 미국에서 번 돈을 본사로 보내지 못하고 현지 자산으로 묶어둬야 한다. 이는 국내 공장 투자 여력을 줄이고 노사 협상 재원에도 직격탄이 된다.

특히 올해 상반기 현대차의 대미 수출량은 전년 대비 16.6% 줄어 약 28만 대에 그쳤고영업이익도 7.7% 감소했다. 하반기에는 관세 여파로 실적 감소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동석 현대차 대표는 “관세 문제는 기업이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노사가 상생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노조는 “사측이 관세 리스크를 과도하게 부풀리고 실적을 축소한다”고 맞서고 있다.

노조는 이러한 글로벌 불확실성에도 △월 기본급 14만13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전년 순이익 30% 성과급 △상여금 900% △정년 64세 연장 △주 4.5일제 도입 △퇴직금 누진제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교섭은 이미 15차까지 진행됐지만, 양측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을 단순한 임금분쟁이 아니라 미국 정책 변화 → 현대차 글로벌 구조 변화 → 국내 임금체계 충돌이라는 전형적인 글로벌-로컬 갈등 사례로 본다. 기아 노조도 비슷한 요구안을 내고 있어 완성차 업계 전반에 강경 기류가 번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 수년간 무분규 타결이 이어졌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결국 현대차 노사 갈등은 미국의 정책 변화, 글로벌 생산구조 재편, 국내 강성 노조의 요구가 맞물린 복합 위기다. 업계 일각에서는 “정의선 회장이 한국 생산을 줄이고 해외 중심으로 생산라인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에 특별 법인세 명목으로 수익의 90%를 납부하더라도 예측 가능한 규제 환경과 유연한 인력 운용 측면에서 한국보다 나을 수 있다는 판단이 경영진 내부에서 나올 수 있다”고 전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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