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투자-관세 연계 성과 챙기는데
합의문조차 없이 국내 여론 몰이
백지수표 논란 부풀려 진영 결집

미국이 한국의 대규모 대미 투자를 자국 인프라 재건과 경제안보 기금 조성에 직접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면서 한미 통상 협상이 정면 충돌 국면에 들어섰다. 트럼프식 ‘과도한 요구 후 일부 양보’ 전술이 노골화되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반미 정서를 자극하려는 내치용 선동까지 맞물리며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28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해외 자금으로 미국 인프라를 구축할 것”이라고 언급한 발언을 두고 반미 여론을 부추기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러트닉 장관이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시하는 대로 3500억 달러를 미국에 제공하고, 수익의 90%가 미국민에게 돌아간다”고 밝힌 것이 발단이다.
김민석 국무총리의 형 김민웅 씨가 선봉에 섰다. 그는 소셜미디어에서 “날로 먹겠다는 것”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미국을 강도 국가로 규정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압박이나 강압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다만 실제 구조를 보면 미국은 한국에만 일방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이 아니다. 일본도 5500억 달러, EU도 농산물 시장 개방이라는 조건을 명문화하며 같은 방식으로 자동차 관세 인하를 얻어냈다. 즉, 미국은 모든 주요 교역 상대국과 투자·개방 대가로 관세를 인하하는 동일한 프레임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차이가 있다면 한국이 농업 개방에 대한 부담 때문에 합의문 채택을 유보했을 뿐이다. 따라서 미국의 요구를 압박으로만 규정하는 건 반미 정서에 기대는 해석일 뿐이며, 정작 협상 테이블의 핵심은 교환 조건을 어떻게 문서화하고 그 대가로 무엇을 얻느냐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정부 고위 관료의 가족이 나서 외교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모양새다.

더 큰 문제는 한국 정부의 대응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실제 들어가는 돈은 5% 미만, 대부분은 보증”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워싱턴은 투자 약속의 형식보다 미국 내 인프라와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는 실제 효과를 최우선으로 본다. 따라서 한국이 아무리 ‘보증’이라 강조해도 미국은 일본의 사례를 근거로 실질적 기금 운용 자금에 반영하려는 것이다.
트럼프식 협상은 언제나 과도한 요구를 던진 뒤 일부를 양보하며 상대방이 ‘성과’를 얻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구조다. 그러나 한국이 협상 대신 반미 감정과 도덕적 비난을 앞세운다면, 실질적 협상 여지는 사라지고 미국의 보복 가능성만 커진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뭔가 하려 시도했지만 결국 합의는 지켜졌다”며 100% 미국 의도대로 결과가 이뤄졌음을 쐐기 박았다. 이는 투자-관세 연계 구조 속에서 한국의 회피 전략이 아무런 실익을 남기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조갑제·정규재 등 극우 논객들의 반미 담론이나 좌파 진영 결집은 본질을 바꾸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도 성향의 한 보수 인사는 “국내 정치권에서 나오는 메시지는 대부분 ‘내치용 선동’에 불과하다”며 “경제 및 통상 관련 지식이 없는 이들이 인상비판만 앞세우다 보니 정작 국가 경쟁력은 무너지고 정치적 몰락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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