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정부와 언론은 '재투자'라지만
백악관 대변인 브리핑 공식 확인
미국 국가 부채 상환에 사용될 것
실상은 트럼프에 수익 이전 구조

트럼프 대통령과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과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 /AP=연합뉴스

백악관이 한국과의 통상 협상에 대해 "역사적인 시장 접근(historic market access)"이라며 대대적인 개방 성과를 강조한 가운데 미국 현지에서 발생한 기업의 수익 대부분이 미국 정부로 귀속될 것이란 내용이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2일 여성경제신문이 깐깐한 팩트탐구 코너를 통해 양국의 주장을 분석한 결과, 투자수익 90% 귀속 발언은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에서 직접 밝힌 내용인 것으로 확인됐다. 더 눈여겨볼 것은 미국산 자동차(AUTOS)와 쌀(RICE)에 대한 접근 확대를 ‘역사적 성과’로 강조한 것이다.

한국 내 관련 시장 개방의 성과를 강조하는 동시에 투자 수익을 정부 재정 확보 수단으로 연결하겠다는 전략은 이미 드러난 것이지만, 기업의 수익이 어디로 가느냐가 관건이었다. 이와 관련해 래빗은 “그 이익의 90%는 미국 정부의 국채 상환이나 대통령이 정하는 항목에 투입된다"고 밝혔으며, 이는 국가 단위의 수익 회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 내 일부 언론은 이를 '재투자' 프레임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실제 백악관 발언 어디에도 한국 내 재투자 계획이나 상호이익 구조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기업 수익은 미국이 가져가고, 한국은 시장 개방 압력만 계속 떠안게 되는 구조다.

이재명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업 수익 환류(repatriation) 구조에 대해 공식 반박 없이 사실상 수용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은 지난 31일 브리핑에서 “(미국에) 논박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 뒤 “우리가 내부적으로 해석하기로는 재투자 개념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미국 백악관이 "수익의 90%는 국채 상환 등 미국 정부 재정에 쓰인다"고 명시적으로 밝혔음에도 자의적 해석으로 갈음하겠다는 뜻이다. 설령 이런 대응이 국내 여론 달래기 목적일지라도, 미국 입장에선 명백히 정책적 수용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더 심각한 건 김용범 실장이 언급한 일본 사례조차 미국의 무역 불균형 시정 압박 이후 버블 붕괴와 자산 붕괴 위기의 복선을 깔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상대국 시장을 열게 하고, 수익을 미국으로 환류시킨 뒤 재정 보전에 사용하는 방식의 통상 전략을 반복적으로 실행해 왔다.

플라자합의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1985년 미국은 일본·독일 등 주요 5개국(G5)을 소집해 자국의 대규모 무역적자를 이유로 달러 가치를 강제로 끌어내리는 ‘공동시장 개입’에 서명하게 만들었다. 이후 엔화는 1달러당 240엔에서 120엔 수준까지 급등했고, 일본 수출기업들은 순식간에 가격 경쟁력을 잃었다.

당시 일본은 급격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재정 지출과 저금리 정책을 동원해 내수를 부양했지만, 자산·주식·부동산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폭등하며 사상 초유의 버블이 형성됐다. 1990년대 초 버블이 붕괴되자 일본 경제는 장기 불황에 빠졌고, '잃어버린 30년'으로 이어졌다. 고환율–저생산성–국가주도 유동성 부양이 반복되며, 민간 제조업이 사실상 붕괴된 구조로 고착화됐다는 점이다.

40년 전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미국 달러의 평가절하를 겨냥한 '플라자 합의'를 성사히킨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의 재무장관들. 중앙이 회의를 소집한 미국의 제임스 베이커 재무장관, 맨 오른쪽이 플라자 합의의 최대 희생양이 된 일본의 다케시타 노보루 당시 대장상. / AP=연합뉴스
40년 전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미국 달러의 평가절하를 겨냥한 '플라자 합의'를 성사히킨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의 재무장관들. 중앙이 회의를 소집한 미국의 제임스 베이커 재무장관, 맨 오른쪽이 플라자 합의의 최대 희생양이 된 일본의 다케시타 노보루 당시 대장상. / AP=연합뉴스

일본은 실물 산업 기반을 잃은 채 자국 내에서 더 이상 생산이 어려운 체제로 굳어져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구조가 됐다. 반면 한국은 아직 민간 제조업과 수출 경쟁력이 살아 있는 상태인데도 15% 관세 협상을 먼저 타결한 일본의 노선을 일방적으로 따라가는 전략을 취했다. 이는 결국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타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오판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처럼 “수익의 90%를 미국 정부가 직접 회수하겠다”고 백악관이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강한 수위의 경제적 선전포고다. 일본이 플라자합의 이전에도 엔고 압박과 금융 개입 요구를 받으며 미국의 통제 범위 안에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백악관 발언은 훨씬 더 직접적인 개입 시그널로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라면 한국은 소비시장 역할만 강화되고, 자국 산업의 실질적 이익은 점차 축소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미국의 강달러와 연계될 경우, 한국의 무역흑자 구조는 오히려 달러 유출 구조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무역은 열심히 하고도 경제는 쇠약해지는 ‘이중 적자’ 구조가 반복될 것이란 우려다.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와의 첫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협상의 실질 내용을 국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내 산업 보호 대책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백악관이 공식적으로 ‘쌀’까지 언급한 상황에서 “지금 당장 쌀은 개방하지 않았다”는 식의 해명으로 사안을 덮으려는 건 사실 왜곡에 가깝다. 이미 쌀이 언급된 이상 협상의 문구든 부속 합의든 사실상의 개방 조치가 포함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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