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인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 /이종성 의원실 제공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인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 /이종성 의원실 제공

누군가 내게 "탈시설화를 반대하나요?"라고 묻는다면 "이 세상 그 누구도 반대할 사람은 없다"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선택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장애 여부를 떠나 모두가 누려야 할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누구는 반대하고 누구는 찬성하는 주제라고 인식되고 있을까. 원인은 잘 못 끼워지기 시작한 단추에 있다.

국내 장애인복지서비스 체계는 해외의 여타 국가와는 다른 특이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국내 지역사회 서비스 현황은 매우 저조한 수준에 있다. 이러한 국내의 여건과 특수성을 감안해 탈시설화 전략이 마련돼야 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진행하지 못했다. 열악한 현실을 외면한 채 오로지 시설 폐쇄와 시설 이용자 수 감소를 목표로 설정한 탈시설 전략은 시설을 이용하고 있거나 입소를 희망하던 가족을 궁지로 몰았다.

최중증 장애인 가족에게 '탈시설'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가 절망이며 공포가 됐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이념에 경도되어 탈시설화의 정당성만을 부각해 주장하고 다른 의견을 반인권으로 몰아세우는 방법을 선택했다. 결국 탈시설화는 찬성과 반대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매몰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지역사회 속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통합의 궁극적 이상은 같으면서도 찬반의 논리에 갇혀버리게 된 것이다.

유럽의 방식과 선진국의 제안이 최선이 될 수는 없다. 우리의 특수성이 무엇이고 현실은 어떠한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는 장애인등록제와 등급제라는 해외에서는 찾기 어려운 특이한 지원체계를 기반으로 한다. 특히 의료적 기준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장애 판정 기준이 획일화되어 있고 세부적인 장애 특성과 상황을 반영하기 어렵다. 이러한 장애인복지서비스 체계에서는 장애인 개인의 특수성을 이해할 수 없으며 서비스 양을 파악한다거나 지원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러한 장애 판정 및 등록체계와 등급제에 의존해 장애인복지서비스 전달의 용이성을 추구해 왔다. 반면 다른 국가의 경우 장애 여부를 알 수 있는 등록제와 정도를 판단하는 등급제가 부재하다 보니 장애인 서비스 지원을 위한 조사와 여건을 파악하기 위한 큰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어야 했다. 이렇다 보니 해외국가들이 오히려 장애를 이해하기 위한 정보를 더욱 많이 수집하고 또 서비스 양을 지속해서 평가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지원사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사용하게 됐다.

최근 국내에서도 차라리 장애인등록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등록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장애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정보를 기반한 복지서비스 제공 및 지원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정리하자면 어찌 되었든 국내의 상황은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며 어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현 상황에서 중증장애인의 자립이 가능한지, 의료지원이 필요한지, 어떻게 생활할지, 탈시설을 한다면 삶의 질이 향상될지 등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으며 이를 판단하는 기준도 없다.

호주의 경우 NDIS라는 국가 장애 보험제도를 통해 개인 예산제 및 서비스가 지원된다. 특히 서비스 대상 판정을 위해 여러 조사를 실시하는데 수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된다. 반면 국내 장애판정은 의사 진단서 등의 서류 절차를 진행하면 되고 활동 지원 등의 서비스를 받고자 한다면 서비스 종합조사를 받는데 사실상 몇 시간 만에 조사가 완료된다. 미국의 경우 코드체계를 갖춰 통계와 데이터에 기반해 사업을 분석하고 대상자를 필터링해 예산책정과 서비스를 지원한다.

국내의 경우 WHO가 권고하고 있는 ICF(Internat ional Classification of Funct ioning, Disability, and Health, 국제기능장애건강분류) 코드 분류체계조차 수십 년째 논의만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역 사회 서비스 현황과 수준은 어떨까. 먼저 장애인 건강 보건 관리 서비스 사업 중 장애인건강검진 기관은 현재 19개 기관이 선정되었으나 이 중 9개 기관만 개시된 상황이다. 당초 2022년까지 100개소 지정에서 2024년까지로 기간을 연장하였으나 선정조차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주치의 제도는 등록 의사가 전국에 1차 시범사업 59명, 2차 시범사업 58명, 3차 시범사업은 71명으로 100명도 채 되지 않고 사업은 난항 속에 있다.

장애친화산부인과는 2021년 8개소를 지정했지만, 아직 운영 준비 중이다. 장애인건강관리는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의 삶과 생존에도 크게 관여한다. 하지만 주치의 제도에서부터 건강검진까지 건강관리사업은 미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 및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편의시설 등의 설치율 역시 열악하다. 국내 편의시설 설치율은 80.2%로 공식 발표되고 있지만 편의시설 설치 의무 대상 시설만을 조사한 결과이고 전체 건축물의 90% 이상이 편의시설 설치 대상에서 제외된다.

특히 1종 근린시설로 분류되는 생활 필수시설에 대해서는 그나마 설치 대상으로 분류되지만 2종 근린시설로 분류되는 문화여가건강관리 및 종교, 경제관련 시설 등은 대부분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뿐만 아니라 의무대상시설이라고 하더라도 설치세부 항목에서 주 출입구와 접근로까지만 설치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실내 화장실, 복도, 승강기 등의 세부설치항목을 제외한다. 때문에 실질적으로 장애인이 건축내의 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지역사회 내 자립지원을 위한 서비스 부재 및 열악한 환경 등으로 장애인거주시설 입소대기자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거주시설 수기 명부에 작성된 대기자 현황은 2017년 1291명에서 2022년 5월 말 기준 5065명으로 약 4배 가까이 늘었다. 이 와중에 지역사회 내 장애인 학대 사건은 지속적인 증가 추세에 있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신고 접수된 장애인 학대사건 중 학대 행위자가 피해자의 가족 및 친인척인 경우는 2018년 대비 50.2% 증가했으며 일반 지역 사회의 지인인 경우도 63.6% 증가했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지난 5년간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살해하거나 자녀와 동반 자살하는 사건은 언론에 소개된 사례만 해도 무려 34건이나 발생했다.

유럽연합은 2010년 '시설에서 지역사회 기반으로의 전환에 대한 전문가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적절한 대안 없는 시설 폐쇄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 가장 하기 쉬운 실수는 시설 이용자 수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는 탈시설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며 이러한 전략은 지역사회에 대한 자원의 평가나 역량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부적절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탈시설 로드맵은 대상자 수와 시설 폐쇄를 목표로 설정했고 지역 자원의 준비와 국내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추진전략이 수립된 것이다.

서울시의 경우 10여 년 전부터 자체적인 탈시설 추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하다. 거주시설 퇴소자 1178명 중 연고자 인도, 타 시설 전원, 사망하는 경우가 764명으로 약 65%에 이르며 자립 현황은 338명으로 약 28.7%에 불과한 상황이다. 즉, 탈시설을 통해 지역사회로 자립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2/3에 해당하는 많은 장애인이 열악한 지역사회로 내몰리는 결과만을 초래했다. 이러한 실정에서 과연 탈시설 정책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정부 차원의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시범사업을 통해 실효성 있는 지역사회 서비스가 어떻게 개발돼야 하는지, 국내 여건에서 보완되어야 할 내용이 무엇인 지 등 면밀히 그리고 신속히 분석되고 도출돼야 한다. 특히 탈시설화를 통해 삶의 질이 어느 정도 상향되는지 검토해야 한다. 서두에 표현했듯이 탈시설화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탈시설화를 진행해 장애인 인권을 보장하고 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지역사회의 현황을 면밀히 검토하고 우리의 제도를 개선하지 않은 무리한 추진은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 유럽연합의 각 국가 중 일부 국가들이 지역사회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탈시설을 추진했고 이는 장애인의 고통으로 이어졌음을 이미 경고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국내 현황은 다른 여타 국가와 비교해 매우 열악하다. 건강권 보장 및 요양체계,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지원 수준도 모두 저조하다.

디지털 강국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만, 장애인복지서비스에서 디지털을 활용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의 여건과 상황들을 빨리 보완하고 대안들을 제시하면서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안을 조속히 구비할 수 있도록 우리는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장애인의 희생이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회통합과 지역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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