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루스벨트, 독점재벌 해체로 공정시장 초석 다져
위원 파면 무효 판결은 대통령 인사권 제동 사례
트럼프, 금리 미온적이라며 파월 의장 해임 시사
관세-금리 사이에서 '최악'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미국 제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공화당 소속이었지만 진보적인 진영의 입장을 대표했다. 미국이 제대로 발전하려면 자유시장 질서를 위협하는 독점재벌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루스벨트는 '트러스트(trust)''라고 불리던 독점재벌 그룹의 해체를 위해 법무부 장관에게 소송을 제기할 것을 요구했다.
루스벨트 정부는 1902년 우선 월가의 '금융 황제'로 불리던 J.P. 모건이 지배하던 노던 시큐리티스(Northern Securities) 회사를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사명에는 '증권사'를 썼으면서 북부 지역의 경쟁 노선을 매입해 당시 핵심 산업이던 철도산업을 불법적으로 독점하려 했다는 이유였다. 2년 후 연방대법원은 노던 시큐리티스의 해체를 명령했다.
이들은 이에 더해 '담배왕'이라 불리던 제임스 듀크의 아메리칸 토바코(American Tobacco) 회사에도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노스캐롤라이나를 거점으로 한 듀크 가문은 빠른 속도로 연초를 마는 기계를 도입해서 담배 제조 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뒤 경쟁사들을 인수해 담배 산업을 독점했다. 소송은 길게 이어졌다. 루스벨트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 재임 중인 1911년 대법원은 아메리칸 토바코의 해체를 명령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반독점 소송의 승리는 존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 회사 해체 명령이었다. 당시 스탠더드 오일은 빠르게 성장하며 부를 안겨준 미국 석유 산업의 90%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법원은 1911년 마찬가지로 이 회사의 해체를 명령했다. 스탠다드 오일은 34개의 회사로 분할됐다. 작금의 큰 규모 석유회사 중 하나인 엑슨모빌, 셰브론 등이 스탠더드 오일의 후신이다.
루스벨트는 노동자의 권익도 옹호했고 자연보호에도 앞장섰다. 여러 곳의 국립공원을 답사했고 국립공원의 면적도 크게 늘렸다. 국제적으로는 러일전쟁의 종전을 성공적으로 중재해 포츠머스 회담을 체결하게 했고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민 건강의 증진에도 신경을 썼다. 미국 해군도 증강했고 파나마 운하의 건설에도 착공했다. 탁월한 리더십을 보인 루스벨트는 러시모어 국립공원에 얼굴이 조각된 다섯 명의 대통령 가운데 한 사람이 됐다.
그의 먼 사촌뻘 친척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FDR)도 러시모어 조각상에 얼굴이 새겨진 대통령 중 한 명이다. 하지만 FDR은 반독점법과 관련해 또 다른 일화로 유명하다. 반독점과 불공정을 심사하는 연방공정거래위원회(FTC) 위원을 파면하려 했기 때문이다.
FTC는 1914년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에 의해 창설됐다. 진보적인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계보를 이어 소비자와 투자자를 거대기업의 횡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FTC의 수뇌부를 구성하는 다섯 명의 공정거래위원이 기업의 불공정거래 여부를 심사하고 판단했다. FTC 위원은 7년 임기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의 인준을 거쳐야 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3명이 넘는 위원은 같은 정당 출신일 수 없게 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재임한 1930년대는 대공황의 시대였다. 1929년 버블이 한창이던 뉴욕 주식시장이 붕괴했고 이를 수수방관하던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오히려 관세를 크게 올렸다.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 미국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2만 가지가 넘는 품목에 관세를 인상했다. 1932년 평균 관세율은 60%가 넘어섰다.

스무트-홀리(Smoot–Hawley) 관세라 불리는 이 과격한 관세 인상으로 전 세계 교역량은 대공황 이전에 비하여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그 여파로 대공황이 전 세계로 번졌다. 그다음 해에 대통령으로 취임한 루스벨트는 관세를 내리는 한편 정부 재정을 투입해 경기를 부양하는 총수요진작 정책을 펼쳤다.
루스벨트는 '뉴딜정책'을 시행해 사회경제의 구조를 개혁하고 경기 침체를 극복하고자 했다. 하지만 많은 이가 뉴딜이 너무 과격하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그 가운데는 공화당 출신의 공정거래위원인 윌리엄 험프리(William Humphrey)도 있었다. 루스벨트는 격분했다. 어려운 시기에 정부의 핵심 정책에 반기를 드는 공무원을 두고 볼 수 없었다.
1933년 루스벨트는 마침내 험프리를 파면했다. 험프리도 가만있지 않았다. 이듬해 그의 파면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험프리의 손을 들어줬다. 단지 정책에 대하여 상반된 견해를 보인다고 하여 법적으로 독립성이 인정된 FTC 위원을 파면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정치적으로 독립된 FTC 위원을 해임하려면 배임, 부정 등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의 1935년 판결로 인해 독립된 연방기관의 정치적 독립성은 대체로 존중돼 왔다. 요직의 임기도 보장됐다. 하지만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또다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에 대하여 해임 의사를 넌지시 비쳤다.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관세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며 금리 인하 가능성을 일축한 파월을 비난하면서였다. 경기도 좋고 물가도 내리는데 파월이 금리 인하에 미적거린다며 '아무리 빨리 그만둬도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그러자 그간 잠잠하던 질문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과연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독립된 연준 의장을 해임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대부분의 법률 전문가는 그 가능성을 부인한다. 1935년 판결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부정, 일탈, 무능이 아니면 대통령이 연준 의장을 해임할 수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가 조용히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금융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금리 인하를 미루는 파월 의장을 공격하고 해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파월 의장의 임기가 1년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트럼프가 파월을 재임명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 파월이 트럼프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사실 그간 비둘기파로 불려 온 파월이지만 그의 온건한 입장에서 보아도 경제에 대한 상황인식은 심각할 수밖에 없다. 관세가 없더라도 물가 하락 속도가 완만해져 연준의 목표 물가인 2% 달성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보편관세 10%에 상호관세까지 추가되면서 물가에 대한 부담이 확 높아졌다. 이 상태에서 주가가 하락한다 해도 금리를 쉽게 내릴 수는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관세 부과로 인해 가뜩이나 취약해진 경기가 내리막길을 빠르게 내려가 침체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연준이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치면 물가와 경기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1980년과 같이 금리를 21%로 올려 경기를 침체에 빠뜨리고 물가를 잡거나 1970년대처럼 경기침체를 피하려고 인플레이션을 방치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트럼프의 관세와 파면 위협 사이에서 파월의 시름이 깊어지는 이유다.
여성경제신문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francis.kim@furman.edu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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