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트럼프, 경상수지 천착해 관세전쟁 시작했지만
국가 재정은 수치 아닌 국민 '살림살이' 위한 것
국채 가격 내려가면 기축통화국 지위 흔들린다
재정 흑자 강박에 교육·R&D 삭감하면 주객전도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영업을 한다. 원재료를 구입하고 직원을 고용해 제품을 만들어 판다. 기업의 수익은 제품의 매출에서 나온다. 기업이 매출을 올리기까지 지출한 각종 비용을 공제하면 순익이 남는다. 각종 비용은 기업이 누군가로부터 원재료나 에너지, 노동을 구입하고 지출한 돈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단순하게 보자면 기업이 고객으로부터 받은 돈에서 비용으로 쓴 돈을 빼면 순이익이 된다. 기업은 순이익을 올려야 한다. 비용이 더 많아 순손실을 보면 현금이 바닥난다.

작년 한해 미국의 무역적자는 9200억 달러에 달했다. 서비스를 뺀 제품 무역만 보면 무역적자가 1조 2000억 달러에 이른다. /AFP=연합뉴스
작년 한해 미국의 무역적자는 9200억 달러에 달했다. 서비스를 뺀 제품 무역만 보면 무역적자가 1조 2000억 달러에 이른다. /AFP=연합뉴스

현금이 없으면 기업은 부도를 내게 된다. 전기세나 임금 지급을 지체하거나 부채의 원리금을 제때 상환하기 어렵게 된다. 돈을 벌지 못하면 금융기관에서 추가로 돈을 빌리기도 어려워진다. 이런 이유로 기업은 순이익을 올리려고 사활을 건다.

나라 살림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정부는 세금을 거둬 수입을 올린다. 그 수입을 바탕으로 예산을 세워 국방, 교육, 복지 등 각종 지출에 충당한다. 정부의 총지출이 총수입을 초과하면 재정적자가 된다. 기업의 순손실과 유사하다.

기업은 순이익을 내기 위해서 전력을 투구하지만 정부는 재정 흑자가 최종 목표는 아니다. 이익이 나면 좋겠지만 적자가 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적자분만큼 빚을 내서 메우면 된다.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투자자에게 팔아서 적자를 메운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국채가 부도날 일은 없다. 세수가 줄어들면 우선 화폐를 찍어 급하게 막으면 된다. 그래서 국채는 신용도가 높다. 정부가 끝없이 빚을 늘이는 이유다. 화폐의 가치가 휴지 조각이 되지 않는다면 국채는 시장에서 비교적 수월하게 팔린다.

물론 정부가 지출한 돈은 누군가의 수입으로 들어간다. 재정적자가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정부로부터 받은 돈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면 미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 정부의 지원으로 저소득층 아이의 양육이나 교육이 가능해지면 미래 노동생산성이 향상된다.

정부의 보조로 사업을 일으켜 사람들을 고용하고 세금을 내면 사회와 국가에 이익이 된다. 재정적자를 뿔 달린 괴물로 볼 수도 있지만 단비를 내리는 착한 도깨비로 볼 수도 있다. 재정적자를 혐오해 균형재정만 부르짖으면 재정의 존재 이유라는 본질을 망각한 채 탁상공론에 빠질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 시각) 워싱턴 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각국별 상호 관세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 시각) 워싱턴 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각국별 상호 관세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재정건전성 목표에만 매달린 채 경제와 사회의 장기 성장에 필수적인 교육이나 연구개발(R&D)에 대한 지원 비용을 삭감하는 것이 좋은 예다. 이런 비용의 지출 과정에서 유용이 발생할 수 있으니 아예 없애버리자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마치 운동하러 헬스장에 가는 차비나 시간이 아까우니 아예 운동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낭비되는 요소가 있으면 개선하면 된다. 국소마취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전신마취를 해 환자를 큰 위험에 빠뜨릴 필요는 없다.

이처럼 본말(本末)이 전도되는 경우는 중국 무역정책에서도 발견된다. 중국은 제조업의 경쟁력이 높다. 상대적으로 임금도 낮고 노동생산성도 높다. 국내 서플라이 체인이 촘촘하게 자리 잡아 원재료와 중간재의 공급도 효율적이다. 당연하게도 중국은 글로벌 수출시장을 장악했다. 중국은 작년 한해 3조6000억 달러를 수출하고 2조6000억 달러를 수입해 거의 1조 달러의 무역흑자를 냈다. 이는 사상 최고치다. 금년 1분기 수출은 6% 늘어났지만 수입은 7% 감소했다. 미국과의 무역흑자도 증가일로다.

반면 과거 세계를 호령하던 미국 제조업은 경쟁력이 바랬다. 임금이 높고 일손도 부족하다.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질 높은 국내 인력 확보가 어렵다. 노동집약적 산업은 해외로 이전해 공급망도 취약하다. 인프라스트럭처도 상대적으로 노후해졌다.

그 결과 작년 한해 미국의 무역적자는 9200억 달러에 달했다. 서비스를 뺀 제품 무역만 보면 무역적자가 1조 20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수출이 3조 2000억 달러였지만 수입은 4조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수출은 2%가량 증가했지만 수입이 6% 넘게 늘어난 탓이다.

2024년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거의 3000억 달러의 적자를 봤다. 무역의 성적표만 놓고 보면 분명히 중국이 미국보다 더 잘하고 있다. 무역에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미국은 외국과의 거래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잃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중국이 미국보다 더 나은 경제라고 믿는 이는 많지 않다. 미국인은 해외에 파는 것보다 훨씬 많이 수입해서 썼지만 그 수입품이 하늘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수입해서 쓴 만큼 미국인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복지가 향상됐다.

반면 큰돈을 벌어들인 중국인의 복지는 제자리걸음이다. 농민공이 되거나 배달업에 종사하며 뼈 빠지게 일했지만 실업은 오히려 늘어나고 살기는 더 빠듯해진다. 제 살을 깎아 제품 가격을 낮춘 뒤 수출을 늘린 중국이 주가가 올라 돈을 써대며 수입 규모를 키운 미국보다 낫다고 볼 수는 없다.

 큰돈을 벌어들인 중국인의 복지는 제자리걸음이다. 농민공이 되거나 배달업에 종사하며 뼈 빠지게 일했지만 실업은 오히려 늘어나고 살기는 더 빠듯해진다. /사천일보=연합뉴스
큰돈을 벌어들인 중국인의 복지는 제자리걸음이다. 농민공이 되거나 배달업에 종사하며 뼈 빠지게 일했지만 실업은 오히려 늘어나고 살기는 더 빠듯해진다. /사천일보=연합뉴스

국민경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에게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운 삶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다. 재정이나 무역도 국민의 복지수준을 높이기 위해 존재한다. 권장 체중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다이어트하다 건강을 망칠 필요는 없다. 권장 기준도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야 한다.

마찬가지로 무역적자가 있다고 하여 돈을 잃는 회사의 대표처럼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다. 무역적자를 적대시할 필요도 없고 무역흑자를 신줏단지처럼 떠받들 필요도 없다.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경제 성장이 본궤도에 올라와 있다면 염려가 없다.

기축통화국인 미국 입장에서는 더 그렇다. 미국이 몇십 년간 지속적인 무역적자를 내면서도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는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이다. 경상수지 적자로 미국을 떠난 달러는 자본금융 수지 흑자로 다시 미국에 돌아온다.

미국에 경상수지 흑자를 낸 국가는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평가되는 미 국채에 투자한다. 미국은 더 싼 값에 국채를 발행해 비용을 줄인다. 또한 달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달러 가치도 올라간다. 달러 가치가 올라가면 미국인의 구매력이 늘어나고 국채 투자자도 이익을 본다.

트럼프의 경제 책사인 스티븐 마이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은 무역적자를 적대시한다. 관세를 통해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달러 가치를 낮추어 무역수지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관세를 올렸다. 그가 원한 대로 달러 지수는 110선에서 100포인트로 밀렸다.

미 국채수익률은 오히려 급증했다. 국채 가격이 내렸기 때문이다. 누군가 국채를 많이 '던졌다'는 얘기다. 미 국채가 외면당하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는 위태로워진다. 미국 최고의 수출품인 달러화의 운명이 어두워진다. 관세 예찬론자인 트럼프도 그것만은 감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가 관세전쟁에서 일보 후퇴한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francis.kim@furman.edu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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