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80억 들여 '1조' 오픈 AI에 대적
가성비·기술···美 기술주 대충격
中, 제2·3 딥시크 출시하겠지만
정부 데이터 제공 압력에 '발목'
수업 시간에 지금 세계에서 가장 시가총액이 높은 회사인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구글, 아마존, 메타, 테슬라의 공통적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다. 한 학생이 "테크놀로지가 아닐까" 대답했다. 내가 원했던 답은 아니었다.

이 회사들의 성공 신화를 규정하는 공통적 단어는 바로 혁신(innovation)이다. 테크놀로지에서 혁신적 돌파구를 찾은 기업이었다. 애플은 스마트폰을 만들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를 선보였다. 아마존은 온라인 서점과 이커머스 시장을 창조했고 메타와 테슬라는 월등한 소셜미디어와 전기차를 개발했다.
2000년경 한국의 검색시장을 평정한 것은 다음이었다. 인터넷 무료 음성통신 서비스를 선보이며 한국의 닷컴 버블을 선도하던 새롬기술에 이어 등장한 샛별이었다. 한메일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 국민 이메일 회사로 탄생했다.
하지만 필자는 다음에서 신문 기사를 검색할 때마다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네이버라는 검색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시험 삼아 기사를 검색했는데 청량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네이버는 다음을 제치고 국민 포털로 자리 잡았다.
비슷한 시기 미국 인터넷 시장을 호령하던 회사는 야후였다. 다들 야후 포털 사이트에 가서 기사도 보고 시장 상황도 체크했다. 야후의 번영은 영원할 듯했다. 하지만 신생기업 구글은 '페이지랭크(PageRank)'라는 혁신적 검색 알고리즘으로 순식간에 시장을 거머쥐었다.
사람들은 구글 알고리즘의 비밀을 이해하려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구글의 알고리즘에는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함께 구글을 공동 창립한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의 공헌이 컸다. 그는 러시아 출신의 컴퓨터 공학자이다. 페이지와 더불어 스탠퍼드 공대 박사과정을 다녔다.
2015년 일론 머스크는 그렉 브록먼 등과 함께 페이팔 마피아의 도움을 받아 오픈AI를 창업했다. 비영리 기업으로 인공지능이 초래할 위험에 대비하자는 인류애적 동기가 창업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2019년 샘 올트먼이 CEO로 가세하면서 영리 기업으로 전환했다.
올트먼도 스탠퍼드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했다. 이런저런 스타트업을 시도하다 오픈AI에 자리 잡은 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수백억 달러의 투자를 받아 본격적인 인공지능 모델 개발에 전력투구했다. 2022년 11월 30일에는 생성형 인공지능 언어모델 챗봇인 챗지피티(ChatGPT)를 출시했다.
챗GPT는 순식간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 초 인터넷 시대의 전개를 선도한 구글 검색 엔진을 능가하는 후폭풍이 닥칠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챗GPT가 아예 인터넷 등장의 파급효과를 뛰어넘는 혁명적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측하는 이들도 많았다.
챗GPT의 등장은 빅테크가 주도하는 테크놀로지 생태계를 순식간에 바꿔놓을 정도로 강한 충격을 던졌다. 어떤 정보를 얻으려고 구글이나 네이버 검색창에 몇 차례 문장을 입력하며 스트레스를 받던 사용자들은 환호했다. 단 한 번의 질문으로 고객의 입맛에 맞도록 깔끔하게 정리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챗GPT를 개발한 오픈AI가 혁신의 아이콘으로 등장하고 여기에 투자한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의 혜안에 대한 칭송이 자자해지자 다른 빅테크 CEO의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첨단 인공지능의 상징과도 같은 회사인 딥마인드를 보유한 구글의 부담과 조바심이 컸다.
2016년 3월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 대국에서 이겨 세상을 놀라게 했다. 복잡한 바둑의 세계를 이해하고 전략을 학습해 최강의 바둑기사를 코너로 몰아붙인 기술력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오픈AI가 창업한 지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구글은 서둘러 챗GPT와 유사한 생성형 AI모델인 바드(Bard)와 제미나이(Gemini)를 잇달아 선보였고 마이크로소프트도 오피스 365에 적용할 수 있는 코파일럿(Copilot)을 출시했다. 메타 플랫폼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앱에 AI 기능을 추가했다.
삼성과 애플도 스마트폰에 탑재할 수 있는 AI 서비스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도 테슬라를 통해 AI 로봇 개발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다. 문제는 AI 연구개발에 어마어마한 자원이 소요된다는 사실이다. 단시간에 엄청난 양의 연산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값비싼 반도체 칩을 사용해야 한다. 엔비디아가 공급하는 고사양 그래픽칩(GPU)이 필수적이다.
전 세계의 빅테크로부터 고사양 GPU에 대한 수요가 쏟아지자 엔비디아는 환호성을 터뜨렸다. 최고의 인재를 확보해 반도체 디자인에 박차를 가했다. 엔비디아의 수주를 받아 GPU를 제조하는 대만반도체제조(TSMC) 회사도 늘어나는 매출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인공지능 열풍에 엔비디아 주가는 수직으로 상승했다. AI 컴퓨팅과 관련된 서버 공급회사나 AI 응용 기술 개발회사의 가치도 급격하게 상승했다. 향후 몇 년간은 AI가 가져올 혁신적 기술을 타고 주가는 지속적 상승을 보일 것이라 자신하는 이들이 많았다.
여기에 기름을 붓듯 트럼프 행정부는 5000억 달러를 AI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돈 냄새 잘 맡기로 유명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를 옆에 세워두고 중국의 견제를 막으려면 미국이 AI 기술을 선도하기 위한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승승장구하던 미국 기술주 시장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지는 사건이 중국에서 일어났다. 최근 2023년에 생긴 듣도 보도 못한 중국 회사가 챗GPT 성능에 맞먹는 AI 모델을 공짜로 출시했다. 딥시크(DeepSeek) 충격이었다.
딥시크는 1985년생 중국 광둥 출신으로 금융수학을 전공한 량원펑(Liang Wenfeng)이 설립했다. 수학 알고리즘을 적용해 AI 펀드를 만들어 돈을 벌기도 한 천재다. 딥시크가 월가를 강타한 것은 가성비 넘치는 모델 개발비 때문이었다.
오픈AI는 챗GPT 언어 학습에 대략 1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하지만 딥시크는 560만 달러(한화 약 80억원)를 투자했다고 했다. 오픈AI 개발에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사양 칩인 H100 GPU가 3만 달러어치 이상이 투입됐지만 딥시크는 가격이 절반가량인 저사양 칩 H800을 사용해서 비슷한 성능을 구현했다고 발표했다.
딥시크가 H800을 사용하게 된 것은 H100의 대중 수출이 막혀 있기 때문도 있다. 딥시크의 개발 인력도 100명이 약간 넘는 수준이다. 최대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수학적 알고리즘을 구현해 성능을 극대화했다. 한마디로 드론을 사용해 스텔스기를 보유한 나라와 대등한 전쟁을 치렀다고 볼 수 있다.

딥시크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지난주 딥시크는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앱으로 등극했다. 딥시크 등장으로 엔비디아 주가는 하루에만 두 자릿수 급락하는 충격을 받았다. 나스닥 지수도 3% 넘게 급락했다. 미국 기술주가 학살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시퍼렇게 미끄러졌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딥시크는 승승장구할까? 딥시크 앞에는 험난한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다. 틱톡과 같은 이유다. 중국에 기반한 회사이기 때문에 중국 정부의 데이터 제공 요구를 거부하지 못한다. 그 같은 이유로 미국 의회가 딥시크 사용을 금지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중국 내부에서는 제2, 제3의 딥시크가 나와 자웅을 겨룰 것이다. 량원펑이 실리콘 밸리로 갔다면 구글과 같은 제국을 세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업의 성장과 혁신에는 기술뿐만 아니라 잘 조직된 자본시장과 시스템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떠올릴 때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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