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 'GENIUS' 상원 통과
USDC 발행사 '서클' 주가, 상장가 대비 6배
삼성·애플 진입 시 '시너지' 나지만 어려울 것
美, 태더 배제·자국 기업 중심 발행 체제 구축
법률의 명칭은 대개 그 법안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들로 구성된다.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좋은 예다. 그 이름만 봐도 그 법의 제정 목적을 알 수 있다. 미국 의회도 마찬가지다. 법을 제정할 때 그 목적을 법률의 제목으로 밝힌다.

때로는 법률안의 이름이 길어진다. 지난 6월 17일 미 상원을 통과한 ‘미국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국가적 혁신 촉진 및 지침을 위한 법률’ 명칭도 아홉 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긴 법률 이름은 발안자나 명칭의 단어 첫머리 알파벳을 따서 부른다. 따라서 이 스테이블코인 법안도 지니어스(GENIUS)법으로 불리게 됐다.
물론 법률안 이름을 지을 때 애크로님(acronym)이라고 하는 축약 명을 고려하기도 한다. 삼성전자와 배터리 업체에 대한 보조금 지원으로 이슈화되었던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축약 명은 IRA다. 미국인에게 IRA는 개인연금계좌를 뜻하는 친숙한 단어다. 뭔가 은퇴 후 노후보장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 같은 느낌을 준다. 매달 꼬박꼬박 일정액의 연금이 나오는 소득원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친환경 인프라 법안에 IRA의 이미지를 녹여 친근감을 주려 했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와 가상화폐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한다. 은행에 달러를 가지고 있는 투자자가 가상화폐를 매수하려면 우선 가상화폐 거래소에 가서 스테이블코인을 매수한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그 가치가 현실 세계의 달러화와 1:1로 대응하도록 디자인됐다.
투자자는 1만 달러를 가상화폐 거래소에 입금해 1만 달러어치의 스테이블코인을 매수한 뒤 이를 통해 많은 알트코인을 매수할 수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대체 왜 스테이블코인 법률 이름에 천재라는 의미의 지니어스를 썼을까?
지니어스라는 이름 자체가 이 법이 얼마나 획기적인지 법 제정의 의도를 보여준다. 천재는 다소 엉뚱하지만 범인이 생각해 내지 못하는 문제의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다시 말하면 지니어스 법안은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혁신적인 해결 방안이다. 그 이미지가 통했을까? 지니어스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자마자 시장은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스테이블코인과 연관성이 있는 주식은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시장 점유율 제2위의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인 서클 인터넷 그룹(CRCL), 최대의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 우리나라의 카카오페이 같은 회사다.
서클이 발행하는 USDC(달러 코인)의 시장 점유율은 25% 안팎이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최강자는 시장 점유율 60%를 상회하는 테더(USDT, Tether)다. 그런데도 2등 회사 서클의 주가는 6월 5일 신규상장(IPO) 공모가격인 31달러의 6배가 넘는 187달러로 급등했다.
그것도 6월 23일 한 때 299달러를 찍고 조정을 보이는 상태에서 나온 주가다. 불과 보름여 만에 주가가 10배 가까이 뛴 뒤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클의 주가 급등은 당연히 스테이블코인의 향후 성장성을 반영한다.
현재 유통 중인 스테이블코인의 시가총액은 대략 2570억 달러 정도다.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의 규모가 2030년에는 1.4조 달러에서 3.7조 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5년간 적게 잡아 다섯 배, 낙관적으로는 10배 이상 커진다는 얘기다.
스테이블코인의 유용성으로 인해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우선 스테이블코인을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분산 금융 플랫폼인 디파이(DeFi)에 맡기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이자소득을 얻을 수 있다.
리스크관리가 충분하다면 은행에서 디파이로 자금이 유입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테이블코인의 지급 결제 기능이다. 은행을 통하지 않고 블록체인을 통해 다른 계정으로 신속하고 저렴하게 코인 이체가 가능하다. 국경도 쉽게 넘을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할 경우 은행의 국제결제 시스템인 스위프트(SWIFT)를 통하지 않고도 자금 이체가 가능해질 수도 있다. 특히 소액을 해외로 송금해야 하는 개인에게 스테이블코인은 매우 효율적인 대안이다. 은행 시스템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 저개발국가에 대한 송금도 가능해진다.
서클과 같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투자자에게서 달러를 받아 예치한 뒤 같은 액수의 코인을 발행해 지급한다. 수취한 달러화는 미 단기 국채에 투자해 이자수익을 얻는다. 어찌 보면 이렇게나 '땅 짚고 헤엄치는' 사업이 없다.
서클은 앉아서 달러를 수취하고 공짜나 다름없는 코인을 발행해 주면 그만이다. 달러를 많이 수취할수록 매수한 국채에서 나오는 이자 수입도 많아진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10배 커지면 수입도, 순익도 10배 커지는 구조다.
이렇게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가지는 이점이 크다 보니 너도나도 이 시장에 뛰어들고자 한다. 무엇보다 스마트폰 개발업체인 삼성이나 애플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스테이블코인은 대개 스마트폰 앱을 통해 전송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 설치된 은행 앱에서 현금을 이체해 스테이블코인을 매수하고 이를 다시 다른 폰으로 신속하게 이체하면 된다. 한술 더 떠 이체가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폰으로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매수할 수도 있다. 앱 개발을 통해 활용 범위는 크게 넓혀질 수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삼성과 애플 같은 빅테크에게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의 길은 거의 막혀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규제하려는 정부와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의도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이 금융의 기능을 담당하므로 규제는 당연하다. 문제는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다.
지니어스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인가를 거의 금융기관에 준하거나 그보다 더 엄격한 수준으로 강화했다. 은행의 자회사이거나 인가받은 트러스트 은행 또는 자금이체업체만 스테이블코인 발행 인가를 신청할 수 있다.
연방 재무부 산하의 통화감독청(OCC)이나 각 주정부의 은행감독국이 인가 업무를 담당하게 되는데 금융 소비자 보호를 위해 깐깐한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편 규제 강화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 성장성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크다.
현재로서는 미국 정치권은 홍콩 출신의 테더를 배제하고 자국 기업인 서클과 페이팔 등 소수 기업을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 체제를 구축하려는 듯하다. 하원에서의 추가 법안 검토 과정이 남았지만 달러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의 통과는 기정사실이다. 법안의 영향력이 폭발적인 만큼 귀추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francis.kim@furman.edu
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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