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취업비자 못 받아 미국 떠나는 유학생들
트럼프 측근 머스크 등 외국 출신이지만
정치 본향 MAGA는 외국인 채용 부정적
트럼프는 둘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미국에서는 해마다 대략 200만명의 학생이 대학을 졸업해 학사학위를 받는다.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는 사람도 100만명이 넘어간다. 그 가운데 25만명의 학위 수여자는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다. 그 대부분은 미국에 정착해 좋은 직장을 갖기를 희망한다.

일론 머스크와 함께 정부개혁부(DOGE) 공동 수장을 맡은 비벡 라마스와미는 인도계 미국인이다. /AP=연합뉴스
일론 머스크와 함께 정부개혁부(DOGE) 공동 수장을 맡은 비벡 라마스와미는 인도계 미국인이다. /AP=연합뉴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학부생의 4할 이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짐을 싸 미국을 떠난다. 이들이 미국에 머무르지 못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비자 문제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직장을 얻어 일을 하려면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 비자를 획득해야 한다.

취업비자는 회사가 보증해야 발급된다. 회사가 정부에 비자를 신청하고 영주권 신청도 지원한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행정적, 금전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회사는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를 채용하려 했지만 여의치 못해 외국인을 채용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회사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우수한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를 확보할 수 있다면 굳이 외국인 학생을 채용하려 들지 않는다.

지난해 5월 필자는 학생들을 이끌고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다운타운에 있는 금융가를 방문했다. 샬럿은 미국 자산규모 2위인 뱅크오브아메리카, 4대 은행인 웰스파고, 트루이스트, 베어링스 등 유수의 금융기관 본점이 자리 잡고 있어 뉴욕에 이어 미국 제2의 금융도시로 불린다. 은행의 입사 지원 설명 과정에서 이곳 은행 인사 담당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사뭇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외국에서 온 학생이 대학을 졸업해 그 은행에 입사하면 취업비자를 지원하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는 미국에서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하여 졸업한 대부분의 외국 출신 학생들이 자신들이 꿈에 그리던 직장인 미국 금융회사에 취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수학을 비롯한 수리적 사고에 대한 부담이 커 미국 학생이 꺼린다는 이공계는 어떨까? 놀랍게도 이공계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매년 H1-B 비자 신규 발급에는 상한선인 쿼터가 정해져 있다. 취업비자의 연간 상한선은 8만5000개다. 학부 졸업자에게 6만5000개의 쿼터가 주어지고 석사 이상 졸업자에게 2만 개가 주어진다.

문제는 쿼터가 취업비자 신청 숫자에 비하여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2024회계연도의 취업비자 신청 건수는 거의 80만에 달한다. 경쟁률이 9 대 1이 넘는다. 미국 정부는 추첨 방식을 통해 H1-B 비자 합격자를 골라낸다.

취업비자를 받아도 끝이 아니다. 3년이 지나면 갱신해야 하고 장기간 취업을 유지하려면 갱신 기간 내 영주권을 신청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물론 영주권 승인 절차는 취업비자 못지않게 까다롭고 비용도 더 든다.

미국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매그니피센트7(M7) 기업 소속 다수 근로자가 이민자다. /AP=연합뉴스
미국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매그니피센트7(M7) 기업 소속 다수 근로자가 이민자다. /AP=연합뉴스

취업비자의 쿼터는 구직자만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팬데믹 이후 인력난에 시달려온 테크기업은 능력 있는 인재를 조기에 확보하려 하지만 비자 발급 제한으로 번번이 좌절한다. 비자를 받아 인재를 교육해 놓아도 비자 갱신에 실패해 떠나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작년 한 해 취업비자로 아마존에 취업하고 있는 직원 숫자는 9000명이 넘었다. 구글에도 5000명 이상의 직원이 취업비자 소지자다.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에도 수천 명의 외국인이 취업비자에 의존해 직장을 다니고 있다.

최근 트럼프의 측근들이 이런 외국인 취업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섰다. 2007년 인도에서 미국 실리콘밸리로 옮겨 성공한 벤처기업가 스리람 크리슈난(Sriram Krishnan)이 대표적이다. 트럼프는 크리슈난을 백악관 내 인공지능(AI) 정책보좌관으로 선임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프로그램 개발자로 일을 시작한 크리슈난은 승승장구하며 성공의 사다리를 올랐다. 2016년에는 미국 시민권도 취득했다. 영주권을 취득하고 몇 년 지난 후였다. 영주권 승인에 국가별 한도가 있어 인도 출신으로서 불이익을 받았을 것이다. 크리슈난은 영주권 승인 시 국가별 한도를 없애야 한다고 X(구 트위터)에 올렸다.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등장한 일론 머스크도 가세했다. 자신도 H1-B 비자로 미국에 와서 사업을 할 수 있었다면서 취업비자를 대폭 늘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머스크와 함께 정부개혁부(DOGE) 공동 수장을 맡은 인도계 정치인인 비벡 라마스와미(Vivek Ramaswamy)도 거들고 나섰다. 이들의 입장은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기업을 운영하면서 인재 영입에 애로를 겪은 바 있었던 테크기업 CEO로서 당연한 견해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정치적 본향이라고 할 수 있는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진영의 입장은 다르다. 이들 중 상당수가 해외 출신으로 트럼프를 사로잡은 머스크 등을 애초부터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머스크가 원조 마가 진영의 가장 중요한 아젠다인 이민 문제를 건드리자 그들은 격앙했다.

마가 원류인 반이민 파는 H1-B 비자가 법적 기반이 취약한 외국인을 저임금으로 고용하는 수단으로 남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반작용으로 미국인에게 가야 할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다수의 기업이 영주권 신청 지원을 미끼로 외국인 근로자를 저임금으로 착취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정치적 본향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는 이민자 채용 확대에 부정적이다. /어크로스=연합뉴스
트럼프의 정치적 본향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는 이민자 채용 확대에 부정적이다. /어크로스=연합뉴스

하지만 머스크나 크리슈난의 예에서 보듯이 성공한 빅테크 기업의 상당수 경영자가 H1-B 비자로 미국에 와서 사업을 성공시키고 미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트럼프는 일단 원론적으로 H1-B 비자를 지지한다고만 말하고 있다. 향후 트럼프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만약 트럼프가 반이민 파 마가의 손을 들어줄 경우 미국에서 취업하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그가 머스크의 입장에 치우칠 경우 미국 테크기업에 취업하기가 더 수월해져 외국 우수 인력의 고국 이탈이 더 심해질 것이다. 미국으로의 자본과 생산시설의 이탈에 더해 인재마저 대거 유출될 수 있다. 트럼프의 이민정책을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 응용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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