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국제무역법원, IEEPA 근거 관세 부과 제동
관세 부과 일시 복원···대법원 판단 남아
트럼프, IEEPA 外 무역법·안보조항 카드
5월 28일 기준 현재 진행 중인 관세전쟁에 예상하지 못했던 뉴스가 터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대표부가 세계 수십 개국과 관세 협상을 진행 중인 가운데 미 연방법원의 하나인 국제무역법원이 거의 모든 국가를 상대로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법원의 이 판결로 트럼프 정부의 야심 찬 관세부과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중지됐다. 트럼프가 모든 국가에 부과했던 10% 기본 관세뿐만 아니라 취임하자마자 중국에 10%, 멕시코와 캐나다에 25%씩 붙였던 펜타닐 관세도 부과가 중지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4월 2일을 제2의 독립기념일이라 부르며 각국에 부과했다가 시행을 90일 유예했던 상호관세도 마찬가지 신세가 됐다. 다음 날 시장은 이 소식을 반겼다. S&P500 주가지수는 1% 넘게 오르며 장을 시작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격분했다.
법무부는 국제무역법원의 판결에 대하여 즉각 항소했다. 워싱턴 소재의 항소법원은 법원의 판결 효력을 일단 중지시켰다. 최종 판단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항소법원의 이 결정으로 하루 만에 트럼프의 관세가 기사회생했다.
시장의 반응은 예상보다 차분했다. 항소법원의 결정이 나온 후 주가지수는 밀렸지만 폭락세는 면했다. 지수가 0.5% 하락하는 약보합 선에서 마감했다. 시장의 반응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항소법원의 결정은 백악관에 희소식이지만 관세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것을 시사했다.
뉴욕에 소재한 와인 수입업체인 V.O.S. 셀렉션스(Selections)와 다른 네 개의 소규모 업체가 원고가 되어 연방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파장은 만만치 않다. 과거 레이건(보수), 오바마(진보), 트럼프(보수) 전 대통령이 임명한 세 명의 연방판사로 구성된 국제무역법원의 52페이지에 이르는 판결문의 많은 구절이 의미심장하기 때문이다.
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기본관세와 상호관세 그리고 펜타닐 관세를 부과하기 위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 1977년 제정)을 인용한 것은 이 법이 대통령에게 부과한 권한의 범위를 넘어선다고 판결했다.
이 법은 비일상적이고 비정상적인 국가안보, 외교, 경제 등 해외로부터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대통령에게 국제통상을 규제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한다.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발생해 미국 대사관 직원이 인질로 붙잡히자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이 이란의 재산을 동결하기 위해 처음 발동했다. 이란에 대한 제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 법에 의거해 미국 정부는 자국에 대한 외국 정부의 적대적 행위나 테러 조직, 사이버 위협 등에 대응하여 자산을 동결하거나 금융거래를 규제하고 수출입 등을 규제할 수 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러시아에 대한 광범한 제재를 부과한 것도 IEEPA에 의한 것이었다. 북핵 개발을 이유로 북한을 제재한 것도 마찬가지다.
또한 러시아에 대한 우회 수출을 이유로 중국 업체들을 제재하고 안보 위협을 근거로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ByteDance)와의 거래를 금지한 것도 IEEPA에 의한 것이었다. 이 법에 근거해 69건의 국가 비상사태가 선언되었고 아직도 39건이 살아 있다.
이와 같이 IEEPA는 미국 정부가 외국 정부와 테러 조직을 상대하기 위해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이 법을 근거로 관세까지 부과할 수 있는가가 쟁점이다. 무엇보다 다수의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트럼프식 관세가 합법적인지 여부가 문제였다.
연방법원은 의회가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의 무제한적 권한을 부여했다면 위헌이라고 봤다. 관세를 부과한다 해도 그 시기와 범위는 의회의 제한 아래에 있다는 얘기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적자를 비상한 국가 위협으로 든 것도 적당치 않다고 판단했다.
무역적자는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1970년대 이래 50여 년간 이어지는 고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하여 트럼프 정부는 과거 5년간 무역적자가 거의 세 배나 더 급증해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른 것은 분명히 국가적 비상사태라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과거 정부에서도 모든 나라를 상대로 관세를 부과한 적이 있었을까?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1971년 미국의 무역수지가 100여 년 만에 적자로 전환하자 달러의 '금 불태환'을 선언하고 10%의 관세 부과를 선언했다.
닉슨 행정부가 법률적 근거로 든 것은 적성국가무역법(Trading With the Enemy Act, 1971년 제정)이었다. 하지만 닉슨은 관세를 한시적으로 부과한다고 못 박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달러화 평가절하를 위한 합의를 도출하려는 협상용이기도 했다. 몇 달 후 닉슨은 이 관세를 철폐했다.
연방 항소법원은 소송 절차를 빠르게 진행할 태세다. 많은 국가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고 트럼프 정부도 법원에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송은 결국 연방 대법원에 가서야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 관건은 트럼프가 임명한 판사가 적지 않은 보수적 대법원이 트럼프 정부에 유리한 판결을 내릴지 여부다.
과거 트럼프에 유리한 판결을 내린 적이 있는 연방 대법원이지만 이번에도 그런 판단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트럼프의 최측근조차도 관세 부과에는 매우 부정적이다. 트럼프의 측근을 제외한 전통적 보수 진영도 마찬가지로 트럼프가 관세 부과를 단념하기를 바라고 있다.
만약 연방 법원이 최종적으로 IEEPA에 근거한 관세 부과가 위헌적이라 판단한다면 트럼프가 관세정책을 전면적으로 변경할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IEEPA와 같이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맘대로 관세율을 정하는 전가의 보도와 같은 법률은 없지만 트럼프가 동원할 수 있는 다른 법률도 수두룩하다.
실제 트럼프는 2018년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이며 상당수의 품목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때 무역법(Trade Act, 1974년 제정) 제301조(Section 301)를 근거로 했다. 이 법은 불공정 무역관행을 일삼는 국가를 타깃으로 하여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했다.
다만, 대통령은 무역대표부가 상당 기간 불공정 행위를 조사해 정당한 근거가 있는지 판단하게 해야 한다. 1988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무역 감사 및 경쟁력법(Omnibus Trade and Competitiveness Act)을 제정해 무역법 301조의 시행 범위를 확대했다.
슈퍼 301조라 불리는 이 규정은 정부가 악성 무역 장벽을 쌓아 적자를 심화시키는 나라를 콕 집어 우선협상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게 했다. 이 규정의 적용 대상이 되면 미 무역대표부는 더욱 적극적으로 조사를 시행하고 감시해 강력한 관세부과나 보복 조처를 할 수 있게 된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이 슈퍼 301조로 인해 100% 관세를 얻어맞고 전자와 반도체 산업에서 퇴출당하다시피 했다. 현재는 중국으로 그 대상이 옮겨왔다 볼 수 있다. 또한 무역확장법(Trade Expansion Act, 1962년 제정) 제232조(Section 232)도 있다.
수입 확대가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이 규정에 의해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을 제한할 수 있다. 2018년 트럼프가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한 근거 조항이다. 현재는 자동차까지 관세 범위가 확대되었고 모두 25%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또한 무역법 제201조(Section 201)도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부과를 허용한다. 세이프가드라 불리는 이 조항은 중국산 태양광 패널 수입 등에 대한 관세부과의 근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트럼프는 1930년에 통과된 악명 높은 스무트-홀리법 제338조도 사용할 수 있다.
이 법은 어떤 국가가 미국 제품을 차별한다고 판단되면 최대 50%까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 IEEPA가 무력화되면 가장 강력한 대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동원할 법적 근거는 무한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법적 분쟁이 아니라 경제의 피로도와 여론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francis.kim@furman.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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