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가자지구 얻어 휴양도시 짓겠다" 선언
중동 지지 얻으려 충격요법? 사위 영향?
네타냐후 군인정신-연설에 트럼프 매료
김정은·시진핑 추켜세우기도 같은 맥락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이 가자지구를 취득하겠다고 말해 전 세계를 경악게 했다. 트럼프 'take over'라는 어구를 썼는데 이는 회사나 땅을 차지해 지배권을 행사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미국이 가자지구를 실질적으로 통제할 것이라 말한 것이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트럼프다운 깜짝 발상이었다. 미국은 물론이고 대다수 나라에서 트럼프의 진짜 노림수가 무엇인지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트럼프 측근에게 물어봐야 소용없다. 트럼프 자신을 제외하고 백악관이나 국무부의 어느 측근도 발언 내용을 미리 통보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발언이 나오기 이전에도 의아한 점은 있었다. 트럼프가 내로라하는 강대국 지도자를 제쳐놓고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취임 후 외국 지도자로서 최초로 초청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중동 문제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국제 문제 어젠다임을 보여줬다.
또한 트럼프는 네타냐후 총리와 전 이스라엘 국방장관 등을 반인도적 범죄 행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대한 제재도 발표했다. ICC는 가자전쟁 중에 내린 민간인 거주지역에 대한 공격과 아사 위험에 처한 인명 구조에 대한 태만 등을 이유로 네타냐후를 기소했다.
네타냐후는 부패 혐의로 자국인 이스라엘에서도 형사 재판을 받고 있는 극우 민족주의자다. 트럼프는 왜 이런 인물을 감싸고 있을까? 그것은 트럼프 특유의 스트롱맨 선호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네타냐후의 인생행로를 보면 그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네타냐후는 1949년 생으로 올해 75세다. 트럼프의 친구가 되기에 적당한 나이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실질적 수도인 텔아비브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성장 과정에서 유태계 민족주의인 시오니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네타냐후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고등학교에 다녔다는 사실이다. 역사학자인 아버지가 두 차례 수년간 미국 대학에서 강의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이스라엘로 돌아가 5년간 군복무를 했다. 특수부대의 일원으로 각종 고난도 작전에 투입돼 임무를 수행하다 심각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머리도 비상해 1972년에는 최고의 공대인 MIT에 입학해 건축학을 전공했다. 그는 동시에 인근에 있는 하버드 대학에서도 강의를 들었는데 3년이 채 되지 않아 대학을 졸업했다. 그 이후에도 공부를 지속해 MIT 경영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네타냐후는 뛰어난 영어 실력을 길렀고 실제 그의 연설이 미국 정치인보다 훨씬 낫다고 평가하는 전문가도 있다. 네타냐후의 군인적 강성 기질과 단호함이 트럼프의 성향과 잘 어울렸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거침없이 영어로 대화하면서 트럼프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이는 명문가에 태어나 명문대를 졸업하지는 못했지만 캘리포니아에 수시로 건너가 영어 실력을 다져 트럼프와 엄청난 친분을 쌓았던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와 비슷한 경우다. 성격이 급하고 마초적 기질이 다분한 트럼프는 영어가 잘 통하고 스트롱맨적 성향이 짙은 지도자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국제적으로 매도되고 있는 김정은이나 러시아의 푸틴, 중국 시진핑을 우대하는 것도 비슷한 경우라 볼 수 있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약자에 대한 배려나 인도적 지원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인권이 취약한 북한은 말할 것도 없지만 트럼프도 예외가 아니다.
그에게 인도적 고려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간 가자 전쟁으로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은 현지인을 내쫓아 버리고 그 자리에 휴양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같은 사실은 국제형사재판소를 제재한 사실에서도 볼 수 있다.
ICC는 전쟁범죄 등으로 인한 인권침해, 인종청소 등에 대처하기 위하여 1998년 채택된 UN 외교회의 로마규정에 근거해 탄생했다. 현재 125개국이 ICC에 가입해 있다. 한국도 가맹국으로서 2009년 송상현 전 서울대 교수가 소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두 명의 ICC 재판관을 배출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미국을 비롯한 중국, 인도, 러시아 등 강대국은 ICC에 가입하지 않았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작전을 펼치다 보니 ICC에 제소당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나마 민주당 정권은 어느 정도 ICC에 우호적이었지만 공화당 정권은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한술 더 떠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인 2020년 ICC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범죄 행위를 조사하려 하자 ICC에 대한 제재를 선언했다. 트럼프를 이은 조 바이든은 제재를 취소했지만 최근 네타냐후를 만난 트럼프가 다시 제재를 부여했다.

트럼프의 가자지구 접수 발언에 대하여 이스라엘 주변국은 일제히 반발했다. 현실 가능성도 없다고 일축했다. 트럼프가 아마도 충격 요법으로 중동 국가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전략을 쓰려한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미국이 접수하겠다고 하면 사우디 등이 나서서 평화유지군을 조성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을 멈출 것이라는 계산이다.
또한 중동 지역 상황에 관심이 많은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자신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바람을 넣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가 영어가 능숙하고 마초 기질이 강한 네타냐후 손을 적극 들어줬다는 사실이다. 사면초가에 몰린 한국 외교가 유념해 볼 대목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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