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엽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인터뷰
상속세 완화로 자원 효율적 이전 촉진해야
기업 지배구조 결정 방식 '자율'이 곧 '효율'
출자와 사전 규제 지금도 실효성 있나 의문
시장 중심적 접근으로 디스카운트 해소해야

지난해 글로벌 증시는 활황을 누렸지만 한국 증시는 소외됐다. 투자자들의 실망감은 해외로 향하는 자금 흐름으로 이어졌고 국내 시장은 투자 심리 위축과 자금 유출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밸류업 정책을 통해 한국 증시의 가치를 높이고자 했지만 단기적인 주가 부양책 위주라는 한계가 지적된다. 기업들도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 등 주주 친화적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장기적인 성장을 이끌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기업이 자유롭게 혁신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지만 주주가치 극대화와 함께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반영하는 밸류업(Value-up) 정책이 부재한 실정이다. 이제는 단기 주가 부양책이 아닌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전략이 필요하다. 여성경제신문이 [2025 한국 증시 리부트: 밸류업] 금융 포럼에 앞서 각계의 전문가를 만나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편집자 주]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의 등장과 함께 글로벌 자원 안보가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국내 1위 비철금속 기업 고려아연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가업(家業) 방어에 나선 최윤범 회장이 자사주 공개매수를 시도한 후 상법상 비모자회사 간 주식 상호 보유를 통한 2차 방어에 성공했으나 여전히 과반 주주는 영풍과 MBK파트너스다.

기관투자자와 기존 경영진 간의 대립의 첫 포성을 울린 이번 사건과 유사한 경영권 분쟁은 앞으론 언제 어디서든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상장기업 4400여 개의 시가총액 98조 달러 가운데 44%를 보유한 기관투자자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영권 분쟁이나 주주행동주의는 기업가치 제고와 거리가 먼 이벤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기관투자자 등 금융자본의 지배력 강화에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다만 밸류업 관점에선 고려아연과 MBK 양측 모두에게 수익성 실현이란 지상 과제가 떨어진 셈이다.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나서 양측 타협의 길을 찾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경제신문과 K-밸류업 릴레이 인터뷰에서 "기업이 자율적으로 지배구조를 결정하고 투자 환경을 최적화할 수 있도록 정책적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특히 경영권 시장 활성화를 통해 기업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헌 기자
지인엽 동국대 교수는 기업이 지배구조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투자 환경을 최적화할 수 있도록 정책적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이상헌 기자

—교수님 연구에 따르면 상속세수가 1% 감소할 때마다 1인당 GDP는 장기적으로 0.06% 증가할 수 있다. 상속세 완화는 경제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세대 간 자원(부)의 효율적인 이전이 소비 투자의 활성화 및 경제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행 상속제도는 불로소득 억제, 소득 균형 등의 기본 취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행 시 소득 균형 효과는 미미한 반면 자원의 효율적인 이전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업 승계의 어려움 등이 그 예다. 과거 초기자본주의 시대에는 상속세의 긍정적인 역할이 컸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효과가 사라지고 있다. 1960년대부터 2022년까지의 OECD 국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상속세 강화는 생산 위축으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상속세수의 감소가 장기적으로 기업가치 및 투자 활성화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상속세 완화가 상속세 납부 및 조세 회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배구조 남용을 예방할 수 있다면 기업 가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증 분석 결과 상속세는 기업의 연속성과 자원 이전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기업가치와 경제 성장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에 맡겨 놓으면 자본이 효율적으로 재구성돼 생산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상속세는 이런 흐름을 끊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 도입을 추진하고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다. 반면 자본시장법 내 주주 보호 장치를 만들려는 정부에서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왜 이런 논란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는가.

"이사회 충실 의무는 회사로부터 도둑질하지 말라는 의미로, 이사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이 충돌할 때 회사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는 주주의 다양성 때문에 적용하기 어렵다. 이를 도입하기 전 '주주'에 대한 구체성과 '의무'에 대한 구체성을 명확히 하는 것이 먼저다.

개정안이 도입된다면 소송이 남발돼 경영의 불확실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경영권 시장 활성화 측면에서 보자면 긍정적인 변화겠지만 한국 시장의 성숙도와 참여자 수준을 고려하면 토양을 먼저 완성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 학자들조차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한국 기업이 서구 행동주의 펀드의 먹잇감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충실 의무 확대만이 주주를 보호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 기업분할 시 주식교환 청구권 제도 등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

—현재 기업지배구조 규제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보다 실효성 있는 규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접근을 통한 개선이 필요한가.

"각 기업의 지배구조는 기업의 특성에 맞는 효율적인 방안을 택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일부 영역에서 시장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한다면 최소한의 규제는 필요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규제 준수 비용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본다. 공정거래법상 출자 규제, 사전 규제 등은 기업의 투명성이 낮았던 과거에는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분명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금산분리 역시 재검토해야 할 규제 중 하나다. 금산분리는 건전성과 효율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현재는 금융과 산업의 결합이 중요해지는 '빅 블러 시대'다. '3단계 출자 제한'과 같이 선진국에 없는 규제도 재고해야 한다."

/한국경제인협회
지난해 11월 20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규제의 부당성과 타 법률의 공정거래법 원용의 문제점' 세미나에 참석한 지인엽 교수(왼쪽 세 번째). 지 교수는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집단 규제가 강화할수록 해당 기업들의 시가총액 증가율이 낮아진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경제인협회

—공정거래법에 따른 대기업 규제가 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개선 방향은 무엇인가.

"기업집단 지정은 기업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ROE, ROA 등 회계상 지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기업이 규제를 준수하지 않고 회피할 경우 피터팬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투자를 줄임으로써 유보이익은 증가하지만 조세 문제로 배당이 늘어나지는 않는 것을 말한다."

※ 용어 해설 : 자기자본이익률(ROE)총자산이익률(ROA)
먼저 ROE는 주식 시장에서 통용되는 지표다. '당기순이익/평균자기자본*100'이라는 산식으로 구해져 자기자본을 활용해 얼마나 수익을 내는지 가늠하는 수치다. 분모인 자기자본의 주요 구성항목은 자본금과 자본잉여금, 이익잉여금, 자사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자사주 매입은 마이너스로 계상된다. 다만 자사주를 매입·소각해 자기자본을 줄여 ROE를 높이려는 유혹으로 인해 기업의 장기 성장과는 거리가 먼 의사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있다.
ROA는 기업이 보유한 총자산을 활용해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ROA는 일반적으로 '순이익÷총자산*100'으로 계산되며 이 값이 클수록 자산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수익을 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은행이나 보험사 같은 금융업은 자산 규모가 크기 때문에 ROA 수치가 낮아도 정상적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ROA는 기업의 업종 및 자산 구조를 고려해 해석해야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변화를 꾀할 때 고려해야 할 중요 사항은 무엇인가.

"먼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전적으로 지배구조에만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영자의 성과 보수 구조와 경제 산업구조 등도 주요한 원인이다. 미국의 경우 S&P 100대 기업 임원의 총보수에서 주식 기반 보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이다. 하지만 이를 도입하고 있는 한국기업은 희소하다. 이를 통해 기업 임원이 디스카운트 현상을 해결할 유인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산업구조 체질 개선도 필요하다. 미국은 GDP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5%이며 그 중 금융업이 20%다. 반면 한국은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로 특정 산업에 치중하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소액주주 보호가 디스카운트 완화에 기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주주 다수결주의가 기본 원칙인 이상 불만이 있는 주주는 주식을 팔고 나가는 것이 시장의 원리인 것은 맞다. 다만 소액주주 보호 측면에서 한국 주식시장은 분명히 개선돼야 할 부분이 있다. 따라서 자본시장법을 통해 소액주주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인엽 교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경영자의 성과 보수 구조와 산업구조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상헌 기자
지인엽 교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경영자의 성과 보수 구조와 산업구조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상헌 기자

—친기업 측면에서 밸류업 묘책은 무엇이 있는가.

"시장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지배구조와 직원 성과 보상 체계를 결정하고 투자 환경을 최적화할 수 있도록 정책적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경영권 시장 활성화를 통해 기업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행동주의 펀드와 경영권 시장이 활발히 작동하면서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효율적인 자본 배분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도 이와 같은 방향으로 정책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한국의 유가증권지수(KOSPI)는 2500수준이다. 지금과 기업가치와 경쟁력이 동일하다고 가정할 때 법적‧정책적 측면이 지금까지 말씀하신 방향으로 구비된다면 해당 지수는 어느 수준이 정상이라고 보는가.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인 추정을 해야 의미 있는 답변을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약 삼성전자가 미국 거래소에 상장했다면 주가가 지금보다 높을까, 낮을까? 당연히 훨씬 높을 것이다. 이는 상장사 주가가 현재 대비 25%만 높아진다고 해도 '코스피 3000'은 넘어설 수 있다는 뜻도 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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