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희 대신경제연구소 센터장 인터뷰
韓기업 환경에 맞는 맞춤형 정책 필요
개별 기업이 자발적인 노력 펼쳐야 성공
이사회내 주주소통 전담 사외이사도 고려
지배구조 개선·투자자와 지속 소통해야

지난해 글로벌 증시는 활황을 누렸지만 한국 증시는 소외됐다. 투자자들의 실망감은 해외로 향하는 자금 흐름으로 이어졌고 국내 시장은 투자 심리 위축과 자금 유출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밸류업 정책을 통해 한국 증시의 가치를 높이고자 했지만 단기적인 주가 부양책 위주라는 한계가 지적된다. 기업들도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 등 주주 친화적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장기적인 성장을 이끌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기업이 자유롭게 혁신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지만 주주가치 극대화와 함께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반영하는 밸류업(Value-up) 정책이 부재한 실정이다. 이제는 단기 주가 부양책이 아닌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전략이 필요하다. 여성경제신문이 [2025 한국 증시 리부트: 밸류업] 금융포럼에 앞서 각계의 전문가를 만나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편집자 주]

밸류업 프로그램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개별 기업의 자발적인 가치제고 노력과 함께 정부도 기업 구조에 알맞는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여의도 증권가. /연합뉴스
밸류업 프로그램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개별 기업의 자발적인 가치제고 노력과 함께 정부도 기업 구조에 알맞는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여의도 증권가. /연합뉴스

밸류업 정책과 관련해 금융업종을 중심으로 일부 기업들은 적극적인 반면 여전히 많은 기업은 참여를 주저하고 있다. 밸류업 정책이 단기적인 주가 부양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국내 증시 활성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재계에선 주주환원율을 높이면 기업가치가 올라간다는 주장에 기업 실적과 무관한 현금 유출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이 많다. 그러나 애널리스트 출신의 안상희 대신경제연구소 센터장은 "주주환원 공시 효과가 없지 않다"고 밝혔다. 개별 기업의 자발적인 가치제고 노력과 함께 정부도 규제 일변도가 아닌 기업 및 산업구조 맞춤형 정책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밸류업 프로그램을 실무에 접목한 대신금융그룹은 기업 밸류업 및 ESG 정책 백화점으로 불린다. 여성경제신문이 안 센터장을 만나 밸류업 정책이 국내 증시 활성화로 이어지려면 어떤 개선이 필요할지, 기업 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정책이 설계돼야 할지 의견을 물었다.

안상희 대신경제연구소 센터장이 지난 1월 16일 여성경제신문과 만나 국내 증시 저평가의 원인과 해결책을 진단했다. /서은정 기자
안상희 대신경제연구소 센터장이 지난 1월 16일 여성경제신문과 만나 국내 증시 저평가의 원인과 해결책을 진단했다. /서은정 기자

—대신경제연구소가 국내에서 선제적으로 도입한 밸류업 프로그램이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그동안 추진한 밸류업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과 현재까지의 상황에 대해 듣고싶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지난해서야 도입된 개념처럼 보이지만 사실 국내 상장 기업들은 이미 일부 IR(Investor Relations) 자료에서 주주 환원 정책 등을 언급해 왔다. 다만 기존에는 이를 명확한 정책으로 수립하고 외부에 공개하는 과정이 부족했던 것이 그 차이다.

실제로 기업들은 현금 배당, 자기주식 매입·소각 등 주주 환원 정책을 내부적으로 운영해왔었다. 하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정책화하고 로드맵을 수립해 공시하지는 않고 내부적으로 갖고 있었다.

대신경제연구소는 현재 4대 금융지주사 중 한 곳을 포함해 업종별 주요 기업들이 밸류업 프로그램 공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특히 경영권 이슈가 있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대표적인 대기업 10여 곳을 포함해 다양한 기업들의 밸류업 프로그램을 수행해 왔고 이를 통해 국내 기업들의 주주 친화적인 경영 문화 정착에 기여하고 있다."

—실제로 밸류업 공시 참여 기업들의 주가가 공시 이후 업종 지수와 코스피 지수를 초과하는 성과를 보였다는 구체적 근거가 있는지.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은 주주 환원이다. 국내 상장 기업들의 주주 환원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만큼 기업들이 기존보다 적극적인 배당 정책과 자사주 매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 투자자들의 기대 심리를 자극했다고 본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이후 배당일이 다가오면서 주주 환원 정책을 구체적으로 공시한 기업들의 주가 반응이 더욱 뚜렷했다. 본 공시를 통해 기업들이 일정 기간 내 현금 배당을 몇 % 이상으로 하겠다거나 자사주를 어느 규모로 매입하겠다는 계획을 명확히 제시하면 시장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반면 예비 공시 단계에서 '향후 일정 시점에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기업들의 경우 주가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메리츠금융지주를 비롯한 금융지주사들을 들 수 있다. 주주 환원 정책을 빠르게 확대하면서 주가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기업이 보다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할수록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경향이 뚜렷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높은 지분율과 소유구조의 특성상 금융지주사들은 적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주요 금융지주사들의 외국인 지분율은 30~40%에 달한다. /각 사
외국인 투자자의 높은 지분율과 소유구조의 특성상 금융지주사들은 적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주요 금융지주사들의 외국인 지분율은 30~40%에 달한다. /각 사

—밸류업 공시에 참여한 기업 중 금융업종 비중이 가장 높다. 금융업종의 적극적인 참여 배경은 무엇이라 보는지. 다른 업종으로의 확산을 위해 필요한 유인책은 무엇인지.

"국내 상장 기업들의 평균 PBR이 작년 11월 말 기준 1.1배 수준이었다. 하지만 금융업종은 0.3~0.35배 수준으로 크게 낮았다. 이는 현 주가 기준으로 기업이 파산되더라도 주주들에게 충분한 가치가 환원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금융업종의 낮은 PBR은 주주 환원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PBR은 PER에 영향을 받는데 PER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가 주주 환원이다. 금융회사들이 낮은 PBR이 구성돼 있었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는 방법으로 주주 현금 배당 자기주식 매입 소각 같은 주주 환원을 많이 한 것 같다.

※ 용어해설 :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주가수익비율(PER)

기업의 시장가치와 장부가치를 비교하는 지표인 PBR(Price to Book-value Ratio)은 '주가/주당순자산가치(BPS)'로 구해진다. 주식시장에선 기업의 저평가 또는 고평가 여부를 판단하는 척도로 활용되는데 PBR이 1이면 시장가치와 장부가치가 동일하다는 의미이고 1보다 낮으면 기업이 시장에서 장부가치 이하로 평가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PER은 주가가 1주당 수익의 몇 배 정도 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시가총액/당기순이익'이란 산식으로 구해져 PBR과 동조 현상을 보인다. 주식가치는 본질적으로 해당 기업이 얼마나 많은 당기순익을 내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 때문에 만들어놓은 지표인데 제조업이 정보통신기술업종보다 낮게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금융지주사들은 외국인 투자자의 높은 지분율과 소유구조의 특성상 적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KB·하나·우리금융 등 주요 금융지주사들의 외국인 지분율이 30~40%에 달한다. 이 회사들의 투자자들은 배당 확대와 같은 주주 환원 정책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기에 기업들도 이에 대응한 경향이 크다.

금융지주사와 달리 국내 주요 산업군에는 오너(Owner) 기업이 많아 주주 환원 정책을 확대할 요인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들 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정책적 인센티브나 혜택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 초기와 비교해 공시 건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가 있다. 미공시 기업들이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면 어떤 방향이 효과적인가.

"현재 밸류업 공시에 참여한 기업들은 주로 주주 환원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공시에 소극적인 기업들은 오너가 높은 지분율을 보유한 기업이 많아 주주 환원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도입됐다. 그렇지만 국내 기업 환경과 차이가 있어 공시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금융지주사와 마찬가지로 외국인 및 기관투자자의 지분율이 높아 주주들의 요구에 즉각 반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한국의 미공시 기업들은 대부분 오너 기업으로 구성돼 있어 주주 환원을 굳이 해낼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경우도 많다.

기업이 장기적으로 수익을 확대하는 방안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목표와 실행 계획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이 발전한다면 공시에 미온적인 기업들도 자연스럽게 참여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또 단순히 밸류업 보고서 제출을 강조하기보단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어떤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할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안 센터장은 "한국 증시 저평가 문제 해결을 위해 공시 강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기업 변화를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본인 제공
안 센터장은 "한국 증시 저평가 문제 해결을 위해 공시 강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기업 변화를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본인 제공

—국내 증시의 저평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법적·제도적 개선 방안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국내 기업의 소유 구조가 일본이나 해외 기업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우리 기업 환경에 맞는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 최근 상법 개정안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법으로 강제하기 전에 공시를 강화해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과거에도 국내 기업들은 외부 압력에 의해 제도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충분한 준비 없이 도입되면서 문제점이 발생했다. IMF 외환위기 때 사외이사 제도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감사위원회 제도가 강제 도입됐지만 기업들이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아 현재까지도 여전히 논란이 많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된 이유 중 하나는 기업의 소유 구조 차이에서 비롯된다. 국내 오너 기업들의 지분율이 30~40%에 달해 주가 상승이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니다. 주가가 오를 경우 오너들은 승계 부담이 커지면서 주주 환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는 PBR이 1배 이하인 기업이 드물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저평가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에 일부에서는 밸류업 참여 기업에 세제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공시 강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기업들이) 변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 정부의 밸류업 정책이 주주가치 극대화 논리에 지나치게 몰입한 결과 실패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장부상 매출과 이익 수준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달성하고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개념 정립을 위해선 어떤 조치가 강구돼야 할까.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단순한 재무제표 개선을 넘어 지배구조의 개선과 투자자와의 소통 강화가 필요하다. 특히 이사회 기능을 활성화하고 평가 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사회는 경영진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경우 이사회 운영이 형식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사회 자체에 대한 정기적인 외부 평가를 도입해 활동의 적절성을 검증하고 경영진 견제 기능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또 기업들은 정기적인 IR 활동을 통해 투자자들과 소통한다. 하지만 대부분 IR 부서에서 대응할 뿐 실제 이사회와 직접적인 연결은 부족하다. 그렇기에 이사회 내에서 주주 소통을 전담하는 사외이사를 지정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해외 기관투자자들이나 국민연금 등 주요 투자자들과의 공식적인 소통 창구를 마련하고 주주들의 의견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아울러 기업이 연간 투자자 미팅에서 주로 논의된 내용과 투자자들의 공통된 관심사를 정리해 밸류업 보고서나 기업 지배구조 보고서 등을 통해 공개하는 것도 신뢰를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가령 기업이 '우리는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고, 이에 대해 이렇게 대응했다'는 내용을 정리해 투자자들에게 공유하면, 보다 투명한 소통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를 통해 기업의 개선 과제와 향후 계획을 투자자들에게 명확히 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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