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평 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특임교수 인터뷰
1% 저성장 고착 현실화···투자와 생산성 높여야
韓 재계 '오너 주머니 불리기'는 밸류업에 부정적
닛케이 225개사 99%, 독립적 사외이사 1/3 이상
우머노믹스, 효과 있었지만 평균 임금 하락 문제
소액 주주 보호·특정인 횡포 억제 단계적 제도화

지난해 글로벌 증시는 활황을 누렸지만 한국 증시는 소외됐다. 투자자들의 실망감은 해외로 향하는 자금 흐름으로 이어졌고 국내 시장은 투자 심리 위축과 자금 유출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밸류업 정책을 통해 한국 증시의 가치를 높이고자 했지만 단기적인 주가 부양책 위주라는 한계가 지적된다. 기업들도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 등 주주 친화적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장기적인 성장을 이끌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기업이 자유롭게 혁신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지만 주주가치 극대화와 함께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반영하는 밸류업(Value-up) 정책이 부재한 실정이다. 이제는 단기 주가 부양책이 아닌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전략이 필요하다. 여성경제신문이 [2025 한국 증시 리부트: 밸류업] 금융포럼에 앞서 각계의 전문가를 만나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편집자 주] 

한국 경제는 성장 잠재력 둔화와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과거 10%대에 달했던 경제 성장률은 점차 하락해 현재 1~2%대에 머무르고 있으며 영국 이코노믹스(CE)는 1% 전망치까지 내놨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인해 노동력 성장 기여도가 낮아지는 가운데 한국 정부와 경제계는 기업 투자 활성화와 생산성 향상을 통한 경제 성장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K-밸류업 프로젝트'는 한국 기업들의 낮은 주가와 기업가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지평 한국외국어대학교 특임강의교수는 국제 경제와 금융 시장을 오랫동안 연구한 경제 전문가로 일본 경제 및 기업 구조 개혁과 경제 회복 과정을 분석 및 연구해 왔다. 여성경제신문과 만난 그는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경고하며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과거의 방식을 청산하고 혁신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이 장기 불황 속에서도 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한 사례를 통해 한국 기업과 경제 구조도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상헌 기자
이지평 한국외국어대학교 특임강의교수는 일본 경제 및 기업 구조 개혁과 경제 회복 과정을 분석 및 연구해 왔다. /이상헌 기자

—작금의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과거 10%대였던 경제성장률이 현재는 1~2% 수준으로 낮아졌으며 2025년에는 1%대 성장률이 예상되는 등 저성장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 저출생과 인구 고령화로 인해 노동력의 성장 기여도가 낮아지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기업 투자를 확대하고 생산성을 높여 경제 성장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기업이 과거처럼 특정 성장 분야를 미리 정해 투자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고 성장하는 벤처기업을 적극 활용하는 '이노베이션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력 제조업도 디지털화와 친환경 전환에 집중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테슬라나 BYD가 자율주행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면서 기존 자동차 기업들이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만회할 경쟁력 확보가 시급하다.

기존 사업의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 혁신 촉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고수익 경영과 성장 전략을 강화해야 하며 증권 시장에서 자기자본이익률(ROE) 제고와 주가순자산비율(PBR) 1 이상을 목표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

※ 용어 해설 :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주가순자산비율(PBR) 
먼저 ROE는 주식 시장에서 통용되는 지표다. '당기순이익/평균자기자본*100'이라는 산식으로 구해져 자기자본을 활용해 얼마나 수익을 내는지 가늠하는 수치다. 분모인 자기자본의 주요 구성항목은 자본금과 자본잉여금, 이익잉여금, 자사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자사주 매입은 마이너스로 계상된다. 다만 자사주를 매입·소각해 자기자본을 줄여 ROE를 높이려는 유혹으로 인해 기업의 장기 성장과는 거리가 먼 의사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있다.
기업의 시장가치와 장부가치를 비교하는 지표인 PBR(Price to Book-value Ratio)은 '주가/주당순자산가치(BPS)'로 구해진다. 주식시장에선 기업의 저평가 또는 고평가 여부를 판단하는 척도로 활용되는데 PBR이 1이면 시장가치와 장부가치가 동일하다는 의미이고 1보다 낮으면 기업이 시장에서 장부가치 이하로 평가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PBR이 낮은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지주사의 경우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PBR 이 코스피 전체 평균 PBR 0.9(지난해 기준)를 밑돌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저(低) PBR 현상은 물적분할과 모자(母子) 동시 상장에 대한 반대 논거가 된다. 

—현재 정부와 당국이 주도하고 있는 K-밸류업 프로젝트를 평가한다면.

"지금까지 많은 정부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단기적인 성과에 치중하거나 장부상의 개선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K-밸류업 프로젝트는 상장기업의 ROE 개선, 배당 성향 확대, 대주주 중심의 지배구조 문제 해결 등 구조적인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다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한국 밸류업 지수는 가치창조경영의 유도와 함께 투자가에게 매력적인 주가지수의 개발을 양립시킨다는 과제를 고민해서 작성됐기 때문에 일본 증권시장에서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해 한국 증시가 글로벌 주요국 증시 가운데 사실상 ‘꼴찌’를 기록했다. 코스닥 지수가 주요 20개국(G20) 증시 대표 지수 중 최저 수익률을 기록한 데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사이에선 꼴찌에서 두 번째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한국거래소,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지난해 한국 증시가 글로벌 주요국 증시 가운데 사실상 ‘꼴찌’를 기록했다. 코스닥 지수가 주요 20개국(G20) 증시 대표 지수 중 최저 수익률을 기록한 데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사이에선 꼴찌에서 두 번째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한국거래소,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한국 자본시장 특성상 기업가치 제고에 걸림돌이 될 만한 부분은 무엇인가.

"한국 자본시장은 재벌 중심 경제 구조, 모자 동시 상장 구조의 관습화, 미흡한 기업 지배 구조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 지배 구조 개혁, 주주 권리 보호 강화, 금융 자본 시장 육성, 규제 완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독립적인 사외이사 확보와 전문 경영인 체제 강화가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히타치처럼 모회사가 자회사를 22개나 상장했던 것을 모두 정리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한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일본이나 서구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사외이사 중심의 경영 감시 기능이 부족한 편이며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구조 개편 측면에서 보면 단순한 합병보다는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과 경영 감시 기능 강화를 통해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다."

—한국에서 테슬라 같은 혁신적인 기업이 나오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은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와 각종 규제로 인해 새로운 사업이나 기업이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창업과 혁신을 장려하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올해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높다. 국내 기업이 밸류업을 완수하려면 어디에 초점을 두고 노력해야 하나.

"국내 기업이 밸류업을 완수하려면 보다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 지배구조 개혁, 이사회 개혁, 사외이사 인재 풀 양성 등을 포함해 중장기적으로 해결해 나갈 자세가 중요하다. 불황 속에서도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경영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동시에 인공지능(AI) 활용 확대에 대응하면서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고 신성장 영역을 개척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은 한국보다 밸류업 프로젝트를 먼저 시작했고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일본의 프로젝트는 어떤 것이었나.

"일본 기업의 개혁은 장기 불황과 함께 증시 부양 프로그램 이전부터 기업 지배구조 개혁에 오랜 기간 집중해 왔다. 1993년 상법 특례법 개정을 통해 대기업은 3명 이상의 감사역으로 감사역회를 조직해야 했으며 이 중 1명 이상은 해당 기업 및 자회사에서 최근 5년간 임원이나 종업원으로 재직한 적이 없는 사외 감사역이어야 한다는 제도가 도입됐다. 또한 같은 해 상법 개정으로 주주 대표 소송의 소송 비용이 대폭 인하되면서 주주의 경영 감시 기능이 강화됐다. 이후 2001년 상법 개정으로 사외 감사의 독립성이 높아졌고 2006년에는 회사법이 시행되면서 기업 지배구조 개혁이 더욱 체계화됐다.

이어 2009년에는 도쿄증권거래소가 모든 상장기업에 최소 1명 이상의 독립 임원 선임을 의무화했다. 이후 일본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한 아베노믹스 정책이 추진되면서 개혁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2015년에는 기업지배구조 코드가 도입되었고 2019년 회사법 개정을 통해 주주총회 운영과 이사 직무 집행의 투명성이 높아졌다.

글로벌 ESG순위. ROESG는 기업의 수익성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지속 가능성을 뜻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결합한 용어다. /삼성증권,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글로벌 ESG순위. ROESG는 기업의 수익성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지속 가능성을 뜻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결합한 용어다. /삼성증권,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결과 2023년 기준 닛케이지수에 소속된 225개 기업 중 독립적 사외이사가 전체 이사회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지 않는 기업은 1개사밖에 되지 않았다. 2014년 발표된 ‘이토 리포트’는 기업과 투자자 간의 대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자본 조달과 기업 가치 제고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특히 ROE 목표치를 8%로 설정해 기업들의 경영 혁신을 유도했다고 본다.

다만 일본 기업의 수익성이 회복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낮은 주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에 도쿄증권거래소는 2023년 PBR(주가순자산비율) 1 미만 기업에 개선 대책을 강력히 요구했다. 또한 일본 경제산업성은 2023년 M&A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기업이 인수 제의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도록 권장하는 등 기업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정책을 계속해서 추진하고 있다."

※ 용어 해설 : 이토 리포트
아베 내각의 경제 책사 이토 구니오 교수가 PBR과 ROE로 일본 증시 저평가의 원인을 분석해 ROESG 개념을 창안한 보고서. ROESG는 ROE* ESG 점수로 구해지는데 ESG 점수가 좋은 기업에서 PBR 상승 경향이 있음이 확인됐다. ESG는 경영의 제약 조건이 아니며 주주권 강화,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 자본시장 구조 개혁을 도모할 수 있는 수단임이 증명된 것이다.

 

일본 기업의 지배구조 혁신, 두 가지 행동 원칙 강조. 이해당사자는 고객, 종업원, 주주, 거래처, 국가 및 사회 /이노우에 도시타케 금융청 기획시장국 심의관, 일본의 기업지배구조,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일본 기업의 지배구조 혁신, 두 가지 행동 원칙 강조. 이해당사자는 고객, 종업원, 주주, 거래처, 국가 및 사회 /이노우에 도시타케 금융청 기획시장국 심의관, 일본의 기업지배구조,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일본의 기업 지배구조 개혁 사례는 한국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나.

"첫술에 배부르긴 어려운 법이다. 일본 경제학계는 아베노믹스 시기(2013~2014)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가 10년 뒤 닛케이 지수 4만 돌파에 기여했다고 보고 있다. 한국도 일본처럼 장기적인 관점에서 꾸준히 기업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또한, 일본 정부는 정책 보유 주식에 대한 설명 책임을 강화하고 은행의 그룹 유대 관계를 약화시켜 기업 그룹 해체를 유도했다. 이는 경영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주주 가치를 상승시키며 시장 경쟁을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왔음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의 기업 지배구조와 경제 개혁을 논할 때면 '우머노믹스'를 빼놓기 어렵다.

"그렇다. 우머노믹스는 여성의 경제 참여를 늘리는 데는 기여했지만 결과적으로 파트타임 여성이 늘어나면서 평균 임금이 하락하는 문제점도 있었다. 양적인 고용 확대는 이뤄졌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는 아직 개선할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일부 해소하긴 했지만 평균 임금 하락은 경제 선순환 구조 형성에 일부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한국이 이를 참고한다면 단순히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높이는 방식보다는 질 좋은 일자리 창출 방법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면 여성 근로자의 경력 단절 문제가 해결됨과 동시에 양성 간 임금 격차도 완화된다."

지난 55년간 일본 니케이225 지수 변화 추이. /그래픽=허아은 기자
지난 55년간 일본 니케이225 지수 변화 추이. /그래픽=허아은 기자

—한국거래소가 도입해야 할 선진제도가 있다면 무엇인가.

"기업지배구조에서 소액 주주의 보호, 특정인의 횡포 억제의 제도화를 단계적으로 시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사 등 임원이 소액주주의 권익을 위배하는 결정을 내릴 경우 이에 대한 책임 추궁에 관해서 기업 합병, 기업 분할 등 중대 의사결정 등 상황을 구분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무질서한 임원 책임 추궁과 남발은 억제하되 지나치게 소액주주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는 견제하는 방식으로. 이와 함께 임원들의 피소 리스크 등에 대한 손해보험을 회사가 준비해야 한다."

—한국의 유가증권지수(KOSPI)는 2500수준이다. 지금과 기업가치와 경쟁력이 동일하다고 가정할 때 법적‧정책적 측면이 지금까지 말씀하신 방향으로 구비된다면 해당 지수는 어느 수준이 정상이라고 보는가.

"여러 지표를 고려하면 현재 지수 수준은 약간 저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일단 2021년에 달성한 3000은 달성해야 할 것이며 경상GDP 성장률, 수출액, 기업의 해외 활동 성과 등에 따라 그 이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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