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인터뷰
기업 경쟁력 강화 위해 불필요한 규제 완화 필요
약탈적인 적대적 M&A 적절한 방어수단 마련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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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글로벌 증시는 활황을 누렸지만 한국 증시는 소외됐다. 투자자들의 실망감은 해외로 향하는 자금 흐름으로 이어졌고 국내 시장은 투자 심리 위축과 자금 유출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밸류업 정책을 통해 한국 증시의 가치를 높이고자 했지만 단기적인 주가 부양책 위주라는 한계가 지적된다. 기업들도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 등 주주 친화적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장기적인 성장을 이끌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기업이 자유롭게 혁신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지만 주주가치 극대화와 함께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반영하는 밸류업(Value-up) 정책이 부재한 실정이다. 이제는 단기 주가 부양책이 아닌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전략이 필요하다. 여성경제신문이 [2025 한국 증시 리부트: 밸류업] 금융포럼에 앞서 각계의 전문가를 만나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편집자 주] |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낮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과도한 규제가 성장과 혁신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미국을 대표하는 델라웨어 회사법은 주주보다 이사회(Board of Directors)에 많은 권한을 부여해 경영진이 주주 간 분쟁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권재열 교수는 조문이 체계적으로 구성돼 있지만 세부 내용이 많아 복잡한 구조를 띤 미국 회사법을 연구해 온 국내 최고 상법 전문가로 꼽힌다. 여성경제신문과 만난 권 교수는 기업이 성장할수록 규제 부담이 커지는 정치권의 입법 행태로 기업의 혁신 동력을 약화하고 있으며 이를 개혁하지 않으면 지속적인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최근 정치적 불안정성이 기업 가치 상승에 장애물로 지적되고 있다. 상법 개정 반대와 관련된 소액주주들의 반발 및 기업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에 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상법은 주주가 회사와 계약 관계를 맺는 당사자일 뿐 이사와는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기초로 해 권리의무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그 때문에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에게까지 확대하는 것은 법체계적인 측면에서 큰 무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기업의 물적분할 및 중복상장과 같은 일련의 사건 등을 통해 현안으로 떠오른 소액주주 보호 사안도 우리가 슬기롭게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처럼 소액주주의 보호가 중요한 과제라고 해서 사법 체계 전반을 흔드는 무리한 입법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머리를 맞대어 현행 법체계 내에서 소액주주를 보호할 수 있는 건설적인 방안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사의 충실 의무와 주주 보호 의무를 둘러싼 논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는지.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사는 회사에 대해서만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 이사가 주주들의 끊임없이 변화하고 각인각색의 의사를 모두 반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이사는 법인격을 가진 회사에 대해서만 의무를 부담한다는 것이다. 이사는 회사로부터 권한을 수임받은 자이므로 회사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며 이는 실제로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다만 미국의 델라웨어주 회사법이 이사는 회사 및 주주들에게 의무를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회사에게 이익이 되는 이사의 의사결정이 주주에게도 간접적으로 이익이 될 것이라는 점을 선언적으로 밝히는 것에 지나지 않아 다른 나라의 입법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현행 상법 개정론의 주장 중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지 않는 점이 있다고 보시는지.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회 위원의 분리선임 대상을 1명에서 2명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감사위원은 미국, 일본을 포함한 주요국에서도 이사의 지위를 가지며, 주주는 주주총회를 통해 이사를 선임하고 경영에 관한 주요 의사결정을 할 권한을 갖는다.
따라서 감사위원이 이사라는 점을 고려할 때 개정안처럼 분리선임 시 최대주주 여부와 관계없이 3%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주주의 이익 보호를 침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의결권 제한 규정은 미국이나 일본의 법체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어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은 감사위원 ‘1명 이상’을 분리 선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제19조 제5항). 사기업은 영리를 추구하여 구성원(주주)에게 분배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으므로 금융회사에 적용되는 기관 구성원리를 사기업에 강제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금융회사 지배구조법보다 더 많은 수의 감사위원을 분리 선임할 것을 강제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

—재계에서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합리적인 합병비율을 도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논의가 소액주주 보호와 기업 간 합병의 부작용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
"주식회사 합병을 둘러싼 다양한 법적 문제 중에서 합병비율과 합병 조건의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그리고 불공정한 합병대가를 받는 주주를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는 상법학에서 중요한 주제이다. 공정한 합병비율은 합병의 본질과 효과를 고려할 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요소로 합병 조건 중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다.
법적으로 살펴보면 합병 과정에서 합병비율이 불공정하게 정해져 주주가 재산적 손해를 입은 경우 그는 합병무효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합병 후 존속회사가 출범하여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합병비율이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합병을 무효화하고 합병 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고 불공정한 합병비율로 인해 주주가 입은 손해를 무시하는 것도 법적 정의에 반한다. 따라서 현행법에 따른 사후적 구제보다는 사전적 규제를 마련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이에 따라 독일법을 모델로 한 합병 검사인 제도를 입법 도입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혁신과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경영권 보호장치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보시는지.
"이사에 대한 감시‧감독의 수단으로서는 이사의 의무와 의무 위반에 대한 주주대표소송, 주주의 경영참가 행위, 그리고 적대적 M&A에 의한 회사지배권 시장 등이 있다. 이러한 감시·감독의 수단 중에서 적대적 M&A의 발생빈도가 예전보다 높아지고 있다. 적대적 기업M&A는 대상기업의 경영진의 의사에 반해 그 경영진을 교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대상기업의 주식을 매입 또는 매집하여 지배권을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적대적 M&A에 의하여 경영진 자신이 지위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긴장감은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모든 적대적 M&A가 기업 경영의 효율성을 제고한다고는 할 수 없다. 적대적 M&A가 약탈적이다보니 경영진에 대한 별다른 징계 효과가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약탈적인 적대적 M&A에 대하여 합법적으로 인정되는 방어 수단이 자사주 취득밖에 없다. 적절한 방어 수단이 추가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정부의 밸류업 정책은 자사주 매입 및 처분 공시 의무 강화에 그친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기업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바람직한 정책 추진 방향에 대한 제언은.
"정부가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는 게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국내에서는 기업이 어느 단계까지 성장해 규모를 갖추게 되면 외부감사법의 적용에 따른 규제를 받게 되며 더 크게 성공하면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받는다. 기업이 성장하면 할수록 더 많은 규제를 받게 된다는 것은 기업을 키우고자 하는 유인을 줄이는 부작용이 있다. 이밖에 경영자를 옥죄는 과도한 처벌 조항이 많은 까닭에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혁신적인 기업 활동을 하는 게 쉽지 않다. 국내외적으로 산적한 난관을 극복하여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전방위적인 규제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의 주가지수는 2500수준이다. 현재의 기업가치와 경쟁력이 동일하다고 볼 때 다른 모든 법적·정책적 측면이 지금까지 말씀하신 방향으로 구비된다면 주가지수는 어느 정도가 정상이라고 보시는지 궁금하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 부과에 따라 무역 전쟁이 본격화할 경우 국내 법제 개선이 이루어진다 해도 주가지수가 2800을 넘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글로벌 경제 환경이 악화한다면 주가지수 상승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러 경제 연구 기관들의 전망을 종합하여 현실적으로 본다면 2600~2800 수준이 적정하다고 판단된다. 다만 탄핵 정국이 마무리되고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될 경우 투자 심리가 개선되어 반등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변수는 국제 무역 환경, 특히 보호무역 기조가 어떻게 변화하느냐가 될 것으로 본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간의 균형적 시각을 가져야 할 한국거래소(KRX)의 접근법이 틀렸다는 지적도 있다. 3월달부터는 국내에서도 금융투자협회와 회원사들이 투자한 넥스트레이드란 대체거래소(ATS)가 등장해 경쟁 체제가 시작된다. 기존의 거래소가 도입해야 할 선진제도가 있다면 무엇인가.
"상장 심사 및 사후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현재 공모가가 과대 평가된 후 상장 후 주가가 급락하는 사례가 반복되는 만큼 거래소가 상장 심사 단계에서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상장 후 일정 기간 주가 흐름을 모니터링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시장 신뢰도를 높이고 투자자의 피해를 줄여야 한다.
또한 상장 폐지 절차의 효율성을 높이는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현재 부실기업이 상장 폐지 과정에서 소송 등으로 인해 장기간 유지되는 경우가 많아 투자자 보호가 어려운 상황이다. 거래소가 보다 신속한 상장 폐지 절차를 마련하고 기업의 재무 건전성 및 주주 보호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우량 기업 중심의 시장을 형성하고 투자자 신뢰를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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