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세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인터뷰
지배구조 개편은 실패한 정책 반복일 뿐
기업 가치 상승 위해 M&A 활성화 필수
노동 개혁·금산분리 혁파로 규제 합리화

지난해 글로벌 증시는 활황을 누렸지만 한국 증시는 소외됐다. 투자자들의 실망감은 해외로 향하는 자금 흐름으로 이어졌고 국내 시장은 투자 심리 위축과 자금 유출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밸류업 정책을 통해 한국 증시의 가치를 높이고자 했지만 단기적인 주가 부양책 위주라는 한계가 지적된다. 기업들도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 등 주주 친화적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장기적인 성장을 이끌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기업이 자유롭게 혁신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지만 주주가치 극대화와 함께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반영하는 밸류업(Value-up) 정책이 부재한 실정이다. 이제는 단기 주가 부양책이 아닌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전략이 필요하다. 여성경제신문이 [2025 한국 증시 리부트: 밸류업] 금융 포럼에 앞서 각계의 전문가를 만나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편집자 주] 

지난 11일 여성경제신문과 만난 민세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편보다도 M&A 활성화와 노동 개혁을 통한 유연한 시장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고 했다. /이상헌 기자
지난 11일 여성경제신문과 만난 민세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편보다도 M&A 활성화와 노동 개혁을 통한 유연한 시장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고 했다. /이상헌 기자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법은 지배구조 개편이 아닙니다. 기업이 성장하고 주가가 오르려면 결국 돈을 잘 버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죠. 그러기 위해선 기업 인수합병(M&A) 활성화가 필요합니다. 한국은 이를 가로막는 노동시장 경직성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지난 30년간 기업 지배구조 개편 논의는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증시는 여전히 저평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는 3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하면서 기존 주주였던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지분율이 10%에서 10.8%로 상승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율은 한때 20%를 초과했지만 삼성생명이 규제 영향으로 점진적으로 줄인 결과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율 감소에는 금산법과 공정거래법 규제가 동시에 작용했다. 금융사가 비금융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하는 경우 금산법 제24조에 따라 초과분은 매각해야 하며 공정거래법 제25조에 의해 의결권 행사도 제한된다. 한때 정부는 삼성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를 원했지만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 자회사를 둘 수 없고, 금융지주회사는 비금융 자회사를 둘 수 없도록 하는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규제 체계 때문에 결국 삼성그룹은 전환을 포기했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사전 규제 현황 /한국경제인협회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사전 규제 현황 /한국경제인협회

자사주 소각 같은 주주환원 정책이 기존 주주의 지분율 상승 등으로 연결되는데 정부는 지난 30년간 최대 주주의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왔다. 이제 조각조각 덧붙은 정책들이 서로 충돌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본질적인 문제는 오히려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과 만난 민세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편보다도 M&A 활성화와 노동 개혁을 통한 유연한 시장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고 했다. 상법 382조의 3(이사의 충실 의무)에 주주를 포함하는 민주당의 입법 시도에 대해선 "상법은 너무 큰 칼"이라며 "파리 잡는 데 중식도(中式刀)를 휘두르는 것 같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지난 30년 지주사 활성화 정책의 실패를 떠올려보면 지배구조 개편만으로는 기업의 실질적인 성과와 주가 상승을 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20년 1월 29일 서울 강남구 삼성물산빌딩 앞에서 참여연대 등 사회단체회원들이 삼성물산·효성의 자발적 지배구조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20년 1월 29일 서울 강남구 삼성물산빌딩 앞에서 참여연대 등 사회단체회원들이 삼성물산·효성의 자발적 지배구조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ㅡ한국의 기업 지배구조가 증시 저평가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기업 지배구조 개편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시는지 궁금하다. 개선이 필요한 핵심 요소는 무엇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기업 지배구조 문제라는 주장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30년간 규제가 강화됐음에도 증시 저평가 현상은 여전하다. 만약 지배구조가 핵심 원인이었다면 지금쯤 개선 효과가 나타나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그 기간 북한의 핵 위협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약화했다. 경제력이 급격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은 기업의 실적 개선과 주가 상승이다. 결국 돈을 잘 버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편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다.

M&A 활성화가 증시 부양에 더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1980년대 미국은 M&A 붐이 증시 랠리를 견인한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한국은 M&A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구조조정이 어렵다 보니 인수 대상 기업이 시장에 충분히 나오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단순한 규제 강화보다 M&A 촉진과 기업 수익성 강화를 위한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ㅡ단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기업 규제를 꼽으라면 어떤 것이 있는가?

"한국의 기업 규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경직돼 있다. 특히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제도와 금융·비금융 분리를 강제하는 금산분리 규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주회사 제도는 원래 기업 지배구조를 선진화하고 순환출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기업들이 이를 왜곡해서 활용했다. 일부 대기업들은 지주회사 전환이 어려운 형편이었고 일부 중견기업들은 '자사주 마법' 등의 방식으로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자사주 마법은 의결권이 없던 자사주가 신설 지주회사 지분으로 전환되면서 의결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주주는 추가 지분 매입 없이도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다.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법인세 혜택 등의 인센티브가 있지만 이후 추가되는 예상치 못한 규제가 오히려 기업 운영에 부담이 되고 있다.

※ 용어 해설 : 자사주의 마법

예컨대 대주주가 30%, 자기주식이 20%, 소액주주들이 50%의 지분을 각각 나누어 가진 회사가 인적 분할을 하면 분할 후 신설 회사(B)의 주식도 주주들에게 각각 30 대 20 대 50의 비율로 배정된다. 그런데 기존 회사(A)에서 자사주였던 20%는 신설 회사(B)의 주식으로 전환되면서 의결권이 생긴다. 즉 원래는 의결권이 없던 자사주가 분할 과정에서 신설 지주회사의 지분이 되면서 의결권이 살아나고 결과적으로 대주주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효과를 낳는다. 이를 두고 '대주주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마법이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인적 분할 합병 시 자사주에 대해 신주 배정을 제한하는 시행령을 발표했다.

금산분리 규제도 문제다. 한국은 금융과 비금융 간 소유 및 경영을 과도하게 분리하고 있어 기업의 신사업 진출과 확장이 어렵다. 해외에서는 금융사들이 다양한 신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만 한국에서는 금융지주사들이 비금융 자회사를 둘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어 혁신적인 사업 확장이 가로막히고 있다.

대표적인 일화로 2008년 국민계정(SNA) 기준을 따르면서 지주회사들이 모두 금융업으로 분류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 자체는 다른 나라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금산분리 규제와 충돌하게 됐다. 금융업으로 분류된 지주회사들이 제조업 등 비금융 자회사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문제가 현실적으로 부담이 되자 한국거래소가 개입해 해결 방안을 마련했다.

거래소는 각 기업의 상황을 반영하여 주력 업종을 재분류하는 방식으로 지주회사들이 금융업으로 분류되는 문제를 조정했다. 이를 통해 상장 지주회사들은 문제가 해소되었으나 비상장 지주회사들은 여전히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로 남게 되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의 금산분리 위반 이슈가 바로 그거다.

결국 이러한 규제들은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기업들이 규제를 피하고자 불필요한 구조 변경을 해야 하거나 형사 처벌과 같은 강한 법적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환경이 문제다."

민 교수는 단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기업 규제로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제도와 금융·비금융 분리를 강제하는 금산분리 규제를 꼽았다. /연합뉴스
민 교수는 단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기업 규제로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제도와 금융·비금융 분리를 강제하는 금산분리 규제를 꼽았다. /연합뉴스

ㅡ기업 규제뿐만 아니라 지배구조와 관련된 제도적 변화도 논의되고 있다. 최근 상법 개정 논란과 맞물려 재계에선 차등의결권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 혁신과 투자 유치 측면에서 실효성이 있을지 궁금하다.

"차등의결권은 기업 경영 안정성과 투자 유치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를 도입하기 어려운 정서적 장벽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1주 1표' 원칙을 단순한 기업 지배구조 규칙이 아니라 민주주의 원칙과 연결된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크다. 이 때문에 특정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 제도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반면 미국에서는 투자자들이 차등의결권을 기업 경영 안정성을 위한 기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국도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차등의결권이 허용됐지만 이를 기존 상장사까지 확대하는 것은 논란이 될 수 있다. 특히 대기업 3세들에게 차등의결권을 부여할 경우 시장 반발과 법적 다툼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격 재산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ㅡ한국 증시의 밸류업을 위해 주주 환원 정책이 효과적이라고 보는가. 주가순자산비율(PBR) 주주환원율을 기계적으로 연계하기보단 개별 기업의 경영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장부상) PBR 상승에는 주주 환원 정책이 효과적이긴 하다.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이 실질적인 접근법으로 평가된다. 다만 기업들이 왜 이를 적극적으로 시행하지 않느냐에 대한 불만이 지배구조 문제로 연결되는 경향이 있다. 주주들이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배경도 결국 배당 확대나 주가 부양과 같은 주주 환원과 관련이 깊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총수 중심이고 주주 환원에 소극적이라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하지만 결국 투자 판단의 핵심은 기업의 성장 가능성이다. 또한 최대 주주의 상속 시점에 주가가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최대 주주가 주가를 신경 쓸 인센티브가 적은 것은 다각도로 살펴볼 문제다.

※ 용어해설 : 주가순자산비율(PBR)

기업의 시장가치와 장부가치를 비교하는 지표인 PBR(Price to Book-value Ratio)은 '주가/주당순자산가치(BPS)'로 구해진다. 주식시장에선 기업의 저평가 또는 고평가 여부를 판단하는 척도로 활용되는데 PBR이 1이면 시장가치와 장부가치가 동일하다는 의미이고 1보다 낮으면 기업이 시장에서 장부가치 이하로 평가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과거에는 주가 상승 기대감이 컸기 때문에 배당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지만 성장 기대가 낮아지면서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통한 수익 실현 요구가 커졌다. 한국 시장이 충분한 성장 기회를 제공하면 지배구조 자체가 결정적인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시장 개입을 반복하면서 한국 증시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신뢰가 낮은 점도 중요한 문제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매도 금지 조치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공매도를 기본적인 시장 기능으로 본다. 그런데 한국은 특정 시기에 정치적 판단으로 공매도를 금지하면서 해외 투자자들에게 '한국 시장은 예측하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신호를 줬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했다. 공매도 제한이 단기적으로는 국내 투자자 보호 효과를 가질 수 있지만 글로벌 투자 기준에서는 시장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저해하는 조치로 해석된다. 장기적으로 해외 기관투자자들의 이탈을 가속할 수 있는 요인이 됐다."

민세진 교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제고돼야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M&A 활성화와 기업 가치 상승이 가능해진다"며 "물론 근로자의 생계 안정성을 높이는 제도 마련과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헌 기자
민세진 교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제고돼야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M&A 활성화와 기업 가치 상승이 가능해진다"며 "물론 근로자의 생계 안정성을 높이는 제도 마련과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헌 기자

ㅡ기업 가치 상승을 위해 단기 주주가치 제고보다 장기 성장 전략이 중요하다고 분석된다. 국내 기업들이 지속가능한 성장 환경을 구축하려면 어떤 경제 정책이 필요할까.

"장기적으로 기업이 성장하려면 노동 개혁이 필수적이다. 한국의 M&A 시장에서 매력적인 매물이 적은 이유도 구조조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M&A에서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사업 재편과 인력 구조조정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기업이 인수된 후 인력 조정이 사실상 어렵다. 공장 하나를 폐쇄하거나 사업부를 매각하려 해도 관련 직원들을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아 기업 인수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제고돼야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M&A 활성화와 기업 가치 상승이 가능해진다. 물론 근로자의 생계 안정성을 높이는 제도 마련과 함께 가야 한다. 노동 개혁은 강한 이해관계로 인해 추진이 쉽지 않지만 이를 외면하는 한 기업 성장과 M&A 활성화는 불가능하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 아래 안내표를 클릭하면 '밸류업 프로그램과 상법개정 논란'을 주제로 오는 3월 20일(목) 오전 8시 30분부터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불스홀에서 열리는 제9회 여성경제신문 금융포럼 사전 신청 등록페이지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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