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인터뷰
상법 개정으로 균형 맞춰야 하는 이유 제시
'이사의 충실'보다 '주주 보호' 의무 강조
주주 소송 판례 통해 제도 재정비 필요성

지난해 글로벌 증시는 활황을 누렸지만 한국 증시는 소외됐다. 투자자들의 실망감은 해외로 향하는 자금 흐름으로 이어졌고 국내 시장은 투자 심리 위축과 자금 유출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밸류업 정책을 통해 한국 증시의 가치를 높이고자 했지만 단기적인 주가 부양책 위주라는 한계가 지적된다. 기업들도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 등 주주 친화적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장기적인 성장을 이끌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기업이 자유롭게 혁신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지만 주주가치 극대화와 함께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반영하는 밸류업(Value-up) 정책이 부재한 실정이다. 이제는 단기 주가 부양책이 아닌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전략이 필요하다. 여성경제신문이 [2025 한국 증시 리부트: 밸류업] 금융포럼에 앞서 각계의 전문가를 만나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편집자 주]

지난달 16일 정준혁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한국이 사전 규제는 90점 수준으로 매우 강하지만 사후 규제는 50점 수준에 그친다"라며 "규제 균형을 맞춰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박소연 기자
지난달 16일 정준혁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한국이 사전 규제는 90점 수준으로 매우 강하지만 사후 규제는 50점 수준에 그친다"라며 "규제 균형을 맞춰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박소연 기자

한국 증시 저평가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권에서는 상법 및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대체로 전문가들도 주주 보호를 강화하면 장기적인 투자 환경이 개선될 것이라고 본다. 주주 보호 강화 시 기업의 지배 구조가 개선되고 이것이 해외 투자자의 신뢰 회복과 장기 투자 확대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경제신문은 한국 증시가 저평가받는 원인과 그 해법을 알기 위해 여러 전문가를 찾았다. 기업법 전문가인 정준혁 서울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한국은 사전 규제는 90점 수준으로 매우 강하지만 사후 규제는 50점 수준에 그친다며 규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자본시장법은 사전 규제 위주로 정비되어 있지만 주주가 이사에게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을 통해 사후 규제도 보완해야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투자자 신뢰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주주 이익 보호가 미흡하다는 국내외 투자자들의 전반적인 인식이 우리 자본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안타깝게도 국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한국법은 주주 이익을 보호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구체적으로 법원이 재판하는 데 주주에 미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검토하지 않고 기업들이 각종 조직 재편 거래 등에서 주주 이익 침해 여부에 대해 중요하게 고민하지 않으며 외국인 투자자, 개인투자자, 기관투자자 할 것 없이 이러한 인식이 팽배하여 주식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러한 판단 기준과 인식 변화를 위해서는 주주 이익 보호를 명시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효과적이고 신속한 주주 보호를 위해서는 회사 경영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일반 원칙으로서의 상법 개정과 합병 등 구체적 사안에 적용되는 자본시장법 개정이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상법 개정안에 있는 '이사의 회사와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에 재계의 반발이 있다. 이사에게 회사와 주주에게 모두 충실해지길 요구하면 회사와 주주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이사의 행동 지침이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예를 들어 회사 합병의 경우 회사로서는 규모가 확대돼 환영할 일이지만 주주로서는 합병 비율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손해를 볼 수 있다. 이처럼 이사의 회사와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는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이사의 주주 보호 의무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해 5월 31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지역기업 관계자를 대상으로 밸류업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이상헌 기자
지난해 5월 31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지역기업 관계자를 대상으로 밸류업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이상헌 기자

—상법과 자본시장법 개정 이외에 추가로 필요한 것은 어떠한 것이 있는가?

"우리나라의 경우 자본시장법으로 대표되는 사전 규제 쪽은 상당히 치밀한 데 비해 사후적으로 이사의 책임을 묻는 주주대표소송 등은 별로 활성화되지 않았다. 점수로 치면 사전 규제는 80~90점 정도인데 사후 규제는 50점 정도밖에 안 된다. 즉 이사가 선관주의의무 등 의무를 위반하더라도 실제 이를 문제 삼는 소송은 많지 않다는 의미다.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역할과 주주대표소송을 통한 모니터링을 활성화할 수 있는 대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주주 전체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회사의 정상적 경영활동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령 개정이 자칫 이사의 경영 판단에 부당한 장애를 주어서는 안 된다. 이사들의 판단을 지원할 수 있는 합병, 신주발행, 투자 등 관련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제정돼야 하고 임원 책임 배상 보험의 현실화와 업무상 배임죄 기소 지침의 제정 등 정부의 지원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자본시장 정책과 관련해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은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국내 증시의 저평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로 필요한 법적·제도적 개선 방안에 대한 의견을 부탁드린다.

"최근 몇 년간 개인 투자자가 엄청나게 늘어났고 주식 투자 관련한 정치적 관심도 많이 증가했다. 문제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와 관련해 사전 규제와 사후 규제라는 두 가지 축 중 사전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사후 규제인 상법 개정 논의가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상법과 자본시장법을 개선해야 하며 특히 상법의 경우 주주 보호 의무를 명시해야 한다. 법 개정은 우리 시장에 대한 인식은 물론 이사회의 인식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신고서는 회사가 주주와 소통하는 공식적인 문서인데 여기에 이사회가 주주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는지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주주 보호 의무가 들어가면 이사진들의 이런 행동 양식도 조금은 변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달 16일 정준혁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소연 기자
지난달 16일 정준혁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소연 기자

ㅡ주식 밸류업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 거래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거래소가 도입해야 할 선진제도가 있다면 무엇인가?

"상장 및 상장 폐지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주요 국가와 비교할 때 상장되는 기업에 비해 상장 폐지되는 기업의 수가 지나치게 적다는 비판이 있다. 투자자 보호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부실기업들이 적시에 상장 폐지되지 않으면 약탈형 M&A나 불공정거래에 악용되는 등 더 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우량기업에 유입될 자금이 부실기업에 유입됨으로써 자본의 효율적 배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문제점도 있다. 

상장폐지 시 소액주주 보호 대책을 효과적으로 수립하면서도 부실기업에 대한 합리적 퇴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당국도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상장 및 상장폐지 제도 개선 방안을 최근 발표했다. 

다만 상장폐지 결정이 법원에서 그 효력이 무효가 되는 예도 있으므로 의사결정 과정의 공정성에도 더욱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상장 시 증권신고서를 보다 책임감 있게 작성하고 이에 대해 독립된 기관들이 검증하고 부실기재 시 이에 대한 집행력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하다."

정 교수는 마지막으로 "법제도 개선만으로 코리아디스카운트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투자자 보호가 파이를 어떻게 나누는지의 문제라면 파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의 문제도 관심이 필요하다"라며 "투자자 보호 법제도 정비와 함께, 경영자의 혁신적 경영을 어떻게 뒷받침할 수 있을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상속 등으로 인하여 점차 지배주주의 지분이 희석되는 상황에서 이른바 소유 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를 어떻게 대비할지, 전문경영인 육성 및 CEO 승계 문제 등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다음은 제9회 여성경제신문 금융 포럼 일정 안내표다.

※ 아래 안내표를 클릭하면 사전 신청 등록페이지로 연결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