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논쟁 속 '3색 대안' 제시
상법 아닌 자본시장법 개정, 경영판단원칙 要
충실의무 확대는 논리적 모순···경영 위축될 것
주주-이사 위임 무관···전자주총 의무화 반대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밸류업 프로그램이 오히려 단기적 주가 부양에만 매몰돼 기업의 장기적 성장과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특히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상법 개정안이 글로벌 스탠다드와 동떨어진 반기업적인 것이어서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20일 여성경제신문은 '제9회 여성경제신문 금융포럼'을 개최하고 밸류업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논의를 펼쳤다. 이날 포럼에서는 기업 가치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넘어 기업 스스로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장기적인 투자에 적극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전자주주총회 의무화가 골자인 상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대안을 내놨다.

첫 번째 세션에서 기업 법제적 분석을 맡은 권용수 건국대 글로칼혁신대 교수는 ‘2025 한일 기업법제 개정 방향: 거버넌스 개혁과 경영 개혁'이란 발표를 통해 일본에선 경영자 책임을 대폭 줄이는 정책이 실행되고 있는데도 상법의 덫에 빠진 한국의 현실을 지적했다. 권 교수는 이사의 주주 보호 원칙을 명문 규정으로 못박으려는 더불어민주당 방침에 대해 "주주 이익 극대화로부터 초래되는 문제가 심화할 것이기에 걱정스러운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밸류업 해법으로 상법 개정이 아닌 자본시장법 개선을 제안한 권 교수는 밸류업 정책의 핵심 타깃인 상장기업에 대한 규제는 자본시장법을 통해 더욱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경영진 보호책 마련도 강조했다. 그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화해 이사회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과도한 소송으로부터 경영진을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경영진이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내용을 불문하고 사후적으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법리다. 그럼에도 한국에선 경영을 모르는 법관이 사실상 경영판단 내용의 합리성까지 판단하고 있어 무늬만 경영판단원칙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실정이다.
한국의 상법 개정안이 일본의 성공한 밸류업 정책과도 반대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올해 1월 일본 경제산업성이 간다 히데키(神田秀樹) 교수의 자문을 받아 발표한 '수익성 강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연구회 회사법 개정에 관한 보고서'를 권 교수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업무집행이사와 집행임원의 책임을 줄이기 위한 책임한정계약 체결을 허용했다.
일본 정부는 이와 함께 상장회사의 주식 유동성을 활용해 대규모 M&A를 포함한 성장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특정 회사가 국내 주식회사 외에 외국 회사나 이미 자회사화한 회사의 주식을 추가 매수하는 경우 등에도 주식교부 제도를 허용할 방침이다. 동시에 주주뿐만 아니 채권자의 입장을 존중해 기업의 성장 자금 조달의 중요한 수단인 사채권자집회를 온라인상에서 개최하는 것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종합토론에서도 일본과 대비되는 한국의 상법 개정 추진 움직임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수연 법무법인 광장 연구위원은 "이사에게 회사와 별도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명문화하는 것은 회사와 주주를 구분하는 경직적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현행 상법은 이미 해석상 이사에게 주주 이익을 보호할 의무를 인정하고 있다"며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가 기업 경영에 "공포와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행 법령상 주주 이익 보호 의무가 원칙적으로 인정되는 상황에서 굳이 주주란 단어를 포함해 충실의무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실익이 없을 뿐 아니라 이사의 책임 부담만 가중시켜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자주주총회 의무화에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 연구위원은 "기업 자율권의 심각한 제약이자 부담"이라며 "통신·기술적 장애, 해킹, 명의도용 등 위험으로 소송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전자주총 의무화가 기업에 불필요한 부담을 가중시키고 예상치 못한 법적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한종규 국립순천대 법학과 교수 역시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사와 주주 간 직접적인 법률관계가 없는 상황에서 이사에게 주주에 대해 위임 계약으로부터 파생된 충실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이라면서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가 법리적으로 근거가 부족하며 상법 체계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상법은 규제법이 아니"라며 "상법은 민법의 특별법으로서 대륙법의 체계를 가지고 논리적 정합성을 가진 거래법적 성격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본시장법은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자본시장 참여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법적인 성격이 강하므로 자본시장에 주주에 대한 보호장치를 두는 것이 상법 개정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열린 이번 포럼은 금융투자협회·은행연합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여신금융협회 등 5개 금융단체를 포함해 한국경제인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6개 경제 단체 주요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가 됐다.
발제는 권 교수를 비롯해 신현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와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 연구위원이 맡았다. 토론에는 김 연구위원과 한 교수 외에도 권흥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이보미 한국금용연구원 자본시장연구실장, 김윤경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물류학부 교수가 참여했다. 좌장은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담당했다.
여성경제신문 허아은 기자 ahgentum@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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