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으로 먼저 적극적 개입 결정
MBK·영풍 지분 대결선 근소 우세
국가 기간 산업 보호론에 막힐수도

국민연금 수책위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보다 직접적인 개입을 결정했다. 지난 1월 임시 주총 당시 수책위는 기금운용본부에 먼저 안건을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내부적으로 집중투표제 도입을 둘러싸고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이상헌 기자
국민연금 수책위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보다 직접적인 개입을 결정했다. 지난 1월 임시 주총 당시 수책위는 기금운용본부에 먼저 안건을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내부적으로 집중투표제 도입을 둘러싸고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이상헌 기자

국민연금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기조를 보이면서 향후 전개될 사태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기금운용본부가 기존처럼 단순 투자 목적의 주주권 행사 여부를 검토하는 방식이 아니라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자진해 개입을 결정한 점이 주목된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법원은 지난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에서 영풍이 보유한 25.4% 지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 조치가 주주평등 원칙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집중투표제 도입을 제외한 모든 주총 결의를 무효화하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임시 주총에서 선임한 사외이사 7인의 직무집행을 정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최윤범 회장은 이에 반발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이의신청을 제출하며 대응에 나섰다.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MBK파트너스의 경영권 장악 시도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지만 가처분 결정의 효력을 정지시키지는 않기 때문에 영풍 측이 부활한 의결권을 행사하며 MBK 측이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성경제신문 분석 결과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이사회 과반을 차지하려면 최소 6번의 주주총회를 개최해야 하는 상황으로 파악된다. 이달 말로 예상되는 정기 주총에서 최 회장 측 이사들 중 5명이 임기 만료되고 법원 가처분 결정에 따라 신규로 임명된 7명은 직무가 정지된다. 사임한 이사들을 제외하면 최 회장 측 이사는 5명, 영풍 측은 장형진 고문이 남게 된다.

국민연금 수책위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보다 직접적인 개입을 결정했다. 지난 1월 임시 주총 당시 수책위는 기금운용본부에 먼저 안건을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내부적으로 집중투표제 도입을 둘러싸고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다만 이사 수 상한제 도입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며 국가 기간산업 보호라는 측면에서 적극적인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의 필요성이 강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말 기준 공시자료 및 우호지분 추정을 포함한 고려아연 지분 구도 /정리=여성경제신문
지난 1월말 기준 공시자료 및 우호지분 추정을 포함한 고려아연 지분 구도 /정리=여성경제신문

영풍의 상호주 제한 해제로 최 회장 측과 MBK 측의 지분 구도는 의결권 있는 주식 기준으로 각각 39.1% 대 46.7% 정도로 파악된다. 이런 가운데 일반주주 지분 7.8%를 중립으로 본다면, 이미 적극적 주주권 행사 의지를 드러낸 국민연금(지분 4.51%)이 기간산업 보호 명분으로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지원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집중투표제는 소수 주주의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로 주주들이 보유한 의결권을 후보자 수만큼 분배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한 번의 주총에서 MBK가 고려아연보다 2석 이상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아 1 대 5 구도를 뒤집으려면 최소 6번의 주총 개최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6번의 주총에서 MBK와 고려아연이 각각 2명과 1명의 이사를 신규 선임할 경우 총 이사 수는 24명 이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재계에서는 이번 국민연금의 행보가 단순한 주주권 행사가 아닌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에서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국민연금이 단순 투자자의 역할을 국가 전략산업 보호 역할에 나선다면 일반주주의 지지까지 이끌어내 MBK·영풍의 공세를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이 고려아연측의 기대다.

해외 사례도 경영권 방어 명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2016년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미국 기업이 자국 위성·우주 기술 기업 MDA를 인수하려 하자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하며 이를 저지했다. 2018년 호주 연기금들은 홍콩의 CKI가 자국 에너지 기업 APA Group을 인수하려 하자 반대 의견을 제출해 인수를 막았다. 

또 최근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반대도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개입은 해외 연기금의 사례를 고려할 때 단순한 투자 원칙을 넘어선 국가 전략적 이익 보호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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