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전공의 이해한다며 유예 시사했는데
기본권 침해 소송 빌미준 서울행정법원
대교협 단계에서 무효화가 최선인 상황

지지부진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던 의정 대화가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의 긴급 면담이 성사되며 급물살을 타는 듯했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난관은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당초 윤 대통령을 만나더라도 4·10 총선 이후를 고려하던 박 위원장이 4일 면담을 결정한 것은 지난 2월 20일에 작성한 대전협 성명문의 요구안을 재차 강조하기 위해서다. 윤 대통령도 이날 "전공의들의 입장을 전적으로 이해한다"며 크게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박 위원장은 이날 오전 대전협 대의원 온라인 대화방에 윤 대통령 면담에 대한 전공의들의 우려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서 "총선 전에 한 번쯤 전공의의 입장을 직접 전달하고 해결을 시도해 볼 가치는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앞서 대전협은 2월 20일 집단 진료 거부에 들어가면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및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 △명령 전면 철회 및 정부 공식 사과 △의료법 제59조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의사 수급 추계 기구 설치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 △주 80시간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등 7대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정부와 대화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이번 면담에 앞서 장소, 주제, 시간 등에 구애받지 않고 전공의 입장을 듣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또 대통령실이 상습적 언론플레이를 해왔다는 의료계의 우려가 제기되며 내용 역시 비공개키로 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윤 대통령이 전공의와 만나고 싶다는 의향을 밝힌 것에 대해 환영의 메시지를 발표했다.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은 오후 2시부터 4시15분까지 진행됐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수경 대변인이 동석한 자리에서 박 위원장은 전공의들의 의견을 대통령에게 전달했고 대통령은 이를 경청했다.
의료계는 대통령실이 이날 대화를 통해 증원 숫자를 재조정하는 것이 아닌 '의대 증원 1년 유예' 정도로 타협점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통령이 제안한 의료개혁 사회적협의체 테이블에 올려놓고, 전공의를 포함한 의료계와 환자 단체, 대학까지 1년 동안 논의해보고 증원을 결정하자는 것이다. 이는 2000명 숫자에 매몰되지 말라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대학들은 5월 안에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승인을 거쳐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수정한 뒤 2025학년도 모집 요강을 누리집에 발표하는 절차를 거친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상 각 대학은 매 입학연도 개시 1년10개월 전에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예고해야 해 2025학년도 계획은 이미 지난해 4월 발표됐다.
다만 교육부 장관이 인정하는 부득이한 사유가 있거나 대학 구조개혁을 위한 학과 개편 및 정원 조정이 있을 때는 대교협 승인을 거쳐 계획을 바꿀 수 있다. 지난 25일 대교협 회장으로 취임한 박상규 회장이 최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의대 증원 블랙홀현상을 우려한 만큼 대교협 단계에서 무효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통령이 의대 증원 정책을 유예하게 된다면 정책 주무부처인 이주호 장관을 비롯한 교육부 핵심 인사에 대한 경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의협 주변의 일부 극우 인사들이 주장해온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박민수 차관을 미흡한 행정 처리로 파면한다면 2000명 의대 증원을 주문한 윤 대통령이 '제 손으로 제 눈 찌르기'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또 의대 증원 정책을 1년 유예하더라도 사건이 헌법재판소로 간다면 일각에서 제기되는 탄핵 주장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에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는 지난 3일 의대정원 증원 취소를 요구하는 수험생 6명 가운데 미성년자 3인에 대한 법정대리인 증명서를 8일까지 제출하라고 명령하고도 기각 결정을 내렸다. 헌법상 평등원칙과 비례원칙에 위반되는 판결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헌법재판소 문턱까지 향하게 됐다.
특히 사법부가 교육부가 입시전형 직전에 정원을 변동시킨 것이 고등교육법에 위배된다는 판단을 내리지 않은 것이 윤 대통령을 더욱 궁지로 몰아 넣은 모양새가 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앞서 행정 소송에서 빠질 것으로 예상됐던 박단 위원장도 의대정원 증원 취소 가처분 신청을 계속 진행키로 했다. 연세대의 경우 증원이 0명이고 1~2차 소송 각하 취지를 보면 원고적격을 부정할 것이 명백하다는 이유에서 소송 취하를 검토했으나 최종적으로 소송단에 남기로 한 것으로 파악됐다.
박단 위원장은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에서 근무하다 지난 2월 20일 사직한 전공의다. 이런 가운데 세브란스 병원 소속 김창수 연세대 예방의학교실 교수가 이끄는 전국의대교수협의회가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면담이 끝난 즉시 헌법소원 제기를 예고해 눈길을 끌었다.
전의교협은 이날 성명문을 통해 "서울행정법원이 각하결정을 연이어 내렸으므로, 보충성원칙에 따라 이제는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며 "다음주 초 정부의 공권력 행사(2000증원)에 대해 기본권 침해(교수의 자유,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를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및 정부의 공권력 행사를 중지시키기 위한 가처분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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