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1만명 소송에 겁 먹은 대학 총장들
50% 재량권 주어져도 칼자루는 학생들에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전국 의과대학이 3900명 증원까지 요청한다면서 2000명 입학 정원 확대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엔 대학 총장들이 오히려 증원 규모를 줄일 수 있는 재량을 달라고 정부에 요청하며 나섰다.
19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의과대학을 운영 중인 6개 지역 거점 국립대 총장들이 "2025학년도 대학입학전형에서 증원된 의대 정원의 50~100% 범위에서 신입생을 자율적으로 모집하게 해달라"고 건의했고 정부는 이를 수용키로 했다.
전일 경북대와 강원대, 경상국립대, 충남대, 충북대, 제주대 등 6개 비수도권 국립대 총장들의 발표엔 무리한 증원을 요구하다 역풍을 맞은 급박한 사정이 읽혀졌다. 이들의 건의문엔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 변경 시한이 올해 4월 말로 도래함을 직시해야 한다"는 사실 관계가 다른 내용이 담겼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상 각 대학은 매 입학연도 개시 1년 10개월 전에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예고해야 한다. 따라서 2025학년도 계획 발표 데드라인은 지난해 4월로 이미 기한을 넘겼다. 이런 이유로 의대생 1만3000여명이 각 대학을 상대로 '대입전형 변경금지' 가처분 소송에 나선 것이다.
만약 이들 6개 대학이 50%로 줄여서 신입생을 모집하면, 내년 의대 정원은 4542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추진한 증원 규모보다는 500명 가량 줄어들지만 의학교육의 질을 유지하면서 확대 가능한 정원이라며 당국이 밝힌 수치와는 크게 차이가 난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27일부터 11월 9일까지 2주간 전국 40개 의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수요조사 결과 △2025학년도 최대 2800명대 △2039학년도까지 최대 3900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법원 판결(2016다33196)에 따르면 의대생들과 대학간의 법률관계는 사법상 계약관계에 있다. 대학의 무리한 의대 정원 확대로 기존 의대생들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학습권이 침해받는 것은 계약 위반 및 채무불이행으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총장들이 겁을 먹고 한발 물러선 상황이 됐다.
전국 40개 대학에 수백억대의 손해배상소송을 예고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한 의대생들은 선발대를 구성해 오는 22일 10개 지방의대(가톨릭관동대·강원대·단국대·동국대·성균관대·울산대·을지대·인하대·제주대·충북대)에 대해 가처분 소송을 접수할 예정이다.
대통령실은 이날 학교별로 배정된 의과대학 정원을 최대 50%까지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수용키로 방침을 정했다. 그러면서 증원 규모를 2000명과 1000명 사이로 줄이는 통큰 합의를 기대하고 있지만 전공의와 의대생을 돌아오게 하긴 어려워 보인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반응은 매우 냉소적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이 이준석 개혁신당으로부터 '원점 재논의' 지원을 받아내는 등 대한의사협회와 별도 노선을 취하며 칼자루를 쥐고 있다.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은 "전보다는 나은 입장이긴 하지만, 움직일 만한 건 아니다"며 "국립대 총장들조차도 증원으로 의학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거라는 걸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학들이 학칙을 개정해 정원을 확정하고 2025학년도 입학전형 시행계획을 대교협이 승인하면 각 대학이 5월 31일까지 '신입생 수시모집요강'을 홈페이지에 공고하는 방식으로 입학 정원이 확정된다. 이 단계에서 원점 재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전공의와 의대생이 돌아올 길이 막힌 상황에서 유급 관련 학사일정도 대학을 압박하고 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학교 수업일수를 '매 학년도 30주 이상'으로 정하고 있어 통상 학기당 15주 이상의 수업시수를 확보해야 한다. 즉 의대생들의 동맹휴학이 4월 중순 이후로 이어질 경우 2025학년도 의예과 1학년생은 기존 정원 3058명에 더해 이번에 증원되는 2000명 그리고 올해 유급되는 3058명 등 총 8116명이 의대를 졸업하는 6년간 함께 교육을 받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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