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환시대 전력 슈퍼 사이클 오는데
'지배력 유지=악' 이라는 낡은 이분법
금융도 기업으로 먹고 사는 중개업자

LS일렉트릭의 주가가 케이오씨(KOC)전기의 상장 추진 소식이 전해진 이후 9거래일 만에 급락하자 일부 투자자들과 행동주의 플랫폼은 '중복상장'을 명분 삼아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밸류업 전문가들은 이러한 비판이 기업의 성장 전략을 왜곡하는 포퓰리즘적 주장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24일 한국경제인협회가 최근 전세계 24개 로스쿨 교수를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시키는 결정에 대해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본 응답자는 전체의 24%에 불과했다. 이는 "소송이 가능하다"고 답한 응답자보다도 낮은 수치이며 전체 응답자의 과반인 52%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거나 유보적인 태도를 보여 물적분할 상장에 대한 법적 판단은 여전히 명확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영역임을 보여줬다.
특히 영미법계 국가일수록 충실의무 위반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고 암묵적으로 경영 재량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컸다. 자회사가 독립적으로 상장해 자금을 유치하는 구조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보편화된 전략인데 '총수 일가의 지배력 유지'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시각은 한국 특유의 반기업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란 얘기다.
이런 가운데 행동주의 주주 플랫폼 '액트;는 지난 18일 기준 LS 주주 인증을 완료한 소액주주 648명의 보유지분 0.61%(19만5406주)를 확보했다며 주주제안권 행사 의지를 밝혔다. 주주가 직접 주주총회 안건을 이사회에 제안할 수 있도록 한 주주제안권은 원칙적으로는 발행주식총수의 3% 이상을 보유한 주주만이 제안을 할 수 있지만 상장회사의 경우에는 6개월 이상 주식을 보유한 주주가 자본금 1000억원 이상인 경우 0.5%, 그 외에는 1% 이상만 보유해도 공동 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 대행의 상법 개정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반대 운동에도 나선 이들의 타깃이 된 인물은 오는 27일 정기 주주총회를 앞둔 LS그룹 구자은 회장이다. 구 회장이 최근 중복상장에 대해 "소액주주 보호보다 기업 성장 전략이 우선돼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을 문제 삼았지만 주주운동이 본래의 취지를 넘어서 특정 인물과 그룹을 향한 '집단 공격'으로 변질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LS그룹은 현재 구씨 일가 위주의 특수관계인 지분 32.1%를 확보하고 있어 경영권 자체는 안정적이지만 그룹 안팎으로 경영권 흔들기 시도가 감지되고 있다. 승계가 3세대로 넘어가면서 계열분리 가능성이 제기되는 동시에 호반그룹이 회계장부 열람권과 임시 주주총회 소집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준인 지분 약 3%를 확보하고 있다.
구자은 회장 행보와 비교되는 조정호 메리츠금융 회장 사례 역시 과대포장된 측면이 있다. 2023년 1월 조정호 회장은 상장 자회사였던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완전자회사로 전환하는 결단을 내렸다. 주식 교환 방식으로 자회사 일반주주들의 주식을 흡수하며 본인의 지분율을 75%에서 46%로 줄이는 것을 감수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주가가 폭등하면서 수익은 극대화됐다.
다만 메리츠의 성공적인 밸류업 배경에는 금융산업의 특수성이 있었다. 사업 구조상 내부 자금만으로도 충분한 성장이 가능한 조건이 갖춰져 있었던 것이다. 반면, 제조업과 인프라 중심의 LS는 AI, 전력망, 전선 등 고위험 고자본 산업군에 속해 있어 외부 자금 유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산업 구조와 재무 여건이 근본적으로 다른 만큼 메리츠 모델을 보편적 기준으로 삼는 건 무리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이 영업활동을 지속하고 성장하지 못한다면 자금중개를 통해 이익을 얻는 금융도 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 이보미 한국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실장은 지난 20일 열린 여성경제신문 포럼에서 "금융업종에서 자사주 매입·소각 발표 직후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났지만 이는 지속적인 기업가치 상승과는 무관한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며 "밸류업 프로그램은 단순히 주주환원 계획을 공시하는 도구가 아니라, 기업이 장기적 관점에서 어떤 전략을 통해 가치를 창출할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소통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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