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부통령 후보 토론서도 민주당 열세
기다린 인터뷰도 준비 안 된 모습만
자기 공약 설명 없이 네거티브 열중
시장은 벌써 트럼프 2기 기정사실화

미국 대선까지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그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는 박빙 속에 혼전을 거듭했다. 지난 7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와 토론에서 참패하고 후보직을 해리스에게 물려준 뒤 해리스는 그 후광을 받아 잠시 승승장구했다.

미국 대선까지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그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는 박빙 속에 혼전을 거듭했다. /연합뉴스
미국 대선까지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그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는 박빙 속에 혼전을 거듭했다. /연합뉴스

인도계 어머니와 자메이카 흑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해리스가 인종의 다양성을 무기로 삼아 최초의 여성 소수인종 대통령이 된다면 분열된 미국을 통합하리라는 기대감이 컸었다. 이런 기대감은 해리스 후보가 9월 ABC 방송이 주최한 대선 후보 토론에서 선전함으로써 열망으로 바뀌어 갔다.

암살 시도에서 구사일생한 트럼프 후보는 젊은 에너지, 다양성과 진보를 내세우는 해리스 후보의 열풍에 비틀거렸다. 그렇게 해리스 후보의 당선 쪽으로 향해 가던 대선 풍향계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사건이 얼마 전 발생했다. 바로 부통령 후보 토론이었다. 

오하이오 출신의 공화당 JD 밴스 상원의원과 미네소타 주지사인 팀 월즈가 단상에 마주 서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해리스를 향해 '아이를 가지지 않는 고약한 고양이 아주머니'라고 비아냥대서 여성 유권자에게 미운털이 잔뜩 박힌 밴스 후보는 여전히 딱딱하고 차가운 이미지였다. 반면 월즈 후보는 친근하고 털털한 모습을 십분 발휘했다.

토론 말미에 월즈가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졌다고 생각하느냐며 밴스를 밀어붙일 때가 토론의 하이라이트였다. 밴스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면 트럼프를 배신한 것이고 아니라고 답하면 민주주의를 부인하는 비상식적 인사로 낙인찍힐 판이었다. 밴스는 이 질문에 구렁이 담 넘어가듯 소셜미디어의 검열을 문제 삼으며 피해 갔다. 

이날 밴스가 보여준 의젓한 모습과 상대를 존중하는 품위 있는 태도는 보수 논객의 전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다수의 보수 언론이 밴스 띄우기에 나섰다. 반면 월즈는 자신이 가지도 않았던 천안문 시위 현장에 있었다고 말한 사실이 들통나 정직하지 않은 인사라는 인식이 퍼졌다.

JD 밴스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 겸 상원의원(왼쪽)과 팀 월즈 민주당 부통령 후보 겸 미네소타 주지사는 지난 1일 뉴욕에서 CBS방송이 주관한 부통령 후보 간 TV토론에 참여했다. /AFP=연합뉴스
JD 밴스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 겸 상원의원(왼쪽)과 팀 월즈 민주당 부통령 후보 겸 미네소타 주지사는 지난 1일 뉴욕에서 CBS방송이 주관한 부통령 후보 간 TV토론에 참여했다. /AFP=연합뉴스

물론 부통령 후보 토론은 큰 영향력을 가지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 후보의 선전 여부다. 월즈와 밴스에 대한 이런저런 논란이 가라앉자 여론의 눈은 해리스에게로 향했다. 왜 그는 인터뷰를 피하는가에 대한 설왕설래가 한창이었다. 실력이 없다거나 용기가 없기 때문일 것이라는 예측이 파다했다.

여론의 압력 때문이었는지 해리스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 열심히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인터뷰에서 보여준 모습은 실망을 넘어 경악을 자아내기까지 했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인터뷰를 준비할 때도 예상 질문을 뽑아 답을 추리고 몇 번 예행연습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해리스의 인터뷰는 제대로 준비했는지 의심될 정도로 답변에 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선 10월 초에 해리스는 ABC 방송사의 토크쇼인 '더뷰'에 초청됐다. 여기서 그는 "지난 4년간 할 수 있었다면 바이든 대통령과 달리 할 수 있었던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심중에 떠오르는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말해 충격을 주었다. 

물론 바이든 행정부의 일원으로서 현직 대통령의 정책에 어깃장을 놓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이 인간인 이상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해리스의 이 말은 바이든이 하나의 흠결도 없이 완벽하게 업무를 수행해 왔거나 그가 바이든 행정부의 업무 수행 실적에 대하여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말밖에 안 된다.

트럼프 진영은 이 인터뷰 내용을 선거 광고에 포함해 엄청난 횟수로 송출했다. 이 시점이 아마도 해리스 후보가 본격적으로 비틀거리기 시작한 때였을 것이다. 이 인터뷰는 해리스의 지적 능력에 의구심을 품고 있던 사람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해리스 후보는 이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지난주에는 보수의 본산과 마찬가지인 폭스뉴스 인터뷰에 뛰어들었다. 인터뷰 진행은 브렛 베이어 앵커가 맡았다. 그는 냉정하고 공정한 진행자로 어느 정도의 평판이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날 베이어의 진행은 매우 공격적이고 무례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해리스에게 불리했다.

그는 해리스가 말하는 동안 수십 차례 중간에 말을 끊었고 답변이 끝나기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난 뒤 진보 언론은 베이어의 이런 진행에 문제가 많았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해리스가 이날 인터뷰를 잘했다고 보도한 언론은 극소수였다. 해리스가 이날 인터뷰를 망친 것은 베이어의 편향된 진행 탓으로 몰고 갔다.

물론 베이어의 질문은 공격적이었고 표정과 말투에도 날이 서 있었다. 하지만 답변하는 해리스의 태도에는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는 베이어의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제대로 답변하려 하지 않았다. 질문 자체에 답변하는 게 아니라 에둘러서 장황하게 말을 이어가기 일쑤였다. 

또한 대부분의 질문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얘기하지 않고 과거 트럼프가 얼마나 잘못했는지만 파고들었다. 더불어 현재 트럼프가 얼마나 불안정한 사람이고 신뢰하기 어려운 인물인지 역설하는 데 집중했다. 질문자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지난 16일 해리스는 보수의 본산인 폭스뉴스 인터뷰에 참여했다. /폭스 유튜브 채널=연합뉴스
지난 16일 해리스는 보수의 본산인 폭스뉴스 인터뷰에 참여했다. /폭스 유튜브 채널=연합뉴스

해리스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책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유권자는 인터뷰를 보면서 후보의 정치 철학이나 미래 청사진 그리고 비전에서 영감을 얻길 원한다. 그를 통해 그 후보를 지원하고 투표장에 나간다. 이날 해리스에게서는 어떤 철학이나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그는 후보로서 바이든보다 더 나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참다못한 베이어가 트럼프 후보의 결점이 아니라 후보 본인의 정책과 비전에 대한 얘기를 듣기 위해서 모신 것 아니냐는 투로 말해야 했다. 그런데 해리스 후보의 답변은 상상을 초월했다. 웹사이트 페이지를 알려 주면서 거기에 가면 80 페이지짜리 경제 공약이 있으니 살펴보면 될 것이라 답한 것. 시청자는 마치 상업광고를 듣는 것 같은 굴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해리스의 이날 인터뷰는 몇백만 가구가 시청했고 유튜브 영상도 수백만 회 조회됐다. 이 인터뷰로 해리스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이후에도 NBC, CNN 등과 연이어 인터뷰했지만 실망감만 키웠다. 결과적으로 해리스의 실책이 트럼프가 승기를 잡게 했다.

트럼프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자 관련 주식이 들썩였다. 또한 채권 금리가 치솟고 달러 가치도 급등했다. 시장은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를 기정사실화하고 집권 이후 불확실성을 반영하고 있다. 트럼프의 경제 공약이 현실화할 경우 물가는 상승 압박을 받고 금리도 고공 행진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역시 트럼프 리스크에 진지하게 대비해야 할 때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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