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해미백일장 박영희 님 출품작

근무하는 요양원까지 걸어서 출퇴근한다. 40분 정도 걸리니 걷기에 딱 좋은 거리라고 지인들은 말한다. 사계절을 지내며 느끼는 감정들은 예전에 다녔던 직장과는 차이가 크게 난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밤늦게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지만 요양원에서 일하고부터는 시간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어 좋았다.
평일에 쉴 수가 있고 휴무일 때는 가보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다는 점이 아주 좋아 항상 감사를 느끼곤 한다.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마음으로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방문 요양을 1년 5개월 하다가 지금 근무하는 요양원으로 이직하였다.
방문요양과 다르게 시설에서의 근무는 동료들과의 협업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는 게 쉽진 않았다. 적지 않은 실수로 어르신들을 돌보는 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선배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입사한 첫해에는 몸에 체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어르신들께서 무탈하시기를 출근 때마다 기도하기도 하였다.
기억에 남는 어르신들은 많지만 그중에 나와 같은 성씨를 가진 어르신이 계셨는데 내 나름대로 신경을 좀 더 쓰신 분이셨다.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욕설을 찰지게도 하셨으며 할퀴고 꼬집고 발로 차기도 하시고 약 드시기를 싫어하셔서 혀 밑에 감추어 요양보호사 보지 않을 때 뱉어내기도 하는 분이셨다.
7개월가량을 일하다가 다른 층으로 이동할 즈음에 어르신께 잘 계시라는 인사를 하니 “그동안 수고했제. 고맙다”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눈물이 살짝 나온 적도 있었다. 치매가 있어도 24시간 내내 치매가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 실감이 나기도 했다.
친정어머니도 뇌경색으로 10년을 병원에 계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가끔 엄마를 보러 병원에 갈 땐 힘들고 더러운 걸 치우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 힘들고 사람들이 꺼리는 일을 선택하여 일을 해보니 아픈 사람을 누군가가 돌봐야 하고 경제활동을 쉬어야 하는 나이지만 새롭게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아주 큰 것 같다.
마음만 먹으면 늦은 나이까지라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 지인들에게도 권하여 현역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물론 자격증을 따놓고도 사용하지 않는 수가 많지만 중장년층의 경제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
목욕 당번이 있던 어느 날엔 낯이 익은 어르신을 만나게 되었다. 방문요양에서 만났던 어르신이셨는데 1년이 지나서 만났지만 어르신께선 알아보질 못하고 따님 이름을 대어 말씀을 드리니 OO를 아느냐고 말씀하셨다. 잘 알고 있다고 하니 그제야 웃으시며 좋아하셨다. 어르신께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셔서 수시로 여러 노래를 부르곤 하셨는데 그중에 '고장 난 벽시계'를 자주 부르셔서 저도 배워서 어르신 앞에서 불러보기도 하였다.
지난봄에 어르신들의 몸무게를 재는 날이 있었다. 앉으면 자동으로 몸무게가 체크되는 거였는데 기계가 잘 되는지 먼저 앉아보라는 동료의 말에 몸무게를 재어보니 65kg이 나와서 순간 부끄러웠다. 건강검진에서도 과체중의 확인 체크가 되었지만 항상 대수롭지 않게 생활하다 공개적으로 몸무게를 재어보니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동료들은 대체로 날씬한 편이었다. 큰마음을 먹고 먹는 걸 조절하고 커피, 빵, 떡, 과자 등 탄수화물이 많은 식품을 3개월 끊어보니 몸무게의 앞자리 숫자가 5로 시작되면서 내려올 때의 기쁨이란!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즐겁게 직장생활에 임하고 있다. 몸무게가 바뀔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신 이사장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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