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해미백일장 유현주 님 출품작

혼자 적적하게 지내시다 우울증과 경증 치매로 요양원에 입소한 어르신이 계셨다. 겉으로는 미소를 보이시지만 지나온 세월의 아픔과 노년의 무기력감으로 힘드신 것 같았다. 어르신은 유독 꽃을 좋아하였다. 방에 꽃 화분을 하나 놓아드리니 꽃 가꾸기에 관심과 열정을 보이셨다.
일상에 적응을 하실 때쯤엔 화단에 꽃과 채소를 심으실 수 있도록 하였고 화단을 열심히 가꾸시는 어르신 덕분에 요양원에 오고 가는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셨다.
늙은 호박을 같이 수확하여 호박죽도 해 먹고 깻잎을 따서 반찬으로 만들어 먹기도 했다. 어르신은 본인의 역할이 생겨 좋으신 듯했다. 그 사이 어르신은 마음을 여시고 많이 밝아지셨다. 어르신과 나는 7년의 봄을 함께 보냈다. 돌보는 자, 돌봄을 받는 자 이상의 특별한 친밀감이 생겼다.
나는 우리 할머니에게도 해주지 않았던 것들은 시설에서 하게 되는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일은 요양 보호사다. 내 부모님, 가족 같은 마음으로 해야 한다. 이 일을 가식적으로 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어르신에게는 우리 할머니 내음이 났다.
“빨리 시집가. 내가 가서 축하해 줄게. 애기 낳으면 포대기도 사주고.”
“그럼요 어르신! 신랑 될 사람도 직접 보셔서 괜찮은지 아닌지도 봐주시고 오셔서 국수도 드시고 새집으로 이사 가면 팥죽도 해드릴게요.”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이 왔다. 어르신도 코로나에 걸리셨다. 보호자 아니면 면회가 되지 않아 어르신 자녀분들과 함께 카네이션을 들고 면회를 갔다. 침상에 누워계시는 어르신은 오랜만에 보는 나를 보고 눈을 떠 주셨고 내 손을 잡아주셨다. 나를 알아봐 주셔서 감사하고 눈물이 났다.
“빨리 쾌차하세요. 기운 차리면 같이 꽃구경 가요. 그리고 할머니 저 결혼해요. 결혼식 가시려면 기운을 차리셔야 해요!”
어르신의 자녀들은 “우리 자식들 보다 나아요. 엄마가 눈을 안 뜨고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오늘은 선생님을 보고 인사도 해주고. 우린 잘 보지도 않네요. 선생님도 엄마에겐 자녀예요. 우리 가족.”
2주 뒤에 어르신은 우리의 곁을 떠나셨다. 어르신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나는 보호자님께 포토 북과 동영상을 만들어 드렸다. 그리고 나는 가을에 결혼을 했다. 어르신이 그렇게 결혼하는 걸 보고 싶어 하셨는데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보호자님들과의 인연이 이어졌다. 내 결혼식에 할머니를 대신해 보호자님들이 방문해 축하해 주신 거였다. ‘인연이 이렇게도 이어질 수 있구나’ 생각하며 어르신께 감사했다. 어르신과의 작은 인연으로 시작되어 이제는 가족 분들과 가끔 안부를 묻고 어르신이 계신 곳을 찾아뵙는 특별한 인연이 되었다.
많이 보고 싶다. 우리 할머니. 가끔 꿈에 편안히 계셔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