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해미백일장 해미 사랑상 윤혜숙 님 수상작

세월 앞에 장사 없어
가난한 살림 일으키고 자식들 안 굶기고 속 고쟁이를 팔아서라도 공부는 시켜야겠기에 험한 일 마다하지 않던 그 시절이 언제였던가. 이젠 뼛골 다 빠져 육신은 쪼그라들고 정신은 사그라든 어르신. 진자리 마른자리 새끼들 키울 때는 똥을 싸도 오줌을 싸도 그냥 이뻤겠지만 어르신의 기저귀는 어느 자식이 달가워할까.
자식이 상전이라 아무 말 하기 눈치 보며 요양 보호사 오기만을 기다려 현관문 쪽으로만 귀를 세우신다. 베란다 건조대에는 똥 덩어리 철떡 붙은 속옷을 빨았다는 착각으로 널어놓으시고 어제 비워 둔 쓰레기통에는 영락없이 알약 몇 개가 버려져 있다.
드셔야 할 약을 늘 쓰레기통에 버리신다. 식사는 잘하셔도 움직이는 건 싫어하셔서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비 오기 전에 더 추워지기 전에 바람 좀 쐬러 나가자면 그런 소리 하려거든 우리 집에 오지 말라면서 화를 엄청 내신다.
나도 꾀를 낸다. 쓰레기 버리는 곳이 어딘지 알려달라 하면 신기하게도 열이면 열 번 마다않으시고 선뜻 나서신다. 그나마 다행이고 절호의 찬스다. 나온 김에 햇볕도 쬐고 일부러 먼 길 돌아 걸음을 더 걷게 해드린다. 오래전에 부르던 노래는 가사를 잘도 기억하시어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오동추야 닭이 밝아 오동동이야. 누이동생 혜숙이야 행복하게 살아다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노래 부르실 때의 표정은 언제나 맑음이다.
아들과 며느리의 얼굴은 낯설면서도 요양보호사의 얼굴은 반가워 현관문 들어서면 방실방실 웃으며 손짓까지 하신다. 내가 뭐라고 이토록 날 기다리실까 감사하고 기분 좋게 하루의 케어를 시작한다. 목욕시켜 침대에 눕히고 이불 끌어 턱 밑까지 바짝 덮어 드리면 함박꽃웃음 지으며 세상 행복한 표정이다. 이 꽃을 내 어찌 외면하랴. 내 기억의 갤러리에 오래도록 저장해 둘 참이다.
땀에 젖어 지친 몸과 마음에 고갈된 에너지를 다시금 채우는 활력소가 되리라. 간혹 나의 땀방울이 대상자와 보호자에게 도움이 되기는 되는 걸까. 문득문득 생각해 본다. 변 실수 처리를 일사천리로 척척 해낼 때 내 역할을 제대로 제공한다는 자부심이 들어 가슴 뿌듯해진다.
어르신의 머릿속 지우개는 옛 시절 기억만은 또렷이 남겨두어 어린 시절과 젊었을 적 똑같은 이야기를 처음인 양 수 없이 반복하신다. 하루 세 번씩만 잡아도 10여 년이면 천 번을 들은 셈이다. 내 귓가에는 어르신의 추억이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 잡고 있다.
옛날 장터에서 구경 재미나던 ‘동동구루무’의 정서와 개울가 빨래터의 척척 방망이 소리 추억은 동시대를 살아온 노노(老老) 케어만의 유익한 소통 거리다. 옥에도 티가 있어 정겨운 얘기 속에는 귀 틀어막고 안 듣고 싶은 얘기도 있다. 이웃 사람의 뱀 잡아먹은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몸서리쳐진다.
뱀을 어적어적 씹어먹으면 뱀의 꼬랑지가 꾸불텅하더라는···. 이 징글징글한 이야기 역시 처음인 양 매일 하신다.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다. 그 와중에도 고마운 건 돈이 없어졌다고 내가 아닌 딸을 의심하는 거다. 병원에서 투석하는 동안 딸이 와서 돈을 훔쳐 간다고 생각하신다. 돈주머니 사 오라 하여 염낭 주머니 사다 드리니 허리춤에 차고 좋아하신다.
어르신의 머릿속 지우개가 자꾸 하얗게 지우는지 낮잠 주무시다 말고 여기가 어디냐 묻고 날 보고 누구냐 물으신다. 배우자 사망하시어 자녀분들 북적대며 며칠간 다녀가도 순간 기억이 하얘지셨는지 “선상님. 우리 집에 먼 일 있어요? 와 아덜이 마카 왔다 가요?” 물으신다. “할아버지 장례 치르느라고요.” 대답한다. “얄궂기도. 내가 먼저 갈 줄 알았는데 할배가 먼저 가노야, 참마로 얄궂제.”
그믐달만큼이나 핼쑥한 어르신의 얼굴. 잡아드린 손목에서는 팥 주머니 소리 자그르르 속 울음 울고 요양보호사의 무릎관절 콩 주머니 소리가 민망스럽다. 뜸북새 울 때 말 대신 비행기 타고 외국 나갔던 우리 오빠가 귀뚜라미 울 때 돌아와 비단 구두를 못 사 왔다면서 대신 용돈을 주셨다. 이 좋은 우리 오빠 용돈을 어떻게 하면 빛이 나게 쓸 수 있을까?
궁리 끝에 요양 보호사 교육을 받는 데 썼다. 나이 대비 좀 늦긴 했어도 ‘노노(老老) 케어’란 단어에 마음 끌려 선택했지만 현실에 엄두가 안 나 자격증은 화장대 서랍에서 수년을 빈둥거렸다. 어떤 계기로 데리고 나와 근무 시작한 지 어언 10여 년이 코앞이다. 똥 기저귀 만지는 일이라고 천대하는 경향이 있지만 일하고 싶어도 자격증 없어서 일 못 하는 이들의 질투와 시기일 뿐이지 노을 지는 나이에 어디 가서 무슨 일인들 수월하랴.
국가가 인정해 주는 전문직 자격증 자부심에 눈뜨는 아침이 이렇듯 생기로운 걸 원거리 운행에 숨이 가쁜 나의 애마가 안쓰럽기는 해도 정년도 없이 눈부시게 활약하는 내가 대견하고 멋스럽다. 동시대의 정서와 음식문화의 소통이 잘 되는 ‘노노(老老) 케어’ 이 숭고한 일터에 우뚝 설 수 있도록 날 불러주시는 어르신들과 보호자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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