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인에 특화된 실버타운
평균 75세 액티브 시니어 중심
보증금 증액형 할인, 생활비 절감
돌봄 수요 위한 운영 방향 모색

# 국책 연구기관에서 평생을 보낸 채모 씨(74). 퇴직 후에도 논문을 손에서 놓지 않던 그는 혼자 사는 집이 점점 불편해졌다. 동료들과 토론하고 남은 지식을 나눌 수 있는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
평균 연령 75세, 자산은 있지만 고정 소득은 줄어든 액티브 시니어. 그들이 선택한 노년의 주거 대안은 '사이언스빌리지'다. 은퇴한 과학기술인이 연구와 강연, 취미 활동을 이어가며 자립적 노후를 설계하고 있다.
국내 유일 과학기술인 특화 실버타운인 이곳은 최근 입주율 90%대를 향하며 안정 궤도에 올랐다.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다. 다양한 전문직 출신 입주자들이 자발적으로 재능 기부 강연을 열고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음악 박사학위를 취득해 음악 동호회를 주도하고 청소년 대상 지역 과학강연 행사에 나선다.
생활비 절감을 위한 보증금 증액형 할인 제도는 자산 활용 기반의 새로운 생활 안정 모델로 작동하고 있다. 다만 일상 돌봄이 필요한 입주자도 늘면서 시설 내 케어형 구조 마련이 운영 측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29일 여성경제신문과 만난 김형철 사이언스빌리지 대표는 정부의 실버타운 제도화 방향에 대해 "시설별 특성에 맞게 효율적 운영이 되도록 자율에 맡기되 입주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ㅡ2024년 4월 사이언스빌리지 대표로 취임했다. 어떤 계기로 이 역할을 맡게 됐나.
"과학기술인공제회 회원 사업 본부장을 맡았던 시절부터 사이언스빌리지 건립과 인수, 운영 준비 전반을 관리했다. 이후 현장 안정화를 위해 지난해 4월 대표로 부임했다. 사이언스빌리지는 은퇴한 과학기술인이 전문성을 이어가며 보람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국가와 민간이 함께 조성한 주거시설이다. 운영 주체인 과학기술인공제회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으로 과학기술인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을 수행한다."
ㅡ입주 대상과 커뮤니티 운영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나.
"입주 자격은 은퇴한 과학기술인 또는 현직 과학기술인의 부모로 제한된다. 은퇴 후 삶과 현직자의 연구 전념을 동시에 지원하려는 설립 목적과 직결된다. 평균 연령은 75세이며 파크골프, 서예, 악기, 연구도서관 등 다양한 활동 프로그램과 취미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연구도서관은 입주자 기증 도서와 신간 교양서로 구성돼 자체 연구와 강연자료 작성에도 활용되고 있다."

ㅡ입주자들의 자발적 커뮤니티 운영이 활발하다고 들었다.
"은퇴한 과학기술인들이 개별 소속 기관에서 활동을 이어가거나 직접 관심 분야를 탐구하며 강연·동호회 등을 주도한다. 은퇴 후 음악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입주자가 음악 동호회를 이끌거나 지역 청소년과 학부모 대상 과학 강연을 진행하는 입주자도 있다. 이처럼 자체 기획 중심의 재능 기부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ㅡ현재 입주율과 퇴소율은 어떻게 파악되고 있나. 주로 어떤 사유로 퇴소하며, 운영자로서 주목하고 있는 이탈 요인이 있다면.
"6월 기준 입주 세대는 209세대로 입주율 87%, 계약률은 92%에 달한다. 연간 퇴소율은 약 12.5% 수준인 15세대 내외로 추정된다. 올해는 현재까지 5세대가 퇴소했다. 퇴소 사유는 건강 악화로 인한 전문 돌봄 시설 전원이 가장 많다.
사이언스빌리지는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시설 배치로 케어가 필요한 시니어는 전원하도록 상담하고 있다. 입주자들은 전원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케어서비스 도입을 요구하고 있으나 시설 구조상 어려움이 있다. 향후 자사가 더 많이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다."

ㅡ요양 전 단계의 '중간 케어 수요'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운영자로서 어떤 점을 가장 고민하고 있나.
"액티브 시니어 중심으로 설계됐지만 일부 입주자는 일상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다. 돌봄 수요가 있는 입주자와 건강한 입주자가 함께 생활하면서 건강한 입주자에게 정서적·물리적 부담이 발생한다. 하지만 시설 구조상 생활 공간을 분리하기 어려워 혼재가 지속되고 있다.
정부 부처 관계자는 방문요양 연계를 언급하지만 이는 건강한 예비 입주자의 진입 장벽이 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 입주 결정 시 가장 먼저 보는 것이 기존 입주자들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중간 단계 고령자에 대한 운영 방향성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ㅡ기본 임대형 구조에 보증금 증액형 옵션도 운영하고 있다. 도입 배경과 입주민 반응이 궁금하다.
"입주자 생활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개원 초기부터 도입한 제도다. 과학기술인이라는 입주자 특성과 기존 주택 임대 관행을 고려해 설계됐다. 입주 세대 중 66%가 보증금을 증액하고 있다. 증액된 보증금에 대해서 과학기술인공제회 회원 지급률로 생활비를 할인해 주는 제도다. 회원 지급률은 6월 기준 4.25%로 시중은행 금리보다 1~2% 이상 높게 설정돼 있다. 투룸 기준 보증금을 추가 납입하면 관리비 부담이 거의 없을 정도로 할인된다.
많은 입주자가 여유 자금을 은행 대신 시설에 증액 보증금 형태로 예치하고 있다. 특히 증액 및 감액에 따른 페널티가 없어 일반 예금보다 자유롭게 자금을 넣고 빼는 구조라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다. 일부 입주자는 이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운영 측면에서는 자금 관리에 다소 부담이 있지만 입주자에게는 매우 유리한 방식이다."

ㅡ지난해 정부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 발표 등 실버타운 제도화 논의가 늘고 있다. 현장 운영자로서 어떤 방향을 제안하나.
"노인복지주택은 설치 이후의 운영 역량이 공급만큼 중요하다. 과거 초기 분양에 따른 문제, 분양 이후 운영에 따른 문제, 수분양자의 재산권 행사 방법에 따른 문제 등 다양한 시행착오가 있었다. 이러한 전철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노인복지주택을 공공재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입주 후 케어'를 보완하자는 일부 제안에 대해선 신중할 필요가 있다. 액티브 시니어 중심의 시설에 돌봄 수요가 섞이면 건강한 입주자가 도움을 줘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등 시설 본래 목적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영은 시설별 특성에 맞게 효율적 운영이 되도록 자율에 맡기되 입주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입주보증금 지급보증 기준 △표준 입주계약서 △운영 인력의 자질·교육 요건 △운영 중단 시 손해배상 제도 △보험제도 등 현실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운영 자체에 과도한 제약이 가해질 경우 사업이 위축될 우려가 크다."

ㅡ사이언스빌리지 경험을 바탕으로 정책 설계에 조언하고 싶은 부분은.
"노인복지주택은 입주 이후 건강 등 다양한 이슈에 직면하게 된다. 설치 단계부터 액티브 시니어 공간, 케어가 필요한 공간, 요양이 필요한 공간 등 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도 설계 과정에서 운영에 대한 기준도 포함돼야 한다. 과도한 규제는 운영을 획일화시킬 수 있으므로 다양한 방식이 유연하게 도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민간사업자의 경우 설치 이후 운영이 소홀해지는 사례도 있었기에 안정적인 장기 운영이 가능하도록 법령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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