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희 천안실버타운 원장
개인이 설립해 13년 운영
분리 구조로 돌봄 수요 대응

"장기요양등급이 없는 어르신이 갈 곳이 없었어요. 병원이 아닌, 일상생활이 가능한 집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죠. 그렇게 실버타운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충남 천안에는 법인이 아닌 개인이 50~60세대 규모의 유료양로시설을 직접 운영하는 곳이 있다. '천안실버타운'과 '뉴천안실버타운'이다. 두 시설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 있지만 기능은 다르다.
뉴천안실버타운은 비교적 건강한 어르신들이 거주하는 자립형 공간, 천안실버타운은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위한 케어형 공간이다. 천안실버타운에는 주간보호센터가 병설돼 새로운 복합 모델을 구현한다.

두 시설은 7월부터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며 유연한 단계별 케어 시스템을 도입한다. 뉴천안실버타운 거주자 중 인지 저하를 겪는 어르신이나 경증 요양자는 아침에 주간보호센터로 이동해 낮을 보내고, 저녁엔 다시 방으로 돌아간다.
일부는 케어홈 천안실버타운에 입소해 식사부터 수면까지 모두 내부에서 생활하게 된다. 전체 입소자 중 약 20명은 거동이 불편하거나 인지 저하 증상이 있는 어르신들로, 일정 인원씩 케어홈로 연계될 예정이다. 케어홈과 주간보호센터를 통합적으로 운영하면서 입주자의 신체 기능 변화에 따른 연속적 케어가 가능해졌다.
3일 여성경제신문과 만난 김진희 원장은 "주거와 돌봄을 통합한 커뮤니티케어의 실천"이라며 "실버타운을 삶의 터전으로 여기는 어르신에게 마지막까지 머무를 수 있는 집다운 공간을 제공하며 외로움과 사회적 단절을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 목표"라고 말했다.

ㅡ요양시설을 먼저 운영했다. 개인이 유료양로시설을 직접 짓고 운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2008년 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되면서 요양 등급이 없는 어르신들이 요양원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당시엔 수급자와 비수급자가 같이 지내는 양로원 형태로 운영했다. 제도 변화로 등급을 받지 못한 어르신들이 머물 수가 없게 된 거다.
그래서 2012년 천안 시내에서 양로시설을 임대해 30명 규모의 실버타운을 시작하게 됐다. 단층 구조라 어르신들이 생활하기 편했고 실제로 6개월 만에 정원이 다 찰 만큼 수요도 있었다.
하지만 건물주와의 갈등으로 퇴거하게 됐다. 입주한 어르신들이 피해를 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자비로 부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지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운영을 이어오고 있다."

ㅡ케어형 실버타운을 추구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일상생활이 가능한 어르신들이 존엄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노인성 질환이 있다고 모두 병원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요양병원에서 국가가 부담하는 월 180만~200만원의 의료비를 생각하면 실버타운 중심 주거복지 모델이 확대돼야 의료재정도 절감되고 어르신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제도화와 공적 관리 장치가 함께 필요하다."
―현재 입주자 특성은 어떠한가.
"일정 수준 자립이 가능하고 한 달 300만원 정도 소비 여력이 있는 중산층 어르신 중심이다. 월 생활비는 220만~250만원 선이다. 복지는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지속 가능한 구조도 함께 고민해야 했다. 처음에는 어려운 형편의 어르신들을 많이 모셨지만 생활비를 제때 못 내거나 가족 연락이 끊기는 일이 발생하면서 운영 자체가 무너질 수 있겠다는 위기를 느꼈다. 복지를 하되 어떤 기준과 선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ㅡ천안·뉴천안실버타운의 단층형 구조가 돋보인다.
"모든 거주자가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갈 수 있다. 어르신들은 계단 하나에도 갇힐 수 있다. 2층 구조에서는 이동이 불편해 방 안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지만 1층은 문만 열면 누구든 마당으로 나갈 수 있다. 치매가 있어도, 휠체어를 타도 햇볕을 쬐고 흙을 밟으며 자연과 연결된 삶을 지속할 수 있다. 그런 일상이야말로 노인에게 가장 기본적인 복지다."

―케어홈과 주간보호센터를 도입한 배경과 운영 방식은.
"어르신을 끝까지 한곳에서 모시기 위해서다. 입소한 어르신의 건강 상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변한다. 건강할 때 입주했지만 요양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다른 시설로 옮기게 되는 현재 구조는 너무 가혹하다. 그래서 시설 안에서 끝까지 머무를 수 있는 연계 구조를 고민했고 케어홈과 주간보호센터가 그 해법이 됐다.
요양 등급자 중 외부 활동이 가능한 분들은 아침에 주간보호센터로 출근하듯 이동하고 저녁엔 퇴근하듯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체계적인 프로그램 중심의 주간케어를 운영하고 시장 보기나 카페 나들이 등 이틀에 한 번 이상 외부 활동도 병행해 사회성과 활력을 유지하도록 설계했다.
주간 보호와 케어홈 이용자는 함께 프로그램을 하며 자연스럽게 섞인다. 휠체어를 밀 수 있는 정도의 어르신이 생활 속 도움을 주는 색다른 '노노(老老)케어'도 시도 중이다. 그 과정에서 주간 보호 어르신들은 '나중에 내가 건강이 안 좋아져도 저렇게 지내면 되구나'하며 정서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또 물을 떠주는 수준의 도움이라도 역할 감을 느끼게 하며 운영진이 상품을 제공해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ㅡ어르신들이 이곳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는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인가.
"원장이 같이 산다는 점이다. 5년째 이곳이 집이다. 본관 아래 허름한 방에서 살며 실제로 생활하고 있다. 어르신들과 매일 얼굴을 마주한다. 반나절만 안 보여도 "원장님 오랜만이네"라고 말씀하실 정도다.
집이다 보니 복장도 자연스럽고 편하다. 가끔 외출 후 돌아오면 어르신들이 "어젯밤엔 어디 갔어?"라고 물으실 정도로 늘 함께 있는 존재로 받아들인다. 입주 어르신 50~60명 모두와 친분이 깊고 서로 챙기며 지낸다. 때론 미운 사람이 있어도 그것 또한 사람 사는 공동체의 자연스러운 일이다."

ㅡ실버타운을 운영하려는 자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수익을 기대하고 실버타운을 시작할 거라면 애초에 하지 않는 게 맞다. 어르신을 향한 진심 없이 돈만 보고 들어오는 순간 실버타운은 오래가지 못한다. 저는 어르신이 안쓰러운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고 그게 제 자존심이다.
외부 자금이나 펀드가 들어오며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실버타운은 끝까지 책임질 주체가 있는지가 관건이다. 빚을 지더라도 자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돈이 남는 사람'이 복지 의지로 시작해야 가능한 구조다. 다만 전적으로 개인의 의지에만 맡겨선 안 된다.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유지보수비 지원 등 인센티브가 제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공공이 정책적으로 보완해 줘야 실버타운이 지속 가능한 구조로 갈 수 있다."

ㅡ케어형 실버타운의 활성화를 위해 국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홀로 아파트에 사는 어르신들이 많다. 요양원 가기에는 이르고 완전히 건강하지도 않은 분들이다. 이런 어르신들을 위한 시설이 꼭 필요하다.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일정 수준의 케어가 필요한 분들을 위한 '시설형 실버타운'이 더 늘어야 한다.
이런 구조가 지속되려면 결국 지자체나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 좋은 위치에 있는 시유지나 국유지를 민간에 임대하거나 건축비를 지원하는 등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 지금처럼 땅부터 건물, 운영까지 모든 부담을 민간에 떠넘기면 절대 오래갈 수 없다.
최소한 절반은 국가는 짊어지고 운영 자격과 마인드를 갖춘 사람에게 맡기는 방식이면 된다. 그렇게 한다면 실버타운이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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