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자회사에 대한 국내 상법 적용 확인
주식배당 통한 상호주 회피 시도 무산
속인주의 해석 굳어지며 입법 가능성도

3월 28일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에서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고 있다. /고려아연
3월 28일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에서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고려아연 주주총회 직전 해외자회사 지분율 복원이 경영권 향방을 갈랐다. 영풍 측은 기습적인 주식배당으로 SMH의 의결권 제한을 무력화하려 했으나 SMC가 배당으로 받은 주식을 다시 SMH에 넘기면서 10% 이상 보유 요건이 회복됐고 상호주 의결권 제한 규정이 주총 기준시점에 맞춰 다시 적용됐다. 결정적인 시점은 주총 시작 6분 전이었다.

30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고려아연보다 하루 앞서 주주총회를 개최한 영풍은 주식배당을 단행해 전체 발행 주식 수를 늘렸다. SMH의 자회사인 SMC는 해당 배당을 통해 고려아연 지분을 배정받았고 이로 인해 SMH의 보유 비율은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밤사이 SMC는 배당받은 주식을 다시 SMH에 넘겼고 SMH는 상호주 10% 이상 요건을 다시 맞췄다.

이 구조는 ‘비모자회사 간 상호의결권 제한’에 해당하며 상법상 주총 직전 시점을 기준으로 규제 요건 충족 여부를 판단한다. 하루 전 법원은 SMH가 주식회사이므로 상호주 규제 대상이라는 판단을 내리며 영풍이 낸 의결권행사 허용 가처분을 기각했다.

최 회장 측이 지분율을 복구한 시점은 이튿날 주총 시작 6분 전인 오전 8시54분이었다. 고창현 고려아연 측 변호사는 "회사가 (SMH 쪽으로부터) 받은 잔고증명서 발급 시점이 주총 시작 9시 전이므로 영풍의 상호주가 형성돼 (영풍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 판단은 자회사 국적이 아닌 법적 형태와 실질을 기준으로 상법 적용 여부를 결정한 사례다. 같은 호주법 기반이라도 유한회사인 SMC에는 규제가 적용되지 않았고 주식회사인 SMH에는 규제가 적용됐다. 결과적으로 해외 자회사에 대한 규제는 속지주의가 아닌 속인주의 원칙에 따라 판단된다는 해석이 굳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주총에서는 이사 수 상한을 19명으로 제한하는 정관 변경안 등 최윤범 회장 측이 상정한  안건이 대부분 통과됐다. 고려아연은 임기가 만료된 박기덕 대표이사 사장을 비롯해 후보로 나선 5명이 모두 선임됐다. MBK·영풍 측은 국민연금과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가 반대 의견을 낸 김광일 MBK 부회장, 강성두 영풍 사장을 비롯해 3명이 이사회에 새로 진입했다. 이에 따라 최 회장 측 11명 영풍·MBK 4명 구도로 재편됐다.

영풍·MBK 연합은 주총 직후 즉시항고와 효력정지 신청을 예고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상호주 조항을 방패 삼아 주주의 권리를 제한한 전형적 자본시장 왜곡"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고 변호사는 "법원 가처분 결정에 대한 불복은 그 결정의 효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며 "주식 취득 직후 영풍에 별도 통지를 한 것으로 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사례는 해외 자회사가 모회사 지분을 보유한 경우에도 국내 상법상 의결권 제한 규정이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판례로 남게 됐다. 상법의 취지인 자본충실성과 주주 보호 원칙을 법원이 재확인한 셈이다.

다만 이러한 해석이 만약 국적 중심의 속지주의 방식으로 이뤄졌다면 영풍의 의결권 제한은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을 수 있다. 형식상 외국법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규제를 면제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면 주주평등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따랐을 가능성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결정은 법적 모호성을 일정 부분 해소했지만 동시에 ‘형식의 합법성’만으로 주주 권리를 제한한 전례라는 점에서 향후 입법 논의로 이어질 여지도 남겼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본지에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해외자회사에 대한 외감법 적용 범위 확대 등 규제 강화를 골자로 한 입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며"자칫하면 국내 기업 규제가 국경 밖까지 확장되는 셈이라 또 다른 형태의 반기업 신호로 비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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