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충수된 '의결권 없는 주식' 수조원 매입
공개매수 전쟁 실패, 천문학적 단기차입금
애물단지 석포제련소 좌초자산 처리 필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1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고려아연 기자회견에서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1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고려아연 기자회견에서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려아연이 유상증자를 철회하면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 3~4% 우호 지분을 얻을 것으로 기대됐던 최윤범 회장의 지배력이 약화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영풍과 손잡은 MBK파트너스 역시 이사회를 장악해도 '승자의 저주' 독배를 마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공개매수를 통해 취득한 소각 대상 자기주식을 제외한 발행주식 전체의 20%에 육박하는 보통주 373만2650주를 주당 67만원에 일반 공모 형태로 신규 발행하겠다는 유상증자 계획을 철회했다.

최윤범 회장은 고개를 숙였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기자회견에서 그는 "겸허한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사과한다"며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 소액주주 보호와 참여를 위한 방안을 추진해 주주와 시장의 목소리에 더욱더 귀를 기울이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유상증자 성공 시 3~4%의 추가적인 우호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던 최윤범 회장 측은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공시한 이후 시장 상황 변화에 대해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 등의 우려가 있었고, 금융감독원으로부터의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 등이 있었다"며 철회 배경을 설명했다.

MBK파트너스의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가 공시한 고려아연 지분은 39.83%로 파악된다. 의결권 없는 자사주·재단 소유 주식 등을 제외하면 MBK·영풍 연합이 단독으로 보유한 의결권 지분(45.42%)과 최 회장 측 우호 지분(39.5%) 차이는 5%포인트대로 파악된다.

단순투자 목적인 국민연금을 확실한 백기사로 단정할 수 없는 가운데 그동안 '우군'으로 분류됐던 한국투자증권의 이탈로 우호 세력 포함 지분이 더욱 줄었다. 이에 더해 ㈜한화가 고려아연과 상호주(相互株) 형성 관계를 해소한 점과 고려아연 기타상무이사인 김우주 현대차그룹 본부장이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볼 때 격차는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최윤범 회장 입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공개매수를 통해 확보한 자사주 지분( 9.85%) 소각으로 분모가 작아져 MBK·영풍 연합 측의 단독 보유 지분율이 극단적으로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다. 현재로선 14명의 신규이사 선임을 위한 MBK측 과반 확보는 확실해 보이며 자칫하면 주주총회 특별 결의 요건인 사내이사 해임안을 막을 수 있는 3분의 1 지분 확보도 어려울 수 있다.

고려아연에 남은 카드는 이달 중순 방한하는 트라피구라와 협력해 우호 지분을 확대하는 방안과, 공개매수 이전에 보유 중인 자사주 2.4%를 우리사주조합에 넘겨 의결권을 부활시키는 방안이 있다. 하지만 우리사주조합이 2조~3조원어치의 자사주를 사들일 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른다. 

최 회장은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도록 하는 방안과 외국인 사외이사 영입 카드를 내놓으면서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 놓겠다고도 했다. 이사회 독립성 강조는 지배주주가 아닌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존중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장형진 고문과의 갈등의 원인이 됐던 배당도 확대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중간 배당을 도입한 지 약 1년 만에 분기배당을 도입한다는 방침도 밝혔지만 자사주 공개매수란 자충수의 부작용은 여전해 보인다. 

MBK측이 제안한 권광석 전 우리은행장,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 천준범 변호사 등 초호화 멤버 14인이 포함된 이사회가 꾸려지더라도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이 부재한 상황에서 최 회장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사들인 자사주가 인수자에게도 독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장 영풍은 고려아연을 상대로 회계장부 등의 열람·등사 가처분 신청을 내고 6000억원대 사모펀드 투자와 영풍정밀 대항공개매수와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를 위한 단기 차입금 관련 세부 상황을 들여다본다는 입장이다.

재계에선 MBK가 경영권을 장악하더라도 조업정지 60일 확정 판결을 받은 영풍 석포제련소를 국내 최초로 좌초자산(Stranded asset)로 회계 처리해 부실을 우선적으로 떨궈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금융위가 올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기준 초안을 보면 기업에 환경정보 공개제도에 의해 법규상 공개되고 있는 환경정보도 정부에서 공개를 요청할 경우 공시할 수 있도록 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금융감독원에 회계 분식 관련 제제권과 수사권이 있는 한국 상황에서 공시 규칙을 어길 경우 분식으로 간주돼 형사법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북 봉화에 위치한 석포제련소는 최근 환경 점검에서 또다시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이와 함께 지난 1년 새 노동자 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박영민 대표이사와 배상윤 소장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된 상황이다. 최 회장은 지난달 2일 장형진 고문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면서 "영풍이 원한다면 석포제련소의 현안 해결에 우리가 기꺼이 경험이나 기술적인 도움을 줄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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