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에서 소각 결의 후 자사주 매입
우호세력에 빌려주면 의결권 살아나
비난과 공시 위반 리스크 감수가 변수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최윤범 회장과 고려아연 이사회가 전량 소각을 결의하고 공개매수를 통해 취득한 자사주 9.9%를 포함해 현재 보유 중인 자사주 12.3%를 즉시 소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기주식 공개매수를 완료한 지 50일이 넘어가고 있지만 최 회장이 12%가 넘는 자사주 지분을 즉시 소각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면서 경영권 방어에 활용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대대적인 압박에 나선 것이다.
9일 MBK·영풍 연합은 입장문을 통해 "소각을 전제로 회사가 빌린 약 2조원의 자금으로 여전히 소각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대차거래를 통해 의결권을 부활시켜 임시주총 표 대결에 나선다는 예측까지 나오는데, 최 회장은 즉각 약속했던 자사주 소각을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행 상법에서 자기주식의 취득은 신주 발행을 통한 이익배당과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지만 처분은 자산설에 입각해 자율성을 두고 있다. 기업 조직 재편을 위한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스톡옵션이나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재원으로 쓸 수 있는 것도 자산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한 자사주는 법상 의결권이 없지만 제3자에게 '처분'하면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다만 자사주 취득이 특정 주주의 이익을 위한 목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취득 후 6개월 내에는 처분을 할 수 없다.
대차거래는 주식 소유자가 보유한 주식을 차입자에게 일정 기간 대여해 주는 거래인데, 이 경우 의결권은 주식을 빌려 간 차입자가 행사하게 된다. 만약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최 회장의 우호 세력에게 대차거래로 빌려주고 의결권을 부활시키면, 최 회장 측이 주주총회에서 이를 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자본시장에서는 최 회장의 자사주 대차거래 가능성을 높게 본다. 이에 영풍 측은 "자사주 대차거래를 진행한다면 일반공모 유상증자 때처럼 시장과 주주들은 물론 감독 당국과 법원으로부터도 거센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고 날을 세우고 있다.
다시 말해 MBK·영풍의 공매 매수를 좌초시키기 위해 자사주 매입 시엔 미발행주식설에 따라 소각을 약속하더니 처분 시에 말을 바꿔 자산설에 입각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가 딜레마다. 대법원(1992. 9. 8. 선고 91누13670)판결은 "자기주식의 취득과 처분은 순자산을 증감시키는 거래임에 틀림이 없다"며 소각 의무보단 처분의 자율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만 지난 6월 금융위원회가 자본시장법 시행령 및 규정 개정을 통해 공시 의무를 강화한 것이 최 회장의 가장 큰 부담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MBK·영풍은 "대차거래 상대방과 해당 거래에 관여한 증권사 역시 그러한 불법 대차거래에 공모했다는 책임론이 불거질 여지도 있다"며 "무엇보다 이사회 결의 및 법원 재판 과정에서 소각을 약속한 자사주이기에 소각하지 않고 경영권 방어에 활용한다면 다시 한번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11일 기준 MBK파트너스의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가 공시한 고려아연 지분은 39.83%로 파악된다. 전체 발행 주식 가운데 자사주를 제외하면 MBK·영풍 연합이 단독으로 보유한 의결권 지분(45.42%)과 최 회장 측 우호 지분(39.5%) 차이는 약 5%포인트다.
다만 한화그룹과의 상호주 관계 해소, 김우주 현대차그룹 본부장이 이사회에서 이탈하면서 백기사 연합이 와해된 점을 고려하면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MBK파트너스가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지배에 따른 부작용과 관련한)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면서 측면 지원에 나서면서 최윤범 회장이 공시 위반 리스크를 감수하고 12.3% 자사주 가운데 일부를 경영권 방어에 활용한다면 판세를 뒤엎을 가능성도 없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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