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훈·정준혁 학술대회 발표문 복사판
대법원이 대안으로 제시한 문구도 동일

이사의 충실 의무에 주주를 포함하는 상법 개정안과 상장사 지배구조법 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와 정무위원회에서 여러 건 발의된 가운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마음(明心)이 향하는 법안이 무엇이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6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대법원이 박주민 의원이 제21대에 이어 제22대 국회에서도 발의한 총주주를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포함하는 상법 개정안의 취지에 대해 대법원이 공감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더 나아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지배주주를 제외한 소수주주로 한정하자는 대안도 제시했다.
대법원은 개정안에 대해 "최근 회사의 분할, 합병 등에서 주주 간 부의 이전이 발생해 지배주주가 이익을 보고 소수 주주는 피해를 입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고 이러한 점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며 "개정안은 이런 이해상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내에선 최근 박주민안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쏟아져 나왔다. 여성경제신문이 의안정보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현재 법사위에서 심의 중인 이사의 의무에 관한 상법 제382조의3 개정안은 13개의 의안이 계류돼 있다. 이들 가운데 지난 10얼 15일 발의된 박균택안이 민주당의 대표 의안으로 꼽힌다.
구체적으로 유동수안은 박균택안과 내용이 거의 같고 천준호안은 박균택안의 제3항의 총주주 이익 보호를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호로 표현된 것 외에는 동일했다. 박균택안이 나온 이튿날 발의된 이강일안엔 공소 제기된 대주주에 대해선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내용이 추가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박균택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서울대 천경훈·정준혁 서울대 로스쿨 교수의 공동연구 발표문을 모방한 내용이다. 특히 민주당이 최근 발족한 개인투자보호 및 기업지배구조 개선 테스크포스(TF) 간사를 맡은 김남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상장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안에 담긴 △독립이사 3분의 1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확대(1명→2명△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이 담겨 있다.
① 이사는 회사의 수임인으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② 이사는 법령과 정관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③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특정 주주의 이익이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환경과 사회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
먼저 제1항은 종선 상법 제382조 제2항(회사와 이사의 관계는 민법의 위임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의 선관주의의무를 명시한 것으로 확인적 의미를 가진다. 아울러 제2항 역시 종전 상법 382조의3을 그대로 옮긴 것이어서 반대 의견은 없다.
문제는 제3항의 선언적 문구다. 인수·합병(M&A) 또는 주식의 포괄적 교환 등 구조재편 행위의 적법성 판단시 소수주주 이익 침해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이자는 취지인데 대법원도 이와 동일한 문구를 박주민안의 대안으로 제시해 눈길을 끈다. 제4항에도 환경과 사회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는 선언적 표현이 담겼다.
다만 이사는 총주주의 이익을 위해 직무를 수행해야 하고 어느 특정 주주의 이익이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할 수 없음은 다수결원칙 및 주식평등원칙에 관한 상법규정(368조 1항과 369조 1항)에 이미 담긴 내용이다. 다시 말해 합병 비율 등을 법정화한 자본시장법 개정 사안을 두고 상법 체계를 건들면 규정 취지를 오해한 개별주주와의 분쟁만 증가할 뿐이란 우려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자기주식 공개매수를 최윤범 회장의 경영권 방어에 활용하다 주주 소송에 직면한 고려아연 사례를 들며 "윤석열 정부는 지배력 강화 목적의 자기주식 대한 신주배정이나 자기주식 이전을 금지하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제176조의5 등)을 이미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즉 현행 규정만으로 규제나 처벌이 가능한 상황에서 지배주주 및 회사의 이익과 일반주주의 이익을 분리하는 규정의 필요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박균택안 발의 당일인 15일 정부안이 확정된 것처럼 오보가 나온 것과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한 로스쿨 교수는 "법무부로부터 검토 의견 요청이 온 바는 있지만 민주당에서 천 교수 발표문의 복사 붙이기에 가까운 청부입법안이 나올 줄은 몰랐다"고 설명했다.
지난 9월 5일 한국기업법학회 추계학술대회 당시 천경훈 교수의 지정 토론자로 나섰던 김동민 상명대 법학과 교수는 "자본거래든 손익거래든 회사에 이익이 되면 모든 주주에게 동일하게 지분에 따른 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지배주주에만 유리하고 일반주주에 불리하게 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선언적 규정의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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