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주 보호 노력' 가안 준비해놨으나
야당은 시큰둥하고 국민의힘 반대 입장
개정 또는 제정 강행시 재계 충돌 불가피

24일 오전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한 유재훈 예금보험공사사장(오른쪽)이 의원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오전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한 유재훈 예금보험공사사장(오른쪽)이 의원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상법 개정안을 두고 정부·여당이 갈림길에 섰다. 정부 부처간 합동회의를 통해 상법 및 자본시장법 가안(假案)을 검토한 상황에서 여당 지도부가 개정 반대 입장을 내놓으면서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여당 지도부를 만나 이사의 충실 의무에 주주를 포함하는 개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받아내면서 상법 382조의3 제2조에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되도록 노력한다'는 문구를 담기로 한 정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앞서 한국 대표 법학자단체인 상사법학회에서 이사의 충실 의무에 주주 포함하는 개정안은 외국의 입법례가 없다는 것으로 사실 관계가 정리되면서 일각에선 우회 전술이 검토됐다. 합병 비율 문제 등을 고려해 상법에 '주주'란 단어를 포함한 선언적 문구라도 넣거나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상장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안(이하 특별법)을 활용하자는 주장이었다.

이 과정에서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를 대상으로 하는 민주당의 특별법 제정안 제23조 2항엔 "이사는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자신보다 회사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선관주의 의무와 함께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이 밖에도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소수 주주가 자신이 보유한 의결권을 한 명에게 몰아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내용도 들어갔다.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해 분리 선출하는 감사위원 수를 현행 1명에서 단계적으로 3~4명으로 늘리는 내용도 포함됐다. 다양한 이해 관계에 따라 회사 이익과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이사의 독립성 강화 조항도 넣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른바 지배주주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이사'를 3분의 1 이상으로 채우도록 하자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로선 '주주의 정당한 이익보호 노력 의무'를 선언적으로 포함하는 것이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야당의 특별법안보다는 약해 절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지만 재계에선 "기업 분쟁만 증가시키는 무의미한 포퓰리즘일 뿐"이라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본시장법 시행령 176조의 5에선 상장사와 비상장사 간 합병가액을 결정할 때 상장사의 자산가치로 "할 수가 있다"고 규정돼 있는데 이는 달리 말하면 "할 수 있는 데 왜 안했느냐"는 시비가 될 수 있는 모호한 규정이다. 실제 이런 이유로 인해 최근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중립 성향 위원들까지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반대로 기울어진 바 있다.

이사의 충실 의무로 번역된 수임자의무(fiduciary duty)는 1998년 상법 개정을 통해 국내법에 도입된 것으로 충성할 의무(duty of loyalty)와 주의할 의무(duty of care)의 상위 개념으로 지난 2013년 채이배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제개혁연대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배주주의 이익 추구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사익 추구'에 불과하다는 발상이었다.

법무부 가안으로 알려진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라는 조항은 선언적이고 선관주의 성격을 띄지만 국내 상법은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제 401조에 의해 수임자의무(fiduciary duty) 위반 책임을 따질 수 있는 구조다. 

지배주주의 사익추구에 대한 제재 역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례와 같이 등기이사로 회사 경영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경우에 한해 적용될 수 있다. 김지평 김앤장 변호사의 대선주조 차입매수(LBO) 사건에 대한 부산고등법원 판례 분석에 의하면 법원은 "자기주식의 실질가치보다 고가로 취득을 하는 경우 이사의 의무위반이 인정된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익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이사는 총주주의 이익을 위해 직무를 수행해야 하고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침해해 어느 특정 주주의 이익이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할 수 없음은 다수결원칙 및 주식평등원칙에 관한 상법규정(368조 1항과 369조 1항)에도 이미 담겨 있다.

일본 역시 이사는 회사에 대해 선관주의의무(회사법 330조, 민법 644조)와 충실의무(회사법 355조)가 법령으로 규정돼 있다. 한국법과 마찬가지로 '회사의 이익'이란 '주주 공동의 이익'이라는데 큰 이견은 없다고 한다. 토리야마 쿄이치 와세다 법학대학원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이사가 주주에게 직접적으로 신인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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