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직후 0.9%로 상향 조정하면서
관세 충격 수치는 따로 숨겨두고 미반영
제조업 공동화가 미실현 3500억$ 때문?

한국은행이 미국의 25% 관세 충격을 뻔히 알면서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에서는 산업 공동화 우려를 부각하며 실행 가능성이 불투명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에 책임을 돌렸지만, 내부 보고서에는 관세 충격을 별도로 계량해놓고 정작 전망치에는 반영하지 않았다.
21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은행은 지난 8월 경제전망 수정에서 2025년 성장률 전망치를 0.8%에서 0.9%로 상향했다. 두 차례 추가경정예산 집행 효과와 소비심리 개선을 근거로 들며 “성장세가 다소 회복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그러나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진성준 의원에게 제출한 이창용 총재 명의의 서면 답변에서는 “3500억 달러 대미투자로 산업 공동화가 우려된다”고 따로 보고했다.
반면 같은 시점 한은이 내놓은 보고서에는 미국의 관세 정책이 한국 경제에 0.45%포인트 성장 둔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이 담겼다. 한국이 미국 수입 상위 50개국 중 관세 인상 폭 18위로 중상위권에 속한다고 지적하며, 고율 관세가 적용되는 금속·기계·자동차 품목의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기존 자유무역협정(FTA) 무관세 혜택이 사라지면서 산업 공동화·고용 위축·인재 유출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도 보탰다. 관세 충격으로 인한 제조업 붕괴 가능성을 내부 보고서를 통해 뚜렷이 제기했음에도 정부와 여당에 보고·설명하는 과정에서는 그 원인이 실행되지도 않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로 둔갑됐다.
구체적으로 한국은행은 “대미 투자가 단기적으로 성장 유발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산업 공동화와 고용 위축, 인재 유출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미 통상 협상 실패에 따른 본질적 충격 요인인 관세를 희석시키고, 마치 투자 자체가 문제의 근원인 것처럼 직적해 사실상 정부·여당의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태도로 읽힌다.
더 나아가 관세 충격에 대해 한은은 “평균 관세율이 비슷하다”며 추가 영향이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이미 15% 상호관세 부과를 전제로 한 주장으로, 앞서 내부 보고서에서 제시한 “올해 성장률 0.45%포인트·내년 0.6%포인트 둔화” 분석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결국 동일한 사안을 두고 내부에선 충격을 전망하면서도 정부·여당 보고 단계에서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축소하는 모순적 태도다.
또 25% 관세가 현실화되더라도 “원화 절하와 수출선 다변화로 일부 완충 가능하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원화 절하는 기업 수출에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국민 생활에는 수입물가 상승과 실질임금 하락으로 이어진다. 충격 완충이 아니라 충격 전가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기업 관세 부담을 직접 지원하면 “부정적 영향을 일부 완화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결국 국민 세금으로 대기업의 관세 비용을 메우겠다는 말이 된다. 이는 재정 악화와 국채 발행 압박으로 이어지고, 다시 가계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처럼 한은이 관세 충격을 과소평가하면서도 동시에 산업 공동화 경고를 병행한 것은 국내 경제 성장 둔화의 책임을 ‘미국 투자 탓’으로 돌리는 이중적 메시지다. 지난 8월 말 대외적으로는 성장률 전망을 상향 조정하며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면서도 국내 보고서에는 관세 충격 수치를 남기는 두 얼굴을 보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관행이 시장에 왜곡된 신호를 남기고, 대미 투자를 원인으로 지목한 해석이 국제 정치에도 파급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제 전망치 상향 조정이 발표된 직후 타임지 인터뷰에서 “미국 측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탄핵당했을 것”이라며 협상 실패의 책임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렸다. 결국 한은의 이중 메시지가 대통령의 정치적 변명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공한 셈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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